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미국의 에너지 지배와 대한민국 에너지 안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에 대한 집착은 광기의 발로인가? 새해 벽두 미국의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체포와 이란 국민들의 저항권 행사에 이어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 시도는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미국이 타국의 영토를 ‘부동산 거래’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무력행사 가능성을 시사하며 타국 국민들의 자결권을 무시하는 것도, 동맹국에 대해서까지 미국의 뜻을 거스른다는 이유로 고율관세 부과로 위협하는 것도 제2차세계대전 이후 정립된 국제법 체제에 부합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행동임은 분명하다.
이제 규칙 기반 질서를 떠받쳐온 미국의 전략적 인내는 막을 내렸다. 국제질서는 힘과 거래에 기반한 브레튼우즈 체제 이전의 질서로 급속하게 회귀하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미국의 패권주의를 저지할 방법은 없다. 그 어떤 국가들도 미국의 패권주의에 실효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개별적 또는 집단적 역량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돈로주의(Donroe Doctrine)’로 불리는 미국의 신팽창주의의 지향점은 서반구와 더불어 기후변화에 의해 불모의 땅에서 기회의 땅으로 변모하고 있는 북극권이다. 에너지 지배력을 통해 미국의 패권을 강화하려는 ‘에너지 지배(Energy Dominance)’ 전략의 대상은 셰일가스 등 미국산 에너지에 국한하지 않는다. 미국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이상 외국산 에너지도 그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베네수엘라 사례가 보여준다.
관대한 심판자에서 플레이어로 변신한 미국
미국의 에너지 지배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공급처 확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시장이 확보돼야 하고 공급처에서 시장까지의 안전한 무역로도 확보돼야 한다. 즉 공급망이 구축돼야 한다. 미국이 한국 일본 유럽 각국에 대해 미국산 LNG 구매를 압박하는 것, 그리고 중국계 기업으로부터 파나마운하에 대한 통제권을 돌려받은 것은 이러한 시각에서 이해된다. 물론 대중국견제 등 다른 경제·군사안보 목적도 함께 고려됐을 것이다.
문제는 미국의 경제안보적 초점이 서반구와 북극권으로 이동할 때 중동·아시아·아프리카 등 다른 공급경로에서 안전이 보장될 것인지 여부다. 미국이 더 이상 안보서비스를 전세계에 걸쳐 균등하게 제공하지 않는 경우 미국 공급망 밖에서는 지역 강국들의 세력권 경쟁과 자구노력이 격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피터 자이한이 말하듯 세계가 극단적 갈등과 분열로 치닫는 각자도생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냉혹하게 말하면 미국 입장에서는 자신의 공급망 밖에서 갈등과 분열이 격화될수록 미국의 에너지 지배가 강화되는 이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에너지 수요국에 대해 그러한 갈등과 분열을 이유로 안전이 확보된 미국 공급망 내 에너지 거래를 유도하면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안보비용을 부과하거나 자국의 정책 목표를 수용하도록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공급망 밖에서의 에너지 거래가 활성화되어 미국 공급망 내로 침투하는 경우 미국의 에너지 지배가 위협받게 될 우려도 있다.
에너지는 개인의 생존, 기업의 생사, 국가의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현실 문제다. 그간 우리가 잊어버렸던 진실은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며 이러한 안보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국가는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2.0 시대, 미국은 이러한 상황을 레버리지 삼아 관대한 심판자에서 이기적 플레이어로 변모했다.
현실주의 입장에서 에너지 안보 추구해야
이처럼 국제질서가 거래와 힘 중심으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은 에너지 안보를 최우선 가치로 두어야 한다. 에너지 안보는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기에, 에너지 정책은 현실주의(realism)에 입각해 추구해야 한다. 그와 더불어 지정학적 외통수에 빠지지 않도록 에너지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한편 기존 에너지 공급망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탄소중립 가치에 경도되어 에너지믹스의 다변화를 소홀히 한 채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에너지 전환을 무리하게 추진한 결과 경제와 산업 전반의 취약성이 드러난 독일의 경험은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