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월가 중심의 미 연준, 달라질까
차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으로 지명된 케빈 워시는 새로운 얼굴이라기보다, 미국 금융·정책 엘리트 구조가 오랜 시간에 걸쳐 길러낸 인물에 가깝다. 그의 이력은 트럼프 시대에 연준이 어떤 역할과 위상을 요구받고 있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워시는 1970년 미국 뉴욕주 앨버니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스탠퍼드대에서 공공정책을 전공한 뒤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법학박사(JD) 학위를 받았다. 경제를 수식이나 이론이 아닌 제도와 법, 정책 결정 구조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은 이 시기 형성됐다. 그는 학자형 중앙은행가라기보다 정책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심을 둔 인물이었다.
연준 의장직을 목표로 장기간 신뢰와 네트워크를 쌓아온 인물
그의 커리어는 월가에서 시작됐다. 1995년 모건스탠리에 입사해 인수합병(M&A) 업무를 담당하며 금융 실무를 익혔고, 부사장급까지 올랐다. 이후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대통령 경제정책 특별보좌관과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실무 총괄(Executive Secretary)을 지내며 정책 결정의 중심부로 이동했다. 월가와 워싱턴을 모두 경험한 이력은 그를 이론 중심의 관료와 구별 짓는 요소다.
2006년 워시는 역대 최연소인 35세의 나이로 연준 이사에 임명됐다.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 그는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의 핵심 실무 참모로서 위기 수습에 관여했다. 유동성 공급과 금융 시스템 안정이라는 중앙은행의 비상 권한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현장에서 경험했다. 이 과정은 워시에게 위기 시 강력한 개입의 필요성과, 위기 대응 과정에서 확대된 연준의 권한이 정상화되지 않을 경우의 위험성을 동시에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의 성향이 분명히 드러난 계기는 2010년이었다. 연준이 2차 양적완화(QE)를 결정하자, 워시는 이사들 가운데 유일하게 인플레이션 위험을 이유로 반대했다. 완화 기조를 유지하던 버냉키 의장과의 견해차는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워시는 2011년 임기를 7년이나 남겨둔 채 연준을 떠났다. 이 사건은 월가와 정책권에서 그를 매파적 인사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연준을 떠난 뒤 워시는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에서 활동하며 양적완화와 중앙은행 권한 확대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동시에 기업 현장과의 연결도 유지했다. 특히 그는 2011년 이후 전설적인 투자자 스탠리 드러켄밀러의 패밀리 오피스에서 파트너로 활동하며 정책 비판자이자 시장 참여자로서의 위치를 이어왔다.
이 과정에서 워시는 수동적으로 지명된 후보라기보다, 연준 의장직을 목표로 장기간 신뢰와 네트워크를 쌓아온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드러켄밀러와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등 금융시장 핵심 인사들은 그가 이 역할에 적합하다는 인식을 주변에 공유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개인사에서 자주 거론되는 대목은 혼인 관계다. 워시는 에스티 로더 가문의 상속자인 로널드 로더의 딸과 결혼했다. 로널드 로더는 공화당의 주요 정치 후원자이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오랜 친분을 유지해온 인물이다. 이는 워시가 속한 엘리트 네트워크의 성격을 보여준다. 워시는 단순한 인플레이션 매파로 규정하기 어렵다. 그는 초저금리와 대규모 자산매입이 금융시장의 가격 신호를 왜곡하고, 연준의 역할을 과도하게 넓혔다고 본다. 동시에 인공지능과 기술 혁신이 생산성을 끌어올릴 경우 중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화될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월가에 쏠린 정책의 무게 메인스트리트로 되돌릴지 관전 포인트
워시는 연준 정책이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사이의 균형을 무너뜨려 왔다는 문제의식도 드러내 왔다. 그는 작년 11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월가에 자금이 너무 쉽게 흘러가고, 메인스트리트의 신용은 지나치게 조여 있다”고 지적하며, 과도하게 확대된 연준의 대차대조표를 축소하고 금리 인하를 통해 자금을 가계·중소기업 쪽으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인식은 ‘월가는 배부르고, 메인스트리트는 소외됐다’는 트럼프 지지층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결국 워시의 연준은 금리를 얼마나 올리고 내리느냐보다, 통화정책이 만들어내는 부와 신용의 흐름을 어디로 돌릴 것인가를 묻는 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월가에 쏠린 정책의 무게를 메인스트리트로 되돌릴 수 있을지, 그 균형 회복의 성패가 워시 체제 연준의 진짜 시험대가 될 것이다.
김상범 국제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