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누계체납액 숨기려 1.4조 국세채권 ‘위법 소멸’

2026-01-12 13:00:01 게재

‘국세 체납징수 관리실태’ 감사 결과

'소멸시효 기산점' 변경해 체납액 축소

고액체납자엔 특혜, 소액체납자는 방치

국세청이 지난 3년간 1조4000억원이 넘는 체납 세금을 위법하게 소멸시킨 사실이 감사원 감사를 통해 드러났다. 12일 감사원이 발표한 ‘국세 체납징수 관리실태’ 감사결과에 따르면 국세청은 누계체납액 축소를 위해 법령을 어기고 임의로 소멸시효 기산점을 적용해 지난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간 총 1조4268억원의 국세채권을 불법적으로 줄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세청이 위법한 체납액 감축을 시도하게 된 발단은 지난 2020년 10월 국정감사였다. 당시 국회는 국세청에 매년 발생하는 신규 체납액뿐만 아니라 누계체납액을 공개하라고 요구, 2021년부터 누계체납액을 공개하도록 했다.

2020년 10월경 국세청이 임시 집계한 결과 누계체납액은 122조원에 달했는데 이 액수가 공개될 경우 발생할 ‘부실 관리’ 비난을 우려해 국세청 본청 차원에서 누계체납액을 100조원 미만으로 낮추기 위한 ‘체납액 감축 계획’을 만들었다.

현행 국세기본법상 국세 채권의 소멸시효는 5년(5억원 이상은 10년)이다. 체납자의 재산을 압류할 경우 시효는 중단되며 압류를 해제하면 해제일 다음 날부터 시효가 다시 시작된다. 하지만 국세청 본청은 전국 지방국세청에 누계체납액 20% 일괄 감축 목표를 할당하고, 소멸시효 시작점을 ‘압류 해제일’이 아닌 과거의 ‘추심일’이나 ‘압류일’로 소급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국세청은 이러한 실적을 직원들의 성과 평가(인사·전보)에 반영하고, 세무서별 순위를 공개하며 압박했다. 실무진들은 본청 지침에 따라 전산 시스템의 날짜를 임의로 수정했다. 그 결과 5000만원 이상 고액 체납자 1066명의 체납액 7222억원이 시효 완성으로 소멸 처리됐다. 이 중에는 출국금지나 추적조사를 받던 중점 관리 대상자 289명(체납액 2685억원)도 포함돼 있었다.

감사원은 국세청장에게 국세채권 소멸시효 정비 업무를 위법·부당하게 처리한 관련자(1명)에게 주의 요구하고 2명은 인사자료로 활용하도록 통보했다. 또 국세징수권 소멸시효 기산점을 임의 적용해 국세징수권을 부당하게 소멸시키는 일이 없도록 국세행정시스템(NTIS)을 개선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했다.

감사 결과 특정 고액 체납자에게 위법 수준의 특혜를 제공된 사실도 드러났다. 서울지방국세청은 약 446억원을 체납한 A씨 일가에 대해 그들이 출국금지 해제를 요구할 때마다 이를 허용해주는가 하면 와인, 명품가방 등 압류된 재산도 임의로 해제해주기도 했다.

A씨는 재산은닉처로 의심되는 해외 페이퍼컴퍼니 소유의 고급주택에 거주하고 마이바흐 승용차를 타는 등 호화생활을 하는 것으로 파악돼 중점 관리 대상이었다. 하지만 무직 상태인 A씨가 해외기업 행사에 참석하겠다고 출국금지 해제 요청 진정서를 제출하자 담당자는 보고서에 ‘사업계약 체결’이라고 거짓으로 적어 출국금지를 풀어줬다. A씨의 아들은 증거서류 제출 없이 공항에서 전화 한 통으로 당일 출국 금지가 해제되는 특혜를 누리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감사원은 국세청장에게 압류·출국금지 해제 업무를 부당 처리한 관련자(5명)를 징계 요구하고, 서울지방국세청장에게 앞으로 고액상습체납자에 대한 압류해제 및 출국금지 해제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고 관련자(2명)에게 주의를 요구했다.

고액 체납자의 세금을 깎아주고 특혜를 제공하는 사이 소액 체납자들은 무책임하게 방치됐다. 국세징수법에 따르면 재산을 압류할 경우 한국자산관리공사에 약식감정을 의뢰해 공매 실익이 없으면 즉시 압류를 해제하고 실익이 있으면 1년 내 매각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하지만 감사원이 500만원 미만 소액체납자 56만명의 부동산 압류 및 압류해제 실태를 점검한 결과 1만7545건이 공매 절차 없이 5년 이상 방치되고 있었다. 이 중 절반이 넘는 9390건은 감정 의뢰조차 하지 않았거나 실익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국세청장에게 신속히 약식감정을 의뢰하거나 공매실익이 없다고 통보받은 압류재산은 압류해제 하는 등 소액체납자에게 경제적 불이익을 주는 일이 없도록 강제징수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통보했다.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박소원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