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미중 전략경쟁시대, 대중국 경제협력의 새 좌표

2026-01-15 13:00:02 게재

한중 정상회담 이후 양국관계가 안정국면에 접어들었다. 경제협력에 거는 기대도 커졌다. 그러나 낙관적으로만 보기에는 국제환경이 불안정하고 중국 상황은 가변적이다.

세계 통상환경은 과거의 연장선이 아니다. 가격경쟁력과 효율성 중심의 시대는 저물었다. 공급망 안정성·기술의존도·안보리스크 관리가 중요해졌다. 관세갈등은 표면적 현상이다. 이면에선 기술규제와 경제제재, 표준과 규범이 결합한 새로운 규칙이 생겨나고 있다.

한중 경제협력의 판세도 달라졌다. 교역과 투자 규모로 평가하는 시기는 지났다. 이제 한중협력은 양적확장의 대상이 아니라 기술·공급망·표준을 아우르는 구조적 자산 영역이다. 어떤 분야는 심화·확장하고 어떤 분야는 축소·관리할지 정밀한 전략과 세부 방식이 중요해졌다.

중국은 고속성장과 외연확장을 탈피해 중속·질적성장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올해부터 시작된 15차 5개년 규획은 성장률 수치보다 구조적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뒀다. 핵심 부품·소재·장비의 자급률을 높이고 있다. 데이터·금융·플랫폼 부문의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공급망과 디지털 경제 전반의 장악력을 키우는 전략이다.

대외개방과 관련해서는 자유무역시험구와 내수소비 확대에 도움이 되는 특정 서비스업 분야는 규제를 완화하지만 경제안보 직결 영역은 각종 심사와 허가를 동원해 조여 나가는 방식으로 재설계하고 있다.

경제협력의 위험·기회요인 동시 관리 필요

미중 전략경쟁이 장기화하면서 국제통상은 단기적 갈등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경쟁의 무대가 됐다. 미국은 공급망 협의체, 인태경제프레임워크(IPEF) 등 동맹 네트워크를 축으로 규범과 공급망을 엮어 경쟁의 틀을 제도화하고 있다. 중국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일대일로 등을 활용해 글로벌 영향력을 다변화하고 확장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중국의 통상전략은 대체 가능성의 축적이 핵심이다. 호주산 석탄·와인갈등 이후 러시아·동남아·국산 수입 비중을 늘려 왔듯이 특정국 의존도를 줄이는 동시에 다른 공급원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또한 희토류와 배터리 원료는 특정 국가에 대한 경제제재의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동시에 자국은 수출·생산 차질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구조화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 조정할 수 있는 ‘정책 레버리지’를 쌓아두는 전략이다.

이제 한중관계 개선 또는 중국특수 요인만으로는 경제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중국과의 경제협력은 단순한 수출 확대가 아니라 ‘어떤 가치사슬에, 어느 수준까지, 어떤 조건으로 얽힐 것인가’를 가려내는 ‘전략적 선별’이 필수 전제조건이다. 소비재는 중국 내수시장 점유율을 대폭 늘려야 할 영역이다. 콘텐츠와 반도체 소재·부품, 이차전지는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다변화해야 한다. 새로 떠오르는 신산업군은 중국과 함께 공동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미중 전략경쟁의 글로벌 판세가 복잡하다. 중국은 디지털화와 그린에너지, 첨단 제조업 육성을 통해 근본적인 재구조화가 진행 중이다. 대중국 경제협력의 분야와 속도, 방식을 새롭게 조합해야 할 현시점에선 기회요인과 위험요소를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복수의 시나리오를 상정한 전략좌표와 대응방안을 설계해야 한다. 정부는 분명한 원칙을 제시하고 기업은 그 틀 안에서 무역·투자전략을 조정해야 한다. 다음과 같은 방향을 포함한다.

첫째, 내수·서비스·문화콘텐츠 등 확장가능산업과 반도체·첨단부품 등 민감산업을 정밀하게 구분하는 산업지도를 만들어야 한다. 기회 요인은 로드맵을, 리스크 요소는 조기경보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둘째, 지난 5년 동안 중국 시장이 어떻게 재편되었는지 복기가 필요하다. 중국 시장에서 선전하던 한국 소비재 중에는 2020년 이후 코로나19와 지정학적 변화 속에 경쟁력을 잃어버린 품목들이 있다.

복수 시나리오 상정한 전략좌표 설계를

셋째, 중국에서 큰 정책은 중앙정부가 결정하지만 시장은 지방에서 움직인다. 지방정부와의 교류 협력을 전향적으로 확대해 시장을 키우고 내실화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이 느끼는 애로 및 건의 사항도 자체적으로 해결하려고하기보다는 중국 지방정부 루트를 통해 반영하는 것이 유효하다.

넷째, 기업 경영은 단기실적 중심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신뢰구축과 예측가능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생산·조달·연구개발을 어디까지 중국에 두고 무엇을 다변화할지에 대한 원칙이 분명할수록 의사결정 비용은 낮아지고 투자 지속성은 높아진다.

불안정한 국제질서 속에서 한중 경제협력은 여전히 중요한 전략자산이다. 관건은 낙관이 아니라 준비이며, 선언이 아니라 실행이다.

박한진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전 코트라 중국지역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