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정부의 원전 필요성 인정을 환영한다
인공지능(AI) 전쟁의 승패가 반도체칩 설계 단계를 넘어 ‘누가 더 많은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특히 첨단산업 인프라 투자 비용이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지면서 전기요금 고지서가 세계 각종 선거의 핵심이슈로 부상, 전기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현대 사회는 AI 데이터센터가 가져다주는 편리성 때문에 이것 없이는 유지되기가 어렵다. 넷플릭스와 챗GPT, 우버 등 요즘 유행하는 플랫폼 기업들은 데이터센터가 부족하거나 성능이 떨어질 경우 영상이 끊기거나 호출 성공률이 저하되는 등 각종 문제가 발생한다. ‘전기 먹는 하마’라는 악평이 있지만 전세계가 데이터센터 증설에 매달리고 있는 이유다.
전기요금 급등, 미국 중간선거 주요 변수로 등장
데이터센터 투자 비용은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져 전력생산 부담이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한국에서도 인상 압력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은 2022~2023년에 전기요금을 50%가량 일괄 인상했다. 그 이후로는 산업용 전기요금만 추가 인상, 산업용 인상률이 약 3년 여 동안 약 70%에 달하면서 미국 중국 등 주요국의 1.5~2배 수준으로 높아졌다. 이는 제품의 가격경쟁력 악화로 이어져 철강 석유화학 등 전력 다소비 업종은 물론 반도체 업체들까지도 요금인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는 올해 1분기 중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국제유가가 하락하면 다행이나 그렇지 않으면 6월로 예정된 지방선거 이후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정용 요금 중심으로 인상이 단행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에서도 전기요금 급등이 ‘뜨거운 감자’로 등장,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을 긴장시키고 있다. 미국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한해 동안 2.7% 상승에 그쳤으나 전기료는 배가 넘는 6.7%나 올랐다. 2020년 이후 전기요금 누적 상승률이 38%에 달해 소비자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자 트럼프행정부는 데이터센터의 막대한 전력소비 증가를 발주업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면서 요금상승이 일반 가정 등으로 전가되는 것을 차단하고 나섰다. 하지만 중간선거 전까지 이를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앞으로 세계 전력수요는 더욱 폭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예상 수요와 생산 능력 사이의 격차가 너무 커 이 문제가 우리 생애 안에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미래세대가 풀어야 할 과제라고 말할 정도다. 글로벌 테크기업들도 이젠 테크 발전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기술이나 인력이 아니라 에너지를 꼽고 있다. 과거에는 에너지가 산업을 지원하는 역할에 그쳤지만 지금은 에너지 자체를 어떻게 더 혁신적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시대가 됐다.
이에 따라 전세계는 재생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발전단가가 가장 싼 원전의 재가동과 지열 조력 등 과거의 기술까지 총동원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원자로 노심이 녹아내리는 사고가 발생해 미국 원자력 산업의 종말을 고했던 스리마일 원전까지 재가동하기로 했다.
이탈리아 독일 벨기에 등 탈원전 국가들이 많은 유럽도 태도를 바꾸어 원전 신.증설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은 일본까지도 원전 재가동에 나섰고 중국 역시 AI 패권의 기반이 될 에너지원을 확충하기 위해 원전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심지어 미국의 한 데이터센터는 퇴역 항공기의 제트엔진을 개조한 효율이 떨어지는 가스터빈 발전기를 긴급 투입하기도 했다.
대통령과 주무장관도 원전 필요성 인정 ‘고무적’
한국 정부도 원전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나섰다. “원전을 짓는 데 최소 15년 걸린다”며 신규 원전 건설에 부정적이던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원전 건설에 7년이 걸린다는 사람도 있다”면서 원전 건설은 정치논리가 아닌 과학적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고 강조, 에너지 정책의 대전환을 시사했다. 이어 에너지 주무장관이자 대표적인 탈원전론자였던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조차 “시장구조상 원전이 기저 전력원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면서 원전 불가피론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정부가 원전 필요성을 인정한 것은 고무적이다. 특히 올해부터 2040년까지의 중장기 전력수급 종합계획인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확정을 앞두고 나왔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정부의 탈 원전 정책 이후 크게 오른 전기료 부담으로 국민과 기업들의 허리가 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