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회생법원, 러시아 법인 파산절차 승인
외국도산 승인과 경매 중단은 별개
국내서 경매진행 채권자 보호 쟁점
서울회생법원이 러시아 법인의 해외 파산절차를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외국도산절차 ‘승인’ 결정을 했다. 국내 채권자들이 이미 해당 법인 소유 선박을 대상으로 진행해 온 경매 절차를 법원이 어느 범위까지 제한할 수 있는지에 관심이 쏠린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 국제도산전담19부(양민호 수석부장판사)는 러시아 법인 메텔리짜 컴퍼니 리미티드(채무자)의 아파나시브 빅토르 유리비치 대표이사가 지난해 12월 2일 신청한 외국도산절차에 대해 승인으로 결정했다.
문제는 승인 결정 시점에 부산지방법원에서 해당 법인이 소유한 선박을 대상으로 한 임의경매 절차가 이미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부산지법은 오는 28일 경매를 진행할 예정이다. 경매 대상 선박의 감정가는 40억351만6000원, 최저매각가는 감정가 대비 약 36% 수준인 14억5264만2000원이다. 소유자와 채무자는 모두 메탈리짜이며, 국내 채권자가 약 2081만원의 채권을 근거로 경매를 신청했다. 사건에는 ‘중복사건’ 표시도 돼 있다.
이 때문에 외국도산절차 승인이 곧바로 국내 경매를 중단시키는 효력을 갖는지 여부가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에 대해 법원 관계자는 “외국도산절차의 승인은 외국에서 진행 중인 도산절차에 대해 국내에서 ‘채무자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채무자회생법)’ 제5편에 따른 지원처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전제적 결정”이라며 “승인 자체만으로 국내 경매 절차가 자동으로 제한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외국도산절차 승인과 국내 집행 제한 사이에는 ‘지원결정’이라는 별도의 단계가 존재한다. 채무자회생법에 따르면 외국에서 개시된 도산절차가 국내에서 실질적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승인과 지원결정이 함께 내려져야 한다. 승인이 외국도산절차를 인정하는 절차적 전제라면 지원결정은 그 승인을 바탕으로 국내 권리관계에 직접 작용하는 조치다. 국내 강제집행·경매 절차의 중지, 국내 자산의 처분 금지 등의 제한은 승인만으로는 안 되고, 반드시 별도의 지원결정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이번 사안에서도 서울회생법원은 승인 결정과는 별도로 현재 진행 중인 선박 경매를 중지하는 지원결정을 이미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해당 지원결정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는 부산지법의 경매 절차가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메탈리짜는 러시아 연해주중재법원에 파산절차를 신청해 현재 심사절차가 개시된 상태다. 법원 관계자는 “향후 파산절차가 본격화될 경우 채무자의 자산에 대해 모든 채권자를 상대로 러시아 파산법에 따른 통합적 변제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며 “러시아에서의 파산절차는 그 자체로는 러시아 국외에서 효력을 갖지 않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외국도산절차 승인과 지원을 신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생 전문 김관기 변호사는 “외국도산절차 승인은 절차의 출발점일 뿐, 국내 채권자의 개별 집행을 실제로 제한하려면 반드시 별도의 지원결정이 필요하다”며 “이미 국내에서 경매 등 권리행사를 진행해 온 채권자들의 지위가 어디까지 보호되는지가 향후 실무상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미국·영국·호주·일본 등 주요 교류국의 도산절차 승인 사례는 있었지만, 러시아 파산절차를 승인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특히 러시아가 상호주의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한국 도산절차가 러시아에서 효력을 인정받는 선례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