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과징금, 선진국 수준으로”…정권교체 낙수효과

2026-01-06 13:00:01 게재

기업 고의적 불공정행위에는 “불법행위 상쇄할 수준 과징금 부과” 추진

주병기 “경제약자 협상력 강화·불평등 타파” … 분쟁조정 기능강화 주문

#1. 이른바 벌떼입찰로 공공택지 낙찰로 재미를 본 우미건설. 논란이 되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규정을 바꿨다. 우미는 법망의 사각지대를 파고들어 총수 자녀들이 지분을 쥔 회사들을 급조한다. 입찰자격을 갖추기 위해 우미건설은 시공 중인 현장의 일감을 몰아줬다. 이 회사들은 ‘벌떼입찰 규제망’을 피해 2건의 공공택지 낙찰에 성공한다. 총수 자녀가 설립한 회사는 우미로부터 880억원 규모의 공사를 받아 5년간 117억원의 시세차익도 챙겼다. 총수 입장에선 돈이 남는 공공택지 낙찰도 받고, 차후 기업 승계를 할 총수 자녀에게 실탄도 챙겨주는 쏠쏠한 장사를 한 셈이다. 공정위 조사가 시작되자 우미건설은 국내최대로펌인 김앤장을 변호인으로 내세웠다. 조사 마무리 무렵 김앤장 변호사들은 고객사인 우미측에 “100억원대 과징금이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과는 딴판이었다. 1심격인 공정위 전원회의는 우미측에 400억원대 과징금과 시정명령, 검찰고발이란 초강수를 뒀다. 천하의 김앤장도 ‘정권교체 효과’를 간과한 것이었다.

#2.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11월 하도급과 오정화 사무관을 비롯한 하도급과 직원 3명에게 ‘적극 행정 우수공무원상’을 수여했다. 롯데건설이 미지급한 하도급대금 137억원을 조사착수 한달 만에 전액 지급하게 한 공로다. 지난해 7월 롯데건설은 ‘구의역 이스트폴 신축공사’ 하도급대금 135억2000만원과 지연이자 5억6000만원 등 총 140억8000만원을 58개 하도급업체에 전액 정산했다. 일부 하도급업체들은 2년 이상 속앓이를 하다가 겨우 대금을 받았다. 당시 유동성 위기를 겪던 롯데건설이 구조조정 대신 하도급대금을 주지 않으며 버티던 상황이었다.

제보를 받은 공정위는 지난해 6월16일 하도급법 위반 혐의로 롯데건설을 현장조사했다. 공정위 조사가 본격화되자 롯데건설은 한달 만에 밀린 대금을 전액 지급했다. 이태휘 공정위 하도급과장은 “하도급업체 중에는 당장 밀린 돈을 받지 못하면 폐업 위기에 몰린 업체들도 상당수 있어서 사건처리보다는 ‘대금지급’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5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공정거래정책자문단 위촉식 및 자문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의적 불공정행위엔 최대제재 = “대기업의 고의적 불공정행위에는 법이 정한 최대한의 제재를 하되, 피해를 입은 영세기업과 자영업자들에겐 공정위가 중재자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자는 것.” 6일 공정위 관계자가 설명한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의 정책 기조다.

이재명정부 출범 뒤 첫 수장을 맡은 주 위원장은 공정위 내에서 ‘낭만적 원칙주의자’로 통한다.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을 ‘공정한 시장’으로 바꾸는 공정위 설립취지를 소신껏 추진하겠다는 의지가 역대 어느 공정위원장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 변화의 대표 사례가 지난해 11월 마무리 된 ‘우미건설 부당지원 사건’이다. 공정위는 공공택지 벌떼입찰을 계속하기 위해 계열사에 5000억원 규모의 공사 물량을 부당하게 몰아준 우미건설에 과징금 483억7900만원을 부과하고 우미건설을 검찰에 고발했다.

우미건설은 지난 2010년부터 공공택지 입찰에 다수 계열사를 동원하는 ‘벌떼입찰’에 참여하고 있었다. 지난 2016년 8월 LH는 공공택지 1순위 입찰 요건을 강화해 주택건설실적 300세대를 갖춘 업체만 1순위로 입찰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다.

그러자 우미건설은 2017년부터 자신들이 시행하는 12개 아파트 공사현장에 비주관시공사를 선정해 총 4997억원에 달하는 상당한 규모의 공사물량을 제공했다. 이들 회사는 총수 자녀들이 급조하거나 영세건설사를 인수, 실적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우미건설의 부당지원으로 이들 회사는 시장에 진입, 2건의 공공택지 낙찰까지 받았다.

공정위는 주택건설업 시장에서 공정한 거래질서가 크게 저해된 부당 지원행위라고 판단해 과징금 483억7900만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눈여겨 볼 대목은 우미건설을 검찰에 고발했을뿐만 아니라 관련 고시에 규정된 ‘감경요인’을 아예 반영하지 않았단 점이다. 우미측 변호인인 김앤장이 “공정위가 100억대 정도의 과징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도 감경요인을 일부 적용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효성 있도록 과징금제도 개선” = 주병기 위원장의 또 다른 중장기 추진과제가 ‘과징금 제도 개선’이다. 과징금이 불공정행위로 얻는 이익보다 많아야 제재 실효성이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는 2026년 신년사에서 현재의 시장 상황에 대해 “소수 대기업집단으로의 경제력 집중 문제, 대·중소기업 간 불균형 성장 등으로 구조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시장 시스템의 혁신 역량은 빠르게 쇠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착취적 관행을 타파하고 게이트키퍼의 기득권을 강력히 규율해 창의적 혁신과 건강한 기업가 정신이 충만한 공정하고 건강한 시장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불공정행위에 대한 실질적 억제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과징금 부과율과 상한을 선진국 수준으로 대폭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공정위는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과징금 한도를 대폭 상향하기로 했다. 형벌은 최소화하는 대신 금전적 제재를 강화해 경제 범죄를 다스리겠다는 취지다.

우선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의 경우 과징금 한도를 관련 매출액의 6%에서 20%로 올린다. 유럽 등 해외 사례와 비교할 때 과징금 상한이 낮은 편이라는 지적이 많아서다. 민생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담합 행위는 과징금 한도가 관련 매출액의 20%에서 30%로 늘어난다. 온라인 공간에서 성행하는 거짓·과장 광고를 근절하기 위해 표시광고법상 과징금 한도 역시 매출액의 2%에서 10%로 5배 강화한다.

정액 과징금 규모도 커진다. 공정위는 과징금 부과 기준인 관련 매출액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 법적으로 정해진 금액만큼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다. 기업의 부당지원 행위의 경우 과징금을 40억원까지 부과할 수 있는데, 이를 100억원으로 늘린다.

과징금이 신설되는 항목은 주로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규제들이다. △지주회사·대기업집단 시책 관련 규정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 규정 △지주회사 설립 제한 규정 등을 어겼을 때 형벌 조항이 폐지되고 과징금 부과 근거가 마련된다.

공정위는 상습적 법 위반은 무겁게 제재할 방침이다. 현재는 위법 행위를 반복했을 때 10% 수준에서 과징금을 추가로 부과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한 차례만 반복해도 최대 50%를 부과할 계획이다. 위반 횟수에 따라 최대 100%까지 가중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에는 법개정을 하지 않고 관련 법령과 고시 개정 만으로 가능한 사안을 취합한 것”이라며 “올해 중 전문가와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해 법 개정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약자 협상력 강화 지원 = 주 위원장이 주력하는 또 다른 정책방향은 ‘경제약자의 협상력이 높아지도록 공정위가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는 신년사에서 올해 추진한 4가지 정책방향을 소개하면서 ‘경제적 강자와 약자 간 힘의 불균형 해소를 위해 노동자·노동조합·중소기업·소상공인들의 경제적 강자에 대한 협상력 강화’를 첫 손에 꼽았다.

최근에는 공정거래조정원(조정원)의 ‘분쟁조정 기능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 사후 제재 중심의 공정거래 집행에서 벗어나, 신속하고 실질적인 피해 회복이 가능한 ‘대체적 분쟁해결 수단(ADR)’의 역할을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주 위원장이 평소 공정위의 법 집행을 보완하는 수단으로서 분쟁조정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위법 여부를 가리는 조사·제재 중심의 방식만으로는 분쟁 해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피해 회복도 지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분쟁조정을 통해 사후 제재에 앞서 신속한 합의를 유도하고, 실질적인 피해 보상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안착시키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실제 공정거래법에는 공정위 신고사건 중 직접 조사해 처리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제외한 사건은 ‘직권’으로 조정원 내 분쟁조정협의회에 분쟁조정을 의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런 기조 변화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조정원이 집계한 최근 3년간 분쟁조정 현황을 보면 공정 분야 분쟁조정 피해구제액은 2023년 168억2000만원에서 2024년 81억4000만원으로 급감했지만, 작년부터 분위기가 반전했다. 작년 11월까지 피해구제액은 140억8000만원으로 전년 대비 73% 증가했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 당선 이후 집계된 피해구제액만 67억4000만원으로, 2024년 한 해 전체 실적의 80%를 웃돈다.

제도 개선도 추진한다. 기업 간 거래(B2B) 분쟁조정의 효율성과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공정거래분쟁조정법’ 제정을 추진한다. 이 법의 핵심은 간이조정절차와 감정·자문제도 도입이다. 분쟁 사실과 법률관계에 큰 이견이 없는 경우 조정위원장 1인이 신속히 조정하는 간이 조정절차와, 당사자 동의 시 전문가 감정·자문을 거쳐 조정을 성립시키는 제도다. 이와 함께 집단조정 확대와 공정거래 종합지원센터 설치 방안도 포함된다.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분쟁조정 제도도 손질한다. 소비자기본법을 개정해 소액사건 단독조정절차를 도입하고, 조정이 불성립된 분쟁에 대해서는 소송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할 계획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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