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한재우 한국전통서당문화진흥회 사무총장
“관계 중시하는 서당 교육, 인공지능 시대에 더 필요”
1920년대 2만곳 넘던 서당 40여곳으로 줄어, 국가유산 지정 추진 … 현대인 대상 ‘삶을 마주하는 태도’ 교육으로 확장
한국전통서당문화진흥회(진흥회)는 전통 서당 교육과 예절 문화를 계승하며 인성 교육의 가치를 현대 사회에 되살리는 비영리 단체다. 고구려 경당(扃堂)에 뿌리를 둔 서당은 약 1600년 동안 민간 차원에서 이어져 온 우리 고유의 교육 방식이다. 최근 송수근 이사장 취임을 계기로 진흥회는 전통을 지키는 데서 나아가 디지털 콘텐츠 기반의 확장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27일 한재우 진흥회 사무총장을 서울 동대문구 집무실에서 만나 서당 교육의 의미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들었다.
●진흥회는 어떤 단체인가.
전통 서당 교육과 예절 문화를 계승해 국민의 인성 함양과 도덕 윤리 의식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 단체다. 서당은 단순히 글자를 가르치던 공간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먼저 묻던 교육의 출발점이었다. 진흥회는 사라져 가는 서당 문화를 오늘의 언어로 풀어내고 이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서당은 어떤 역사적 배경 속에서 형성됐나.
서당의 뿌리는 고구려 소수림왕 시기의 경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가가 운영한 향교와 달리 서당은 민간이 자발적으로 세운 교육기관이었다. 신분을 가리지 않고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나 받아들였다. ‘유교무류(有敎無類)’라는 말처럼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는 정신이 서당의 생명력이었다.
●서당은 어느 정도 남아 있나.
과거엔 마을마다 서당이 있었다. 과거 신문에 따르면 1923년 5월 기준 2만2057곳이 있었으며 학생은 28만864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산업화와 공교육 확산, 최근 코로나19 상황까지 겹치며 급격히 줄었다. 전국적으로 40여곳의 전통 서당이 남아 있다. 대부분 농촌이나 중소도시에 분포해 있다. 서당에서 가르치는 훈장 역시 고령화가 진행돼 전승의 위기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서당의 가르침이 오늘날에도 유효한가.
오히려 지금이 더 절실하다. 현대 교육이 ‘무엇을 아는가’에 집중한다면 서당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친다. 지식은 검색과 인공지능(AI)으로 얻을 수 있지만 관계를 맺는 법,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와 경청은 훈련 없이는 길러지기 어렵다. 서당 교육의 핵심 가치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가장 따뜻한 지혜’다.
●사자소학을 중요하게 가르친 이유도 그 때문인가.
그렇다. 서당에서는 천자문보다 사자소학을 먼저 배웠다. 사자소학의 첫 글자가 ‘아버지 부(父), 어머니 모(母)’다. 나 자신을 말하기 전에 관계의 근원부터 배우는 것이다. 부모를 어떻게 대하고 형제 이웃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가 교육의 출발이었다. 요즘 가장 부족한 교육 중 하나다.
●학교 교육과 서당 교육의 관계는 어떻게 정립해야 하나.
상호 보완적이다. 학교가 지식을 담는 곳이라면 서당은 그 지식을 담을 그릇, 즉 인성을 만드는 곳이다. 현실에서는 입시 중심 교육으로 인해 서당 교육이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교육’으로 밀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관계 때문에 힘든 경우가 많다. 서당 교육은 이를 풀어갈 관계의 기술을 가르친다.
●진흥회는 어떤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나.
훈장들이 학교 유치원 등을 찾아가는 ‘찾아가는 예절서당’을 운영하고 있다. 연간 400여곳에서 4만여명의 아이들을 만난다. 또 아이와 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가족 서당 스테이’, 고령층을 위한 인문 프로그램, 전통 놀이와 체조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교육 콘텐츠를 운영한다. 고전 교재를 한글로 번역하고 축적하는 사업도 병행한다.
●전통 계승과 현대화 사이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가장 큰 과제는 인력 양성이다. 한학 실력뿐 아니라 현대 교육 언어와 디지털 감각을 갖춘 차세대 훈장을 키워야 하는데 쉽지 않다. 또 입시 중심 공교육 체제 안에서 서당 교육이 제도적으로 자리 잡기 어려운 한계도 있다. 그래도 서당의 핵심 가치만큼은 타협할 수 없다.
●서당의 국가유산 지정도 추진 중이라고 들었다.
서당은 약 1600년 이상 단절 없이 이어진 세계적으로 드문 교육이다. 일제강점기에도 민족의 정신을 지켜낸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국가유산으로 지정된다면 훈장을 전승자로 인정하고 안정적인 교육 환경을 마련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생길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할 계획이다.
●송 이사장 취임 이후 중점 방향은.
송 이사장은 취임하면서 ‘서당 전통 교육 문화의 오래된 미래’를 비전으로 제시했다. 서당을 과거의 유물로 두기보다 인공지능 시대에 어떤 사람이 필요한지에 답하는 교육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근현대 발간물들에 대한 번역 관련 작업을 하는 민간기업인 ‘19세기발전소’와 함께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한자로 적힌 기록물이 많으나 이를 번역할 전문 인력은 충분하지 않은 가운데 한국전통서당문화진흥회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또한 서당 교육을 어린이에 국한하지 않고 중장년이나 퇴직자, 고령층처럼 삶의 전환기를 맞은 이들에게도 의미 있는 인문 예절 관계 교육으로 확장해 나가고자 한다. 더불어 현대인들에게 ‘삶을 마주하는 태도’ ‘관계 속에서의 진정한 나’를 마주하는 인문 치유 프로그램으로 확장하고자 한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