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면기 칼럼
뉴라이트·환빠 논쟁에서 말하지 않고 있는 것들
“과거를 바로 세우는 일이 미래를 함께 여는 길이다.” 7일 중국 국빈 방문 중 상해임시정부 청사를 찾았던 이재명 대통령이 ‘민주공화국’의 희망을 지켜냈던 독립운동가들의 헌신을 기리며 한 말이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시작된 곳, 대한민국이 지키겠다”는 방명록도 남겼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우리 정체성의 뿌리임을 확인하고 지난 정권에서 발호했던 뉴라이트와의 절연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뉴라이트는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권위주의 체제 붕괴 후 기득 보수세력이 헤게모니를 회복하려는 과정에서 형성된 사상적 정치적 흐름이다. 1990년대 말 사회주의권 붕괴 충격 속에 전향한 일부 좌파 운동권 인사들이 합류하고, 낙성대연구소 연구자들이 가세하면서 뉴라이트는 뚜렷한 진영의 윤곽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세를 불린 뉴라이트는 경직된 반공 프레임에 시장주의와 식민지 근대화론을 결합한 이데올로기를 학문의 논리로 포장했다. 분단 불가피론, 1948년 건국론, 이승만·박정희 우상화 논리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런 주장들은 이명박·박근혜정부의 교과서 논쟁을 거치면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대립시키고, 좌경세력 척결을 주장하는 정치투쟁의 구호로 변질되어 갔다.
윤석열정권은 이런 뉴라이트를 정권 이데올로기로 삼으면서 극우적 성향을 한층 노골화했다. 주요 역사기관의 장을 뉴라이트로 채우는 한편 보수 기독교 세력을 끌어들여 극우의 대중적 기반을 확장하고, 극우적 세포를 심어나갈 ‘리박스쿨’같은 플랫폼 구축에도 적극 나섰다.
이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우파적 포플리즘, 샤마니즘적 민족주의 같은 ‘반(反)역사의 역사학’에 무너진 국민들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국정의 퇴행과 난맥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환빠’, 또 하나의 ‘정치화된 역사학’
역사학은 국가전략 설계의 핵심적인 토대지식이다. 뉴라이트라는 이념정치가 윤석열정권의 파탄을 불러왔듯 왜곡된 역사관은 정책의 실패를 낳고 공동체의 미래를 오도하기 마련이다. 이런 지점에서 특히 주목할 것이 소위 ‘환빠’로 통칭되는 유사 역사학자들이다. 이들은 역사학계가 위서라고 판명한 ‘환단고기’를 근거로 한민족이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으로 이어지는 1만년 이상 찬란한 고대세계 문명을 이룩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식민사학에 ‘쪄든’ 주류 학계가 우리 민족의 위대한 상고사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확인해 둘 것은 뉴라이트나 환빠 모두 일제의 한반도 강점과 친일행위를 ‘필연’처럼 우기는 식민사관의 변종이란 점이다. 전자가 ‘식민지 트라우마’를 굴종주의적 역사관으로 뒤튼 것이라면 후자는 일제의 팽창주의적 역사관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식민사학을 그토록 비난하던 환빠들이 뉴라이트의 친일론에 철저히 침묵한 것, 실증사료를 그토록 중시한다던 뉴라이트가 환빠들의 신화적 역사인식에 눈감아 온 것이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로다.
지난해 12월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이 ‘환빠’ 문제를 거론한 후 주류 사학계와 유사 역사학계 간의 갈등이 재연되고 있다. 대통령 발언의 진의를 놓고 여러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대통령은 왜 이런 논쟁들이 아직껏 정리되지 못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양측의 접점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유사 역사학자들이 해방 이후 한국의 역사학이 고민하고 축적해온 성과들을 ‘식민사학’이라는 선동적 용어로 송두리째 매도하고 있다는 데 있다. 2015년부터 이들이 일부 정치인을 등에 업고 동북아역사재단의 하버드 고대사연구 지원사업, 동북아역사지도 사업 등을 무산시키고 재단 해체운동에 나선 것이 그 예다. 자신들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는다며 역사왜곡 대응기관을 흔드는 ‘적전분열’을 서슴지 않은 것이다.
지난해 유사 역사학자들이 민주당과 모종의 정책협약을 맺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들이 또 다시 정치세력을 꼬드겨 역사기관 진출을 기도한다면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해방 후 친일 보수세력의 비호 속에 성장한 뉴라이트가, 권위주의 정권의 ‘위대한 한국’ 서사에 복무하던 환빠들의 국민동원용 서사가 더이상 국민들의 건전한 역사인식을 흐리도록 해서는 안된다
역사왜곡 대응, 차원과 방법론 달라져야
그렇다고 주류 역사학계가 책무를 다한 것은 아니다. 공동체의 역사관은 문헌사료와 고고학적 자료로만 전승되지 않는다. 이제는 대중과의 소통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국민들에게 미래에 대한 비전과 상상력, 자주적 실용외교를 뒷받침할 새로운 역사상을 제시해야 한다.
영토적 한계를 넘어 우리 역사상의 네트워크 전략을 발굴해 나가는 것도 유력한 방법론 중의 하나다. 대통령이 말한 ‘벽란도 정신’, 장보고가 개척했던 교역 네트워크 등이 모두 그 중요한 소재들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학문으로 위장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그런 응용역사학(applied history)의 지평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