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훈 칼럼

AI 시대와 천연가스 발전의 역할

2026-01-12 13:00:01 게재

인공지능(AI)은 거래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디지털 증기기관’이자 현대판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피지컬 AI(로봇 팔, 자율주행 트럭, 스마트 팩토리 등)를 통해 제2의 산업혁명을 맞아야 우리는 AI 선진국을 추월하는 제조업 강국으로 재도약할 수 있다. 이재명정부가 AI미래기획수석비서관을 신설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AI 데이터센터와 AI용 반도체 생산의 ‘혈관’이자 ‘젖줄’인 전력이 수도권에서 턱없이 부족하다면 이 거대한 기회는 물거품이 된다. 글로벌 AI 시장이 2030년까지 1조8000억달러 규모로 폭발할 때 우리는 전력난에 발목잡혀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은 ‘24시간 불침번’ 시설이다.

한대의 고성능 AI 서버가 600kW(약 1000가구 전력)를 소비한다. 국내 데이터센터 전체 전력 수요는 2023년 5TWh에서 2038년 30TWh로 6배 폭증할 전망인데, 원전 6~7기 추가 설치 규모다. 또한 수도권 기흥·화성·평택·이천에서 엔비디아 GPU 등에 들어가는 AI의 식량인 반도체를 생산 중인 공장도 ‘전기먹는 하마’다.

특히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용인에 반도체 공장을 신설할 예정인데 각각 9GW(원전 9기) 및 6GW(원전 6기)를 필요로 한다. 총 15GW 중 현재 삼성전자 6GW, SK하이닉스 3GW만 확보돼 추가 6GW(약 1000만가구 전력)가 시급하다. 전기가 1초라도 끊기면 수십억원의 손실, 생산 라인이 멈추는 재앙이 벌어진다.

AI시대 한국경제 성장, 전력확보에 달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를 키우지 못하면 우리 경제는 반도체·제조강국의 지위를 잃을 수 있다. 우리 경제가 앞으로 성장할지 말지는 수도권에서의 안정적 전력 확보 여부에 달려있는 것이다. 즉 전력의 안정적 확보는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공장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크게 3가지 방안에 대해 냉정하게 따져보고자 한다.

첫째,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의 대규모 송전선로를 증설하는 방안이다. 지난해 5월에 발표된 제11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2024~2038)에 따르면 호남-수도권 9개 선로, 영남-수도권 2개 선로, 영동(동해안)-수도권 2개 선로가 신규로 건설되어야 한다. 총 투자액은 약 73조원으로 천문학적 규모인데 더 증가할 수도 있다.

게다가 2038년까지 계획대로 완공되기는 만만치 않아 보인다. 중간 경로에 있는 지자체 대부분이 크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쓰지도 않는 전기를 수도권으로 운송하기 위해 내 집 앞에 고압 송전선로를 짓는 것을 달가워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 반대는 지역이기주의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둘째,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공장을 호남 등 비수도권으로 이전하는 방안이다.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용인에서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호남으로의 이전 고민”을 던진 후 논의가 되고 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의 ‘간헐성(밤·비바람 시 정지)’ ‘변동성(출력 10~20% 불안정)’ ‘경직성(급변 수요 대응 불가)’은 치명적이다.

반도체 1공장당 용수 13만톤/일(서울시민 20만 명분)도 마땅찮고, 우수 인재(박사급) 엔지니어가 수도권을 떠나지 않는다. 미국조차 AI 데이터센터를 텍사스·애리조나 등 화석연료 발전소가 풍부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짓지, 재생에너지만 풍부한 빈 땅에 짓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전은 ‘허공에 공장 짓기’로 끝날 수 있다.

​셋째, 수도권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공장 인근에 발전소를 짓는 방안이다. ‘지역에서 생산한 것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지산지소를 실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SK하이닉스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원천 중에 하나는 이천·청주 공장 부지 내에 있는 580MW 천연가스 발전소를 통한 안정적 전력 확보다.

독일의 데이터센터 클러스터는 뮌헨 천연가스 발전소 주변에 조성됐다. 미국의 오픈AI와 오라클 및 일본의 소프트뱅크는 합작으로 텍사스에 5000억달러 규모 10GW 데이터센터를 짓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데, 대규모 천연가스 발전소도 함께 짓는 등 기업이 직접 발전소를 건설·소유·운영하는 ‘코로케이션(colocation)’이 확산되고 있다.

수도권 천연가스 발전소 확대가 대안

24시간 내내 안정적인 전기가 필요한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공장을 위해서는 이렇게 천연가스 발전소 건설이 필수적이다. 수용성 이슈로 수도권에 원전이나 석탄발전소를 짓기는 어려우며 높은 지가로 재생에너지 확대도 어렵다. 반면에 수도권에는 주민 수용성 확보를 통해 이미 다수의 천연가스 발전소가 운영되고 있다.

지난해 7월 시행된 광복 80년 기념사업추진기획단의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글로벌 기술주권 강화를 위해 가장 중시해야 할 분야로 국민의 70.3%가 AI(41.8%)와 반도체(28.5%)를 꼽았다. AI와 반도체의 운명을 재생에너지에만 맡길 수는 없다. AI와 반도체를 진정한 ‘국가 먹거리’로 삼으려면 수도권 천연가스 발전소 확대가 유일하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미래에너지융합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