경제시평
K-컬처의 비상과 1%대 저성장
2026년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의 심경은 자부심과 우려가 교차하는 복잡한 지점에 서 있다. 2025년을 복기해보면 한국 문화의 저력은 세계무대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키며 K-콘텐츠의 영토를 확장시켰다.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 입증된 한국인의 창의성과 역동성은 분명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문화적 성취 뒤편에서 감지되는 경제 시그널은 묵직한 성찰을 요구한다. 문화는 비상하는데 실물경제의 보폭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지난해 한국의 1인당 GDP는 대만에 22년 만에 역전된 것으로 추산된다. 경제성장률은 1%대의 침체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가 주목하는 역동적인 문화를 가진 나라에서 경제 활력이 이토록 빠르게 식어가는 현상은 역설적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경제의 혈맥인 자본의 흐름이 동맥경화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문화적 성취, 그리고 자산 쏠림의 그늘
우리 문화가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한 배경에는 창작자들의 혁신적 상상력과 이를 뒷받침한 과감한 모험자본의 투자가 있었다. 그러나 시선을 거시경제 전반으로 돌리면 상황은 다르다. 국가의 한정된 자원이 미래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혁신 분야보다는 이미 지어진 콘크리트 자산, 부동산에 과도하게 머물러 있다.
최근 지속되는 원화약세 역시 이러한 구조적 문제와 맞닿아 있다. 환율은 국가 경제의 기초체력을 비추는 거울이다. 시중의 유동성이 수출경쟁력을 높이는 첨단기술과 기업으로 흘러가 부가가치를 높여야 원화가치도 지지된다. 하지만 자금이 내수 중심의 자산시장에만 묶여 혁신 역량이 저하되니 대외적으로 원화의 매력도가 떨어지는 것은 필연적 귀결이다. 즉 부동산 쏠림은 단순한 주거문제를 넘어 대외 경제 안정성마저 위협하는 거시적 리스크로 진화한 것이다.
한국은행의 분석처럼 경제 펀더멘털과 괴리된 자산가격의 상승은 과잉 기대가 빚어낸 결과다. 서울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 배율(PIR)이 15배를 상회하는 환경에서 자본이 불확실한 혁신보다는 안정적인 지대(rent)를 좇는 것은 경제주체들의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안주가 누적될수록 국가 경제의 역동성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
특히 자산시장으로의 과도한 쏠림은 미래세대의 기회를 제약한다. 구직활동을 멈추고 ‘쉬었음’으로 분류된 청년이 50만명에 육박한다. 이는 청년들의 의지 문제라기보다 성실한 근로소득만으로는 자산격차를 좁히기 어렵다는 구조적 무력감이 노동시장의 이탈을 부추긴 결과로 해석해야 한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창업에 도전하기보다 빚을 내 자산을 취득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한 사회 구조 속에서는 제2의 케데헌이나 혁신기업의 탄생을 기대하기 어렵다.
생산적 금융의 과감한 확대가 해법
다행히 우리에게는 반등의 불씨가 남아 있다. 최근의 문화적 쾌거가 증명하듯 우리 사회 내부에는 여전히 혁신 DNA가 잠재되어 있다. 이제는 시스템의 변화가 시급하다. 정부가 그간 추진해 온 생산적 금융 정책은 올바른 방향이나 지금보다 훨씬 과감하고 구체적인 실행이 뒤따라야 한다. 또한 세제와 금융 시스템을 재정비해 지대추구보다 가치창출 활동이 우대받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무엇보다 실패를 용인하는 자본이 흘러야 한다. 또한 금융권의 오랜 관행인 부동산 담보 위주의 대출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업이 가진 기술력과 미래 현금흐름에 기반한 여신 시스템을 정착시켜 담보가 부족한 스타트업도 아이디어만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환경을 완비해야 한다.
2026년 기성세대가 감당해야 할 책무는 명확하다. 청년들이 부동산이라는 장벽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도전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도록 경제의 물길을 터주는 일이다. 지대추구가 아닌 가치창출이 온당하게 평가받는 시스템이 정착될 때 문화에서 확인된 우리의 혁신 역량은 비로소 경제 전반으로 확장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