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파두의 거래정지는 누구를 위한 선택인가

2026-01-16 15:58:31 게재

K-팹리스와 대한민국 창업 생태계의 갈림길

대한민국 경제가 어렵다는 사실은 더 이상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반도체, 조선, 자동차, 디스플레이 등 그동안 우리를 먹여 살려온 성장 동력들은 중국의 거센 추격과 베트남·인도 등 신흥국의 부상 앞에서 경쟁력을 빠르게 잠식당하고 있다. 문제는 아직 이를 대체할 새로운 성장 엔진이 충분히 커지지 못했다는 데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반드시 지켜내야 할 것은 ‘기술’이다. 그리고 기술이 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 바로 자본시장이다.

최근 기술특례로 상장한 국내 팹리스 기업 파두가 장기 거래정지라는 초유의 상황에 놓여 있다. 많은 논란이 있지만, 이 사안을 단순히 ‘한 기업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파두의 거래정지는 곧 대한민국 창업 생태계 전반에 대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파두는 상장 과정에서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제시했다. 그 과정에서 과장이나 판단의 오류가 있었는지 여부는 사법부가 판단할 문제다. 그것이 법치국가의 기본 원칙이다. 그러나 지금 세계 시장에서 실제 제품을 판매하며 성장하고 있는 기업을 자본시장에서 완전히 묶어버리는 것은, 사법적 판단 이전에 산업적 생명을 끊는 결정이다.

더구나 파두는 이미 기술력으로 자신을 증명하고 있다. 구글, 메타, 스페이스엑스 등 글로벌 기업들이 파두의 제품을 채택하며 공급망에 편입시키고 있다. 이는 한국의 한 팹리스 스타트업이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의미 있는 자리를 확보했다는 뜻이다.

이 시점에서 거래정지를 장기화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회사는 자금 조달이 막혀 성장이 멈추고, 핵심 인재는 이탈하며, 글로벌 고객사는 불확실성을 이유로 등을 돌릴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미래의 성장 자원 하나를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 된다.

문제는 이 결정이 파두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도 수많은 기술 창업가들이 반도체, AI, 바이오 분야에서 ‘죽음의 계곡’을 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들이 초기에 적자를 감수하며 기술 개발에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술특례상장이라는 제도가 자본시장의 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같은 기술을 가진 기업이라도 미국에 있으면 풍부한 자본을 바탕으로 버틸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자본시장의 지원이 끊기는 순간, 기술이 있어도 문을 닫아야 한다. 바로 이 구조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기술특례상장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제 시장은 묻기 시작할 것이다. “기술특례로 상장해도,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 거래정지로 묶이는 것 아닌가?” 이 질문은 곧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고, 창업가들에게는 “차라리 처음부터 해외로 나가자”는 결론을 낳게 될 것이다.

진정한 주주 보호는 기업을 시장에서 격리하는 데 있지 않다. 기업이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이어가며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만들고, 그 결실이 주주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보호다. 과거의 문제는 법원이 판단하되, 현재의 사업 실체와 미래 가치는 시장이 판단하도록 두는 것, 이것이 자본시장의 역할이다.

파두의 거래정지를 풀어달라는 주장은 특정 기업을 두둔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이 앞으로도 기술 창업 국가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보수적 시장으로 후퇴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처벌의 속도가 아니라 균형의 지혜다. 파두가 글로벌 AI 시장에서 쌓아온 성취가 대한민국 반도체 생태계의 자산으로 남을 수 있도록, 상장시장은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 번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고영하 전(前) 한국앤젤투자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