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탈 플라스틱은 환경규제가 아니다

2026-01-12 13:00:02 게재

김동진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 이사장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탈 플라스틱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폐플라스틱 발생량을 30% 이상 줄이고 재활용률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골자다. 단순히 쓰레기를 덜 버리자는 캠페인이 아니다. 플라스틱 생산단계부터 재생 원료 사용을 의무화하고 유통과 소비 전과정에서 플라스틱 의존도를 낮추는 전생애주기 관리를 국가 전략으로 삼겠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국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문법’

탈 플라스틱은 이제 규제가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새로운 ‘표준’이자 생존 문법이다. 지금 세계는 일회용품과의 전쟁 중이다. 유엔 플라스틱 협약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제표준을 만들고 있고 유럽연합은 포장재 내 재생 원료 사용을 의무화하는 ‘포장 및 포장 폐기물 규정(PPWR)’ 을 통해 시장 판도를 바꾸고 있다. 이 거대한 흐름 앞에서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곧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탈락을 의미한다. 일회용품 감축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것이다.

왜 전세계가 이토록 필사적일까? 매년 플라스틱 4억톤 이상이 쏟아지지만 실제 재활용되는 비율은 고작 9%뿐이다. 나머지 91%는 우리 생태계를 파괴한다. 해양으로 흘러든 플라스틱은 미세플라스틱이 되어 우리 식탁을 위협하며 인체 혈액과 폐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플라스틱은 사실상 ‘고체 탄소’나 다름없다. 생산부터 폐기까지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2050년이면 전세계 탄소 예산의 15%를 차지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결국 탈 플라스틱은 탄소중립과 순환경제를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 조각인 셈이다.

특히 우리 삶과 밀접한 ‘포장재’ 분야의 변화는 숙명적이다. 국내 플라스틱 폐기물의 절반 이상이 포장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발 빠른 기업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글로벌 기업 파타고니아는 폐어망을 재활용한 의류로 연간 수백톤의 해양 플라스틱 폐기물을 감축하고 있다. 애플은 제품 전체 소재의 20% 이상을 재활용 소재로 사용하며 포장재에서 플라스틱을 완전 퇴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에게 탈 플라스틱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소비자의 인식은 ‘불편해도 친환경적인 제품을 사겠다’는 가치 소비로 옮겨갔다. 규제에 등 떠밀려 대응하기보다 포장재 설계를 혁신하고 순환경제 모델을 먼저 구축하는 기업이 미래 시장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정부 대책 중 눈에 띄는 것은 ‘일회용 컵 가격 표시제’다. 이 제도의 핵심은 소비자의 실질적 부담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정보 투명성을 높이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음료 가격에서 컵 가격을 분리해서 보여줌으로써 소비자는 일회용 컵 선택 시 발생하는 비용을 명확히 인지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이는 기업에도 이득이다. 추가 비용 지출 없이도 소비자의 자발적인 행동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일종의 ‘넛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무료라고 생각했던 일회용 컵을 내가 지불하는 선택지로 인식하게 만드는 이 장치가 다회용 컵 문화를 정착시키는 대안이 되지 않을까?

누군가의 희생 강요 아닌 우리의 약속

탈 플라스틱은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규제가 아니다. 깨끗한 바다를 지키고 우리 아이들의 몸속 미세플라스틱을 걷어내며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우리 모두의 약속이다. 정부의 정교한 정책과 기업의 기술혁신, 그리고 소비자의 현명한 선택이 맞물린다면 우리는 플라스틱 오염에서 자유로운 첫번째 국가가 될 수 있다.

탈 플라스틱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파도 위에서 우리 산업계는 지금 새로운 기회를 선점할 준비가 되었는가?

김동진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