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중국표준 2035’를 무겁게 읽어야 하는 이유
2025년 11월 난징(南京)에서 열린 세계 스마트제조 박람회는 중국 산업전략의 다음 단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전시 내용은 기술이나 제품을 자랑하는 무대가 아니라 제조 운영방식 그 자체였다. 인공지능(AI)·로봇·산업용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스마트 생산라인은 먼 미래가 아니라 이미 작동 중인 표준모델로 제시됐다.
이는 ‘중국제조 2025’가 지난 10년간 축적한 제조역량을 운영모델·인증·플랫폼으로 제도화해 다음 단계인 ‘중국표준 2035’로 연결하겠다는 방향을 보여준다. 제조경쟁은 이제 생산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방식과 규칙이 글로벌 기준이 될 것인가를 둘러싼 구조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은 제조능력을 양적 생산에서 질적 경쟁력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2015년 5월 국무원의 ‘중국제조 2025’ 공식발표 문건에 포함됐던 10대 핵심기술 중에서 전기차·배터리, 드론, 고속철, 신소재, 태양광 패널, 5G 통신, 전력설비 등 7개 분야에서 세계 1위 중국기업이 나왔다.
하지만 2018년 이후 ‘중국제조 2025’라는 표현은 중국의 공식 담화에서 거의 사라졌다. 이유는 포기가 아니라 그 반대다. 10대 중점 산업, 국산화 목표, 2025년이라는 달성 시한이 미중 전략경쟁 국면에서 중국의 의도를 지나치게 노출시키면서 미국의 관세·수출통제·견제 압박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드러내지 않는 선택을 했다. 표현은 지웠지만, 보조금·인재육성·내수실험은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정교해졌다.
제조 이후의 전장, 규범경쟁 시작
‘중국제조 2025’가 중국을 ‘세계의 공장’에서 ‘제조강국’으로 전환시키겠다는 선언이었다면, 후속 버전인 ‘중국표준 2035’는 그 성과를 규칙과 시장 접근권으로 전환하려는 전략 프레임이다. 제조역량이 수준에 오른 이후의 전장(戰場)은 자연스럽게 표준·인증·특허·조달요건으로 이동한다. 생산능력을 시장점유율로 전환한 뒤, 그 시장의 문을 여닫는 기준 자체를 선점하려는 단계다.
주목할 점은 ‘중국표준 2035’가 공식화된 계획문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문건으로 발표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다. 노골적인 목표제시가 또 미국의 공격표적이 될 수 있다는 학습효과 때문이다.
대신 중국은 표준화 기본법, 산업별 로드맵, 인증·조달 규정, 데이터 규칙 속에 목표를 분산 내재화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2021년 10월 국가 표준화 목표와 방향을 명시한 ‘국가표준화발전강요(綱要)’를 발표한 이래 ‘15.5계획’(15차 5개년 계획, 2026~2030년)에는 원천기술 혁신 목표가 처음 포함됐다.
2023년 8월 국무원 4개 부처가 공동 발표한 ‘신산업 표준화 선도사업 시행방안’에는 차세대 정보기술, 신에너지, 신소재 등 8대 신산업과 뇌-컴퓨터/기계 인터페이스, 양자정보, 휴머노이드 로봇 등 9대 미래산업이 표준화 선도 대상으로 선정됐다.
‘중국표준 2035’는 세 가지 특징을 가진다. 첫째, 분산형 전략이다. 표준은 단일 문서가 아니라 법·제도·부처별 행동계획에 흩어져 반영된다. 둘째, 표준–인증–시장 접근의 결합이다. 표준 채택 여부가 곧 시장 진입 조건이 된다. 셋째, 대외전략과의 연계다. 디지털 실크로드, 스마트시티, 친환경 인프라 패키지와 결합해 제3국에 영향력을 확대한다.
이 같은 글로벌 거버넌스 인프라로서 ‘중국표준’의 파급 효과는 매우 크다. 기술경쟁의 기준은 성능에서 안전성·책임성·데이터 관리로 이동하고 있다. 중국은 이 기준 설정에 개입해 자국 기술에 불리하지 않은 규칙환경을 조성하려 한다. 또한 개발도상국에서 중국식 표준과 인프라 패키지가 확산될 경우, 국제기구의 공식 표준과 무관하게 ‘사실상 표준(de facto standard)’으로 자리잡을 가능성도 있다.
변화는 경쟁의 규칙을 바꾼다. 경쟁의 초점은 ‘누가 더 잘 만드나’에서 ‘누가 정의하고 평가하나’로 이동한다. 표준은 관문이 되고, 동시에 외교수단이 된다. 포용과 안전, 발전의 언어로 포장되지만 실체는 표준 동조 연합의 확장이다.
답은 찬반이 아니라 헤징이다
이미 시작된 ‘중국표준 2035’는 국제 표준경쟁을 본격화하는 은닉된 패권전략이다. 이 변화가 한국에 던지는 메시지도 분명하다. 공식 발표를 기다려 대응할 사안이 아니다.
한국의 선택은 단순한 찬반이 아니라 핵심을 지키면서 위험을 분산하는 헤징(hedging)이 필요하다. 코어 표준은 국제 표준체계에 고정하되, 중국과 협력을 하면서 설계권과 핵심 데이터를 지키는 전략적 접근이다. 우리가 ‘중국표준 2035’의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