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윤석열에게 중형을 선고해야 할 이유
“피고인 윤석열에게 사형을 구형한다.” 12.3 내란사태 우두머리 혐의의 윤석열에 대한 내란특검의 결론은 ‘사형’이었다. 헌법수호의 최고 책임자가 헌법을 유린하고, 국민의 대표가 국민의 삶을 망가뜨리려고 한 최악의 범죄에 대한 당연한 응보다. 이것은 단순한 형량의 의미를 넘어 무너진 헌법질서를 바로 세우려는 역사의 외침이기도 하다.
재판 내내 윤석열이 보여준 모습은 한때 대통령을 지냈던 이로서의 품격은커녕, 최소한의 책임감조차 결여된 ‘비겁한 권력자’의 전형이었다. 그는 비상계엄의 이유를 야당 탓으로 돌렸고, 위헌위법한 부분은 부하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가 백성들의 증오와 경멸을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경고했지만 윤석열은 궤변과 변명으로 일관하며 스스로 경멸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런 그에게 중형이 선고되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이제 사법부는 역사의 무게에 응답해야 한다.
공적 이성을 상실한 권력중독자의 추한 뒷모습
윤석열은 국민에게 사과할 마지막 기회인 결심공판까지도 ‘공적 이성’을 상실한 권력자의 추한 뒷모습만 드러내 보였다. 사과는커녕 재판 내내 히죽거리거나 귀엣말을 하며 국민 분노를 자극했다. 최후진술에서도 그는 ‘경고성 계엄’ ‘대통령 고유권한’ ‘부정선거 때문’이라는 이전 주장을 되풀이 했다. “계엄선포라는 비상벨을 울린 것에 국민들이 공감할 것”이라고 했고, “특검이 광란의 탈춤을 추고 있다”고 했다.
이런 모습은 그가 아직도 ‘권력중독’이라는 병리상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해준다. 재판과정에서도 그는 자신에 대한 과장된 평가, 인정받고 싶은 욕구,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 결여를 특징으로 하는 권력형 ‘자기애성 인격장애’의 특징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아니 그의 ‘과대성(grandiosity, 자신이 남들보다 특별하다고 믿는 심리적 특성)’이 김용현 같은 일그러진 부하의 아첨과 한줌 ‘윤 어게인’의 환호에 더욱 부풀려져 괴기한 과대망상으로 확대된 듯했다.
내란 2인자 김용현도 정상이 아니긴 마찬가지다. 그의 안중에도 내란사태로 실존적 공포를 느꼈던 국민이나 자신 때문에 평생의 인생을 부정당한 부하들은 없었다. 그 또한 타인의 고통이나 민주적 절차에 대한 존중을 찾아보기 힘든 악성 나르시시스트인 셈이다. 윤석열 김용현처럼 ‘그들만의 정의’에 함몰된 ‘망상적 확신범’들이 내란에 성공했더라면 우리 삶이 어떻게 됐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은 멀리 있지 않다. 민주주의를 뿌리째 흔들려고 한 내란행위를 옹호하는 이들이 법정 시스템의 이름으로, 혹은 당론의 이름으로 여전히 활보하고 있다. 국회를 지킨 시민들을 ‘폭동’이라고 폄훼한 김용현 변호인단이 대표적이다. 법정을 정치선동의 장으로 만든 후 스스로 ‘자랑스러운 투사’라며 의기양양해 하는 그들의 후안무치는 단순한 개인의 인성문제가 아니라 내란범죄의 확장버전이다. 서부지법 폭동의 배후로 구속되는 순간까지도 “좌파가 발작하고 있다”는 식의 헛소리를 늘어놓은 전광훈 목사같은 선무당들 또한 그렇다.
대통령의 폭주에 눈을 감고, 위헌적 계엄 선포 이후에도 그를 비호했던 국민의힘 내 일부세력도 다르지 않다. 장동혁 대표는 1년이 훌쩍 지나서야 비상계엄이 잘못임을 시인했다. 하지만 그는 입에 침이 마르기도 전에 주요 당직에 ‘찐윤·반탄·계엄옹호자’를 임명해 사과가 거짓이었음을 스스로 입증했다. 국민의힘 주류의 이런 태도 또한 보수 엘리트집단의 DNA에 새겨진 ‘내란유전자’가 언제든 발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다.
그런 만큼 이번 사법부의 판단은 윤석열이라는 한 범죄자를 격리하는 것을 넘어, 내란을 당연시하는 반민주적 카르텔에 대한 준엄한 파문(破門)이어야 한다.
헌법 제1조가 박제된 문구가 아님을 증명하라
이제 사법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정치의 시간이 온다. 재판 결과가 ‘사법적 단죄’라면, 다가올 6월 지방선거는 주권자가 내리는 ‘정치적 단죄’가 될 것이다. 지방선거가 지방의 일꾼을 뽑는 선거여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특히 이번엔 정치적 의미를 배제할 수 없어서다. 주권자의 투표가 미래를 향한 방역이라는 점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피고인 윤석열에게 내려질 형량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시는 이 땅에 ‘민주주의를 모르는 자’가 권력을 손에 쥐는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사법부는 주권자의 이름으로 가장 무거운 형량을 선고함으로써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결코 박제된 문구가 아님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그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와 사법부에 부여된 역사적 소명이다.
남봉우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