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장덕준씨 사건 경찰 수사 본격화
유족 조사로 산재 은폐 의혹 재점화 … 정보유출서 시작된 논란 노동·금융으로 확산
고 장덕준씨 사망 사건을 둘러싼 쿠팡의 산업재해 은폐 의혹 수사가 유족 조사 단계에 들어서며 본격화됐다. 경찰이 유족을 직접 불러 조사에 나서면서, 개인정보 유출 논란으로 시작된 쿠팡 수사는 이제 노동·산재 책임을 넘어 금융 규제와 플랫폼 지배 구조까지 겨냥하는 전방위 사안으로 확산되고 있다.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는 6일 오후 장씨의 어머니 박미숙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한다.
경찰은 이날 김범석 쿠팡 Inc 의장을 증거인멸 교사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택배노조 관계자도 함께 조사해 고발 경위와 의혹의 구체적 내용을 확인할 예정이다. 경찰은 장씨 사망의 직접 원인뿐 아니라, 사고 이후 쿠팡측의 보고·처리 과정 전반을 수사 대상으로 삼고 있다.
수사의 초점은 장씨의 사망이 과로와 장시간 노동 등 구조적 위험 속에서 발생했는지와 사고 이후 이를 조직적으로 축소·은폐하려는 시도가 있었는지 등이다. 경찰은 유족 진술과 노조가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사망 경위와 산재 처리 과정 전반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구조적 위험으로 쟁점 이동 = 택배노조는 지난달 23일 쿠팡측이 장씨의 과로사를 축소·은폐하고 관련 증거를 인멸했다며 김 의장을 고발했다. 노조는 쿠팡 물류 자회사인 쿠팡풀필먼트서비스도 업무상 과실치사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함께 고발했다.
노조측은 “현장 관리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물량과 속도를 우선하는 운영 구조와 사고 이후의 조직적 대응이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쿠팡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도 6일 이와 별도로 김 의장과 한국 쿠팡의 해롤드 로저스 임시대표, 박대준 전 대표 등을 경찰에 고발할 예정이다.
고발 주체가 늘어나면서 경찰 수사가 경영진 책임 여부로까지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장씨 사건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온 쿠팡 물류 현장의 과로·산재 논란과 연결됐다. 그동안 쿠팡 안팎에서는 물류센터와 배송 현장의 장시간 노동, 촉박한 작업 일정 등에 따른 산재 위험이 지적됐다. 일부 사망 사고가 산재로 인정되면서 구조적 위험을 방치해 온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이어졌다.
노동계는 “배송 효율과 물동량을 중심으로 설계된 시스템이 현장 노동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고 지적해 왔다. 반면 쿠팡측은 개별 사례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유사한 사고가 반복되면서 기업의 운영 방식과 관리 체계로 논란이 옮겨가눈 모양새다.
◆노동·금융 당국 수장 공개 비판 나서 = 노동·산재 논란은 국회 청문회를 거치며 정부의 공개 비판으로 이어졌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쿠팡 연석 청문회 이후 “청문회 전에는 ‘고쳐 쓰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후에는 ‘과연 고쳐 쓸 수 있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쿠팡의 산재 대응 태도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경찰은 쿠팡 관련 의혹을 종합적으로 수사하기 위해 86명 규모의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가동 중이다. 현재 수사 대상 고소·고발 사건은 모두 20건으로, 노동자 과로사 의혹과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 등이 포함돼 있다.
최근에는 쿠팡 전 개인정보보호책임자(CPO)측으로부터 내부 자료를 임의 제출받아 분석에 착수하면서, 수사 범위가 조직 내부 의사결정 구조로까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여기에 금융당국도 쿠팡파이낸셜의 고금리 대출 상품을 두고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쿠팡파이낸셜이 입점업체를 대상으로 최고 연 18.9% 금리의 ‘판매자 성장 대출’을 운용한 데 대해 “상도덕적으로 갑질에 가까운 상황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정밀한 현장 점검을 진행 중이며, 검사로 전환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그는 쿠팡을 포함한 대형 유통 플랫폼을 두고 “금융을 넘어선 상위 플랫폼”이라며 “나쁘게 표현하면 포식자와 비슷한 구조”라고도 언급했다.
◆유족 조사에서 시작된 ‘책임의 문제’ = 장씨 유족 조사를 계기로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이번 사건은 단일 산재 사고를 넘어 플랫폼 기업의 노동 책임과 경영 책임 그리고 규제 체계의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는 사례로 부상하고 있다. 수사 결과에 따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는 물론, 경영진 책임과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까지 논의될 수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는 이번 사건을 단일 사고로 보지 않고 플랫폼의 거래·정산·노동 구조 전반의 문제로 인식하는 분위기”라며 “플랫폼 산업이 성장의 속도만큼이나 노동 안전과 책임을 어떻게 제도 안에 담을 것인지를 묻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플랫폼이라는 이유로 금융·안전 규율의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