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 칼럼
기업들 ‘잘하기 경쟁’에 박수를
새해 첫 달 증시가 뜨거웠다. 코스피지수가 5000을 뚫었다. 코스닥지수도 1000을 넘어섰다.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친 국내 증시 시가총액(1월 28일 기준 3조2500억달러)이 독일(3조2200억달러)을 추월하며 세계 10위로 올라섰다.
한국 증시 시가총액이 제조업 강국인 독일을 능가한 데는 인공지능(AI) 투자 붐을 탄 반도체 슈퍼 사이클 영향이 컸다. 반도체 투톱의 실적은 놀랍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 333조원에 43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냈다. 지난해 4분기 반도체에서만 매출 44조원에 16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매출이 97조원, 영업이익이 47조원을 각각 넘어섰다. 둘 다 역대 최대다. 특히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률은 58%로 대만 TSMC(54%)를 제쳤다. 두 기업의 어닝 서프라이즈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 확대와 메모리 가격 상승 덕분이다. 올해 양사 영업이익은 200조원을 넘어 300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1월 29일 양사는 1시간 간격으로 실적발표 설명회를 갖고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 HBM4 주도권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SK하이닉스는 “HBM3(4세대)나 HBM3E(5세대)와 마찬가지로 압도적 시장점유율이 목표”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동안 HBM시장에서 고전하며 언급을 자제했던 삼성전자는 HBM4 기술력과 고객사 평가를 공개하며 “2월부터 양산한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하이닉스, 치열한 '기술력 경쟁’
세계 주요국간 반도체 기술패권 경쟁이 치열하다. 삼성전자가 주춤한 사이 다른 나라 기업이 아닌 SK하이닉스가 투자를 늘려 HBM 챔피언이 되었다. 삼성전자가 한발 늦게 메모리 재설계에 성공하며 귀환했다. 올해 관전 포인트는 SK하이닉스의 HBM 1위 수성과 삼성전자의 기술 반격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더욱 팽배해진 자국중심주의, 보호무역주의, 대미투자 압박 등 어려운 대외환경에도 반도체 위상을 지켜낸 기업들의 ‘잘하기 경쟁’ 성과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증시 랠리를 이끄는 반도체 착시효과를 빼면 경제체력은 한계를 드러낸다. 지난해 성장률은 가까스로 1.0%에 턱걸이했다. 더구나 그 중 0.9%포인트는 반도체 수출 몫이었다. 7000억달러를 돌파한 수출도 반도체를 빼면 마이너스였다. 올해 성장률도 잘해야 1.9%안팎으로 저성장이 고착화하고 있다. 우리나라 10대 주력산업이 20년 넘게 그대로인데다 과반은 중국 등 경쟁국의 추격 속에 경쟁력을 잃고 있다.
반도체·자동차·조선·방산 정도만 달릴 뿐 철강·석유화학·디스플레이·이차전지 등은 제자리걸음이거나 뒷걸음치고 있다. K-팝 등 한류에 붙어야 할 ‘K’자형 양극화가 산업에도 심화하며 고용과 투자, 내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 꿈으로 여겼던 ‘오천피’ ‘천스닥’ 시대가 열렸다고 들뜰 때가 아니다. 반도체·자동차·조선 등의 뒤를 이을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 현대차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에서 보듯 로봇과 바이오 등이 각광받지만, 이들만으론 부족하다. AI, 자율주행, 양자컴퓨터 등 미래 신산업 육성은 주가나 경제성장률 떠받치기 차원을 벗어나 국가 생존과 직결된 일이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2023년부터 4년 연속 경제규모가 16배인 미국보다 낮은 것은 기술혁신과 융합, 창업이 활발하지 못한 탓이다. 이런 면에서 정부가 엊그제 ‘국가창업시대’를 선언한 것은 의미가 있다. 정부는 대통령 주재 창업전략회의를 열고 벤처·스타트업 바람을 일으키기 위한 정책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10개 창업도시와 창업 실패자의 재기를 돕는 1조원 규모 재도전 펀드를 조성한다.
창업 이후가 아닌, 아이디어 단계부터 지원하기 위해 3월부터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테크·로컬 분야 5000명 창업인재 선발로 출발해 시도·권역별 예선·본선 오디션을 통해 추린 ‘창업 루키’ 100명이 대국민 창업경연대회에 참여한다. 최종 우승자는 10억원을 지원받는다.
창업 오디션 앞서 네거티브 규제개혁부터
정부는 창업 오디션을 TV로 방송해 열기를 북돋을 계획이다. 하지만 이에 앞서 정부와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이 있다. 벤처·스타트업 등이 기존 사업자나 낡은 진입 규제와 씨름하느라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고 사업을 포기하는 현실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신산업 태동을 가로막는 인허가 규제를 특별히 금지하는 것을 빼고는 모두 할 수 있도록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꾸자.
창업은 물론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노동·교육·금융·공공 부문에 대한 구조개혁을 단행하자.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각종 규제를 당국이 허용해야 기업이 할 수 있는 포지티브 방식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구조개혁을 통한 국가 대전환을 선언하며 개혁 대상으로 규제·금융·공공·연금·교육·노동 등 6대 분야를 지목했다. 국민에게 약속·선언한대로 하면 된다.
경제저널리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