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전 7승 ‘선거의 달인’…‘킹메이커’ 역할도

2026-01-26 13:00:15 게재

시스템 공천으로 180석 압승 지휘

온라인 정당 추진, 당원 참여 발판

이해찬 수석부의장은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며 학생운동과 재야활동을 거쳐 정치에 입문했다.

1952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덕수중·용산고를 거쳐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한 1973년 10월 교내 유인물 사건에 연루돼 수배됐고, 이듬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1년 가까이 옥고를 치렀다.

1980년 대학에 복학한 그는 같은 해 6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다시 구속됐고, 2년 만에 성탄절 특사로 풀려났다.

1987년 평화민주당에 입당한 그는 이듬해 13대 총선에서 서울 관악을 지역구에서 민주정의당 김종인 후보를 꺾고 국회에 입성했다. 서울 관악을 지역구에서 13대 총선부터 17대까지 내리 5선을 했고, 이후 지역구를 세종시로 옮겨 19·20대까지 포함해 7선 의원을 지냈다. 특히 2016년에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의 공천에서 컷오프돼 무소속으로 세종에 출마해 당선된 뒤 복당하기도 했다.

여의도 정치 무대에서는 대선과 총선 때마다 기획·정책을 맡아 승리를 이끈 ‘선거의 달인’으로 불렸다. 1997년과 2002년 두 차례 대선에서 기획본부장으로 진두지휘하며 승리에 기여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뿐 아니라 문재인, 이재명 대통령과도 깊은 인연을 이어가며 ‘킹메이커’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선거에서 이기는 법’을 주제로 강연하며 “왜 선거에서 지는지 모르겠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서울시 정무부시장(1995년), 교육부 장관(1998년), 국무총리(2004년) 등을 지내며 지방자치와 제도권 정치의 정점을 두루 경험했다. 2007년 대선에도 도전했으나 경선에서 패했다.

이후 두 차례 당대표를 지내며 2018년 ‘20년 집권론’을 내놓았고,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시스템 공천을 앞세워 180석 압승을 이끌었다. 온라인 정당을 구상하며 휴대폰을 활용한 정책 의견 개진과 당원 투표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시대적 과제 앞에서 원칙과 소신을 굽히지 않으면서도 안정과 개혁을 조화롭게 끌어내는 탁월한 지도력을 보여줬다”며 “특히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새로운 국가 비전을 제시하고 수도권과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혁신적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고인을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 그 자체”,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현장에서 답을 찾고 국민 삶을 기준으로 정치를 올바르게 세우기 위해 평생을 바치신 분”이라고 추모하며 “항상 권력의 중심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곳, 소외된 이들의 눈물이 고인 곳을 향해 시선과 발걸음을 두던 모습으로 민주개혁세력을 이끌어 주셨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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