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키신저가 이재명 외교에 던졌을 질문

2026-01-23 13:00:06 게재

만약 헨리 키신저가 살아 있다면 그는 지금 서울을 주시하고 있을 것 같다. 1월 첫째주 베이징으로, 둘째주 나라(奈良)로 이재명 대통령이 중국과 일본을 연달아 방문하는 장면을 보며 이 노회한 외교 전략가는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반세기 전 자신이 걸었던 길이어서다. 그리고 그 길이 얼마나 좁은 외줄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중일갈등에 대해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는 속담을 인용하며 “한쪽 편을 드는 것은 갈등을 격화시키는 요인”이라고 했다. 또 “어른들도 다툴 때 옆에 끼어들면 양쪽으로부터 미움받는 수가 있다”고도 했다. 키신저라면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물었을 것이다. “어느 편에도 서지 않겠다는 뜻은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2차원 제로섬 게임과 3차원 공생공영 사이

1971년 키신저는 비밀리 베이징에 들어갔다. 냉전의 한복판에서 미국이 중국과 손을 잡는다?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키신저의 계산은 정확했다. 중소분열을 활용해 소련을 압박하고 데탕트를 열었다. 이것이 ‘삼각외교’다.

2차원 평면에서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로 고정된다. 누군가 얻으면 누군가 잃는 제로섬이다. 그러나 3차원 구(球) 위에서는 180도를 넘어선다. 모두가 더 가질 수 있는 구조가 된다. 키신저의 삼각외교는 냉전이라는 2차원 세계에서의 게임이었다. 하지만 이 대통령 앞에 놓인 동북아는 다른 가능성을 품고 있다. 갈등의 어부지리가 아니라 평화와 협력으로 공영하는 3차원의 판을 짤 수 있다면 어떨까.

이번 상황은 흥미롭다. 중국은 한국이 한·미·일 구도에 편입되는 것을 막고 싶고 일본은 중국과의 갈등 속에서 한국을 끌어들이고 싶어했다. 결과적으로 중일 양국이 경쟁적으로 한국에 손을 내밀었다. 이 대통령은 베이징에서 시진핑 주석과 90분간 정상회담을 갖고 ‘한중관계 완전 복원’을 선언했다. 나라에서는 다카이치 총리와 공급망·경제안보 협력을 확인했다. 중일갈등에는 선을 그으면서도 중국에 한한령(限韓令)을 꺼내고 일본에는 한·중·일 협력을 제안하며 상대가 불편해할 이야기도 우회하지 않았다. 이 절제된 태도가 양국에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중일갈등이 ‘남의 싸움’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중국은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발언 이후 희토류 수출을 사실상 중단했다. 한국의 전기차·반도체·배터리·방산도 희토류 없이 돌아가지 않는다. 일본 사례가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다.

‘어른들 싸움에 끼어들면 미움받는다’지만 가만히 있어도 미움받을 수 있다. 자칫하면 양다리외교로 오해받는 함정이 생긴다. 상황에 따라 이쪽에 붙었다 저쪽에 붙었다 하다가 결국 양쪽 모두에게 ‘믿을 수 없는 파트너’로 찍히고 버림받게 된다. 균형외교는 줄타기가 아니라 ‘중심잡기’다. 흔들려도 넘어지지 않는 무게중심을 만드는 것이다. 3차원 공생공영의 판을 짜는 것과 양다리외교는 전혀 다르다.

‘한국 빠지면 모두가 손해 보는 구조 만들라’

키신저가 이 대통령과 마주 앉는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중견국이 강대국 사이에서 판을 짜기는 쉽지 않습니다. 레드라인을 선언하고 지키는 것도 강대국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중견국에게도 길이 있습니다. 한국이 빠지면 모두가 손해 보는 구조를 만드십시오.”

비스마르크는 독일 통일 후 더 이상 영토를 확장하지 않았다. 대신 주변국 모두가 ‘독일과 싸우는 것보다 관계를 유지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지금 한국이 가야할 길이다. 미국에는 반도체·배터리·조선에서 대체불가능한 파트너라는 인식을 심어야 한다. 중국에는 ‘한국을 압박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크다’는 계산을 심어야 한다. 일본과는 역사문제를 관리하되 경제안보에서 상호의존을 강화해야 한다. 한국이 빠지면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손해라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자기 편을 들라’는 압박에서 자유로워진다. 균형외교의 핵심은 모두를 만족시키는 게 아니다. 모두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동북아 협력의 새 판을 제안한 것은 의미 있는 출발이다. 그러나 출발일 뿐이다. 공존의 조건은 한국이 설계해야 한다. 남이 깔아준 판에서라면 그건 적응일 뿐이다. 싸움을 말리는 것은 좋은 시작이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면 안된다. 갈등의 어부지리가 아니라 평화와 협력으로 함께 번영할 3차원의 판을 직접 짜야 한다. 싸움을 말리는 외교와 판을 짜는 외교는 다르다. 이재명 외교의 2026년이 그 차이를 증명할 시간이다.

김기수 정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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