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EU가 선택한 차별금지법의 경제 논리
저출산이 독일과 한국 모두에서 숙련노동자 부족을 야기하고 경제성장률 둔화와 잠재성장률 하락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된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볼 때 독일의 숙련노동자 부족은 인구의 절대적 감소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여성, 고령자, 이주배경 노동자, 장애인 등은 여전히 노동시장 참여율이 낮거나 고용이 불안정한 집단으로 분류된다.
이와 관련해 독일과 유럽연합(EU)은 숙련노동자 부족을 인구감소 문제만이 아니라 노동시장 배제와 인적자원 미활용이라는 문제로 파악한다. EU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공동으로 발간한 ‘유럽연합의 차별 퇴치’ 보고서는 노동력 부족의 핵심 원인 중 하나로 차별을 지목한다.
EU·OECD, 차별을 노동력 부족의 핵심원인으로 지목
차별에 대한 EU 차원의 대응은 명확하다. EU는 고용평등지침(2000/78/EC), 인종평등지침(2000/43/EC) 등 여러 차별금지지침을 통해 고용 및 직업 영역에서의 직접차별과 간접차별을 금지하고 회원국에 실효적인 권리구제와 제재를 의무화해왔다. EU는 차별금지를 기본권 보호뿐 아니라 노동시장 통합과 노동력 배분의 효율성 제고라는 경제적 목표와 결합시킨다.
독일의 일반평등대우법(AGG)은 이러한 EU 차별금지 지침을 국내법으로 충실히 이행한 대표적 사례다. AGG는 고용 및 직업 영역에서 인종·민족적 출신, 성별, 종교 또는 세계관, 장애, 연령, 성적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을 전면적으로 금지한다.
특히 채용 단계에서부터 근로관계 종료에 이르기까지 노동관계 전과정에 적용되며 채용 공고의 문언, 면접 기준, 승진·보수 결정, 직업훈련 접근, 해고까지 차별적 요소에 대해 법적 통제가 가능하다.
이는 숙련노동자 부족 문제와 관련해 결정적인 의미를 가진다. AGG는 노동시장 진입뿐 아니라 노동시장 잔존과 복귀까지 보호함으로써 출산 이후 여성 숙련노동자, 고령 숙련노동자, 장애인 및 이주배경 노동자가 노동시장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법적 장치를 제공한다. 이는 이미 형성된 숙련을 유지·활용하는 효율적인 대응 방식이다.
차별금지, 인구감소 시대의 성장 인프라
‘유럽연합의 차별 퇴치’ 보고서에 따르면 성평등과 연령차별 금지 수준이 높은 국가일수록 고용률이 높고 중장기적으로 국내총생산(GDP) 성장 잠재력이 유지되는 경향이 확인된다.
차별은 개인의 소득 손실을 넘어 사회 전체의 생산성 저하와 재정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반대로 차별금지 규범이 실효적으로 작동할 경우 숙련노동자 부족은 완화되고 경제활동인구 감소의 속도 역시 늦춰진다.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숙련노동자 부족 문제에 대한 독일과 한국의 차이는 인구정책의 차이만 아니라 노동시장 포용성을 법적으로 보장하는지 여부에서 발생한다.
EU와 독일의 경험은 차별금지법이 인권 규범을 넘어 인구감소 사회에서 경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핵심 성장 인프라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 점에서 한국도 차별을 체계적으로 규율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황수옥
독일정치경제연구소
노동법·차별금지법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