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공천의 금도(襟度)가 무너질 때

2026-01-08 13:00:08 게재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의 관계는 사실상 갑을 관계로 형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당에서 광역의원과 기초의원 후보로 추천되기 위해서는 지역구 국회의원의 영향력이 거의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정치에서 ‘공천헌금’이라 불리는 기이한 형태의 관행은 아직도 근절되었다고 할 수 없다. 국회의원들이 지방의원 출마 지망생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형국이 이를 보여주고 있다.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출마 후보자)들간 형성된 이러한 관계는 특정 진영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현실정치에서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의 관계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의 업무 영역이 제도적 차원에서는 분리되어 있지만 정치현장에서는 상호보완적 관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차원을 넘어 지방의원 지망자들의 공천 여부를 결정할 때, 공천관리위원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지역구의 현역의원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결국 ‘공천헌금’의 유혹에 노출되기 쉬운 게 현실이다.

지역구의 특성과 등장 인물에 따라 공천 형태는 천차만별이겠지만 언제부턴가 광역과 기초의 직급에 따라 ‘공정가격’이 형성되어 있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최근 불거진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의 경우와 김병기 전 원내대표의 지방선거 공천과 총선 공천 스캔들 의혹은 한국정치에서 공천의 사각지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공천헌금’의 유혹에 노출되기 쉬운 현실

이 문제는 민주당에만 국한된다고 볼 수 없다. 사안의 성격상 이해당사자들이 침묵하면 밝혀지기 어렵고, 의혹이 드러나도 실제 대가성과 직무관련성을 입증하기 쉽지 않다. 현금이 오고간다면 이를 증명해내기는 더욱 어렵다. 당사자들은 부인하고 돈을 건네는 현장 사진이나 CCTV 영상이 없다면 사실상 법정에서 무죄로 끝나기가 일쑤다. 진실은 당사자들만 안다. 실제 돈이 오고가지 않아서가 아니라 증거가 없어서 무죄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갈등을 조정하고 이해관계의 충돌을 조율하고 관리함으로써 사회적 통합을 지향함을 본령으로 한다는 정치에 대한 원론적 정의가 있지만 현실정치인에게 이러한 명제보다는 공천이 눈 앞의 지상과제다. 따라서 정치현장에서 정치윤리와 도덕은 현실정치인들에겐 거추장스러운 사치에 불과하다.

여의도에 공공연히 떠도는 공천헌금 관련 소문들의 진위야 가릴 수가 없지만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의 정치는 권력을 추구하는 작업으로서 본질적으로 강제력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순수한 도덕이나 선의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베버의 사상에는 ‘신념윤리’도 있다. ‘거짓된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하지 않는다’는 신념윤리는 도덕적 원칙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베버에 의하면 정치는 행위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태도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우 거짓이라도 불행을 막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책임윤리’ 또한 필요하다. 따라서 도덕과 현실 사이의 균형감각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신의 신념을 행동에 옮기고 책임지기 위해 일단의 위선이 용납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돈이 공천의 댓가로 요구되는 현실이 실제 현장에서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다면 이는 책임윤리도 아니고 현실주의라는 명분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가장 추악한 것이 관직과 공직을 돈으로 거래하는 매관매직이다. 김건희가 각종 금품을 수수하고 공직을 거래하려 했다는 이른 바 매관매직 의혹이 최악으로 지탄받는 현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K-정치’바로 설 날 아직은 요원

여야 정당은 지금도 김병기·강선우 특검 실시 여부를 가지고 연일 시비다. 조선 초기의 붕당이 긍정적 의미를 가지다가 중기 이후 당색이 극단화 되면서 정치사회적으로 기득권들만이 그들의 당파색을 가지고 권력을 누리면서 조선이 병들어갔다.

조선시대와 비교한다고 해서 각주구검(刻舟求劍)의 고사라고 비아냥을 들을지 모르지만 그 때와 다를 게 뭔지 알 수가 없다. 불법계엄 이후 K-민주주의가 빛을 발했다고 하지만 ‘K-정치’로 바로 설 날이 아직은 요원하기만 하다.

제도의 보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정치인이 지켜야 할 선이다. 금도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끝이다. 공천에서 금도가 무너질 때 정치 관련 논의는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