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기술패권 경쟁 시대 한중 정상회담의 의미
영국의 산업혁명은 방적기와 증기기관, 그리고 철도라는 범용기술을 통해 19세기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 이러한 기술혁신은 단순한 산업발전을 넘어 해군력과 무역망, 금융을 결합한 대영제국의 글로벌 패권을 떠받치는 기술적 토대를 형성했다. 영국은 기술을 전략자산으로 인식한 최초의 국가였는데 기술은 단순히 시장의 산물이 아니라 국가권력의 핵심요소가 되기 시작했다.
20세기에 진입하며 독일제국은 대학과 연구소, 산업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과학기술 모델을 구축했고 염료와 비료, 의약품을 중심으로 한 화학산업과 전기·기계공학 분야에서 세계 선두로 부상했다. 이는 기술패권 경쟁이 국가 차원의 제도 설계와 인적자원 투자로 좌우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독일은 이러한 기술적 성공을 토대로 두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글로벌 패권을 추구했다.
21세기 기술패권 경쟁은 반도체와 인공지능(AI), 통신과 플랫폼, 양자, 우주 등 범용기술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경쟁양상은 과거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경쟁주체는 더 이상 국가에 한정되지 않으며 국가와 기업, 동맹이 결합한 복합 행위자 체계가 형성되고 있다.
경쟁방식은 추격전이 아닌 봉쇄전이다. 핵심은 범용기술의 선점이며 이를 위해 수출규제와 기술통제, 첨단 반도체와 장비나 소프트웨어 접근 차단, 국제표준기구에서의 규범 주도, 디커플링(탈동조화)과 디리스킹(위험제거), 프렌드쇼어링(우방 중심 협력)을 통한 공급망 재편이 동원되고 있다.
미중, 기술로 세계질서 재편 나서다
이는 세계 기술체계가 단일한 글로벌 시장에서 점차 분절된 블록구조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국제질서 또한 군사력 중심의 동맹구조에서 기술패권 중심의 경제·기술 동맹구조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핵심 쟁점은 ‘누가 더 앞선 기술을 보유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기술 생태계 전체를 설계하고 규칙을 정하며 접근을 통제하는가’에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2025년 11월 발표된 트럼프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NSS)’은 중대한 분기점이다. 이 문서는 미국 외교안보 정책의 유일한 목적을 ‘핵심 국가이익의 보호’로 규정하고 AI를 군사와 경제, 외교와 표준경쟁을 관통하는 전략기술로 재정의했다. 첨단기술협력과 방산거래, 자본시장 접근권 부여 등을 패키지로 제시함으로써 파트너 국가들의 전략적 선택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기술과 이익을 매개로 한 국제질서를 재편하려 하고 있다.
중국도 기술주권 강화를 외교전략의 중심에 두고 있다. 왕이 외교부장은 연말 ‘국제정세와 중국외교 토론회’ 연설에서 다극화가 진행되는 역사적 전환기 속에서 글로벌 영향력과 주도권 확대를 강조하며 AI와 스마트 제조, 녹색 에너지 등 신질생산력이 중국의 대외 경쟁력을 결정할 핵심변수임을 분명히 했다. 이는 서방의 기술봉쇄에 대응해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중국의 위치를 재정립하려는 전략적 시도다.
1월 4~7일 이루어진 이재명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이러한 역사적 전환기 속에서 이루어졌다. 이번 정상회담은 ‘실용외교’를 키워드로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이 대통령은 방문 전 CCTV 인터뷰에서 국익과 상호존중을 대화의 전제로 제시하며 ‘안미경중’을 넘어선 전략적 자율성과 실용주의를 강조했다. 공항 영접을 중국 과학기술부 장관 인허쥔이 맡은 점은 한중협력을 과학기술과 산업협력으로 확장하려는 중국 측의 의도를 드러낸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산업 공급망 관리와 경제안보가 최우선 의제로 다루어졌다. 양국은 핵심광물 수급과 디지털, 혁신과 인프라 협력 등 총 14건의 경제·민생 관련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지식재산 분야의 심화 협력과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한 양해각서 체결은 한국기업의 중국 진출 환경 개선과 기술보호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시진핑 주석은 양국의 산업망과 공급망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며 AI와 녹색산업, 실버경제 등 미래 성장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해 공동이익의 파이를 키울 것을 제안했다.
기술패권 시대 맞는 전략과 제도 설계를
골드만삭스는 생성형 AI가 향후 10년간 세계 GDP를 약 7%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했고 맥킨지는 2030년까지 누적 15% 경제성장 효과를 예상한다. 이제 경제성장의 과실을 누가 가져갈 것인가의 문제로 직결된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제조 역량과 안정적인 전력 및 인프라, 제조와 의료 및 물류와 콘텐츠 전반에 축적된 현장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에서 한국의 국가적 전략과 제도 설계가 중요하다. 2026년 한중 정상회담은 바로 그 선택의 기로에 섰음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