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게으른 일머리’가 필요한 시대, 먼저 정의(define)하라

2026-01-13 13:00:01 게재

‘게으른 일머리’가 필요한 시대다. 중요한 판단과 책임은 ‘꽉’ 쥐고 매번 씨름할 필요가 없는 일은 ‘놔’ 버리는 것, 기계의 일과 내 일을 구분하고 에너지를 어디 쓸지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태도 말이다. ‘게으른 일머리’는 개념과 절차를 정의하는 일로 시작한다. 이 단계를 가로막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니야?”라는 질문처럼 보이는 선언문이다. 이로 인해 같은 단어로 다른 것을 떠올린다는 사실을 모른 채, 우리는 관계를 틀어지게 하고, 때로는 엄청난 손실을 입기도 한다.

‘내 말 좀 들어봐’라며 시작한 대화가 ‘왜 내가 니 말을 들어야 하는데?’라고 반발하다 한참을 싸운 커플이 있다. 알고 보니 ‘듣다’라는 단어를 한 사람은 ‘귀를 기울이다’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은 ‘시키는대로 따르다’라는 뜻으로 써, 같은 단어를 담은 전혀 다른 두 가지 버전의 대화가 생성된 것이다.

언어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의되지 않은 단위와 절차로 4000억원을 날린 일도 있다. 1999년 나사(NASA)의 화성 궤도선 ‘마스 기후’는 도량형 입력 오류로 소실됐다. 제작사인 록히드마틴은 데이터를 파운드 단위로 보냈고, 나사는 같은 수치를 뉴턴 단위로 이해했다. 숫자는 오갔지만 단위에 대한 정의는 공유되지 않았다.

이상징후를 감지한 직원이 불일치를 보고했지만 문서 형식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묵살되었다. 궤적수정을 논의하는 회의에선 “고치자”는 합의까지 했지만 누가 언제까지 어떻게 할지 정하지 않아 실행되지 않았다. 데이터는 이미 위험을 말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 데이터를 끝까지 해석하지 않은 것이다.

이로 인해 탐사선은 자세제어용 추력기에서 발생하는 힘을 실제보다 약 4.45배(1파운드힘=약 4.45뉴턴) 적은 것으로 예측하게 돼 예정됐던 화성표면 위 140~150km 상공 궤도가 아닌, 57 km 상공 궤도에 진입했고, 저고도에서의 대기 압력과 마찰을 견디지 못하고 파괴됐다.

묻고 정의하지 않으면 생기는 문제들

여기에, 인간이 자주 빠지는 두 가지 착각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게 당연히 일반적이겠지’라는 거짓합의 효과, ‘이 정도 말했으면 내 의도를 알겠지’라는 투명성의 착각이다. 머릿속에 서로 다른 그림을 가지고도 공통어를 쓴다고 착각한다. 정의 없이 동의하고 각자에게만 당연한 세계를 공유된 현실이라고 믿는다.

이런 상태에서 문제를 마주하면 우리는 실수를 반복한다. 문제를 대할 때 곧장 해결책으로 달려가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교과서나 주어진 문제 설정은 의심하지 않은 채 그 안에서 답만 찾으려 한다. 그러나 정의되지 않은 문제는 해결책의 모양조차 드러내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까지가 문제인지, 무엇을 바꾸면 문제가 풀리는지. 문제를 어떻게 정의할지 묻고 비판하지 않는 순간 정의는 사고를 돕는 도구가 아니라 생각을 가두는 틀이 된다.

조직심리학 연구는 이런 ‘공유된 정의’가 팀 성과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전투 비행 시뮬레이션을 수행한 팀들을 분석해 보니 장비와 절차에 대한 이해, 서로의 역할과 강점에 대한 이해를 팀원들이 얼마나 비슷하게 가지는지가 성과를 가르는 요인이었다. 이를 ‘공유된 멘탈모델(shared mental models)’라고 부른다. 손발이 맞는 팀이란 우연히 합이 맞았다기 보다 개념과 역할, 절차에 대해 머릿속 지도를 여러 번 꺼내어 맞춰본 팀이다.

중요한 것은 함께 오래 일한다고 이런 공유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각자의 연습과 반복만으로는 머릿속 모델이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굳어지기 쉽다. 서로의 정의를 꺼내어 비교하고, 질문으로 다듬어 겹치는 부분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실수를 분석하고, 어떤 과정을 어떻게 바꿀지까지 이야기하는 발전적 피드백(developmental feedback)이 그 역할을 한다.

비싼 실수 줄이기 위해 먼저 묻기

결국 정의하고 일한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넘기던 말과 절차를 다시 붙잡아 의미와 경계를 분명히 하는 일이다. “이게 뭐야?” “어디까지야?”, “누가 언제까지 어떻게 할 거야?”를 스스로에게, 서로에게 귀찮을 정도로 묻는 시간이다. 이 주문 같은 질문을 앞에서 충분히 해 두면 뒤에서는 불필요한 회의와 오해, 감정 소모 싸움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게으른 일머리는 이런 비싼 실수를 줄이기 위해 처음에만 조금 더 느리게, 조금 더 귀찮게 시작하는 태도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 번 정의해 두고 나머지 과정을 덜어내는 사람이다.

우리는 원래 이렇게 시작했다. 세상을 향해 “이게 뭐야?”, “저건 뭐야?”를 끝없이 묻던 어린 시절, “왓 이스 댓(What is that)?” “끄-에스끄 쎄(Qu’est-ce que c’est)?”를 지겹게 물으며 외국어 공부를 하던 시절을 다시 떠올릴 때다. 먼저 정의하고, 게으르게 일하자.

박영민 카이스트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