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경제, 교역을 넘어 파트너십으로

2026-02-02 13:00:01 게재

기능적 비대칭성에 갇힌 3국경제 재정의 시점…한반도 평화 출발점은 경제·기술 질서의 안정

그동안 한중일 3국의 경제관계는 교역 규모와 무역수지, 수출입 품목 비중과 같은 지표를 중심으로 설명되어 왔다. 2025년에 한국은 대중 무역에서 약 112억달러 적자, 대일 무역에서 약 206억달러 적자를 기록했고, 중국은 대일 무역에서 중국 세관 발표 기준으로 약 75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일본 세관 기준으로는 일본이 500억달러 이상의 적자).

그러나 이러한 수치들은 단순한 교역 성과라기보다 전기·전자와 중간재 상호의존(한중), 장비·정밀기계·핵심 부품 중심의 일본 우위 구조(한일), 상류 장비를 수출하는 일본과 하류 완제품을 대량 공급하는 중국의 분업 구조(중일)라는 구조적 분업의 결과에 가깝다. 중국이 철강·전자·기계류 등 제조업 분야에서 진행하는 '디플레 수출'(저가 공세)은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수요 및 가격 측면의 외생 충격으로 작용하여, 물가안정이라는 효과가 있는 반면 자국 산업 압박이라는 양면성을 갖는다.

이에 따라 자국 제조업 경쟁력 강화, ‘팍스 실리카 구상’ 같은 기술 안보, 공급망 및 수출시장 다변화 등의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누가 얼마나 교역하느냐가 아니라 각국이 어떤 강점을 바탕으로 어떤 역할과 책임을 분담할 것인가이다. 교역을 넘어 경제·기술 안보와 규범의 관점에서 한중일 관계를 재구성하지 못한다면, 동북아의 불안정은 구조화될 수밖에 없다. 이 전환은 한반도 평화 논의의 출발점이자 전제 조건이기도 하다.

구조적 전환 필요한 동북아 경제

한국은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 제조와 빠른 응용·상용화 능력을 갖췄지만 중소기업 경쟁력 약화, 에너지·광물의 해외 의존이라는 취약성을 안고 있다. 여기에 성장 잠재력 저하, 높은 가계부채와 부동산 의존, 주력 수출품에 의존도가 높은 산업 구조 또한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과제다.

일본은 소재·부품·장비와 정밀 기술, 국제 표준과 품질 규범 형성에서 강점을 유지하고 있으나, 고령화와 자원 의존이라는 부담을 피할 수 없다. 여기에 공공부채와 생산성 정체, 물가고, 실질임금 하락이 겹치며 일본 경제의 정책 여력과 내수 회복력을 동시에 제약하고 있다. 중국은 대규모 생산 스케일과 기술 확산 능력을 바탕으로 전기차·배터리·태양광 등 이른바 '신 3대 품목'에서 압도적인 공급 능력을 보이며 성장해 왔지만, 투자 주도 성장의 한계와 내수 부진이라는 구조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세 나라는 기술과 산업에서 맡는 역할이 서로 다르다. 일본이 핵심 소재·부품과 표준을, 한국이 고부가가치 제조와 응용을, 중국이 대량 생산과 시장 규모를 주도하는 구조다. 문제는 이러한 차이가 상호 보완적 분업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한쪽의 우위가 다른 쪽의 의존으로 굳어지는 ‘기능의 불균형’으로 고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농식품과 물류, 관광·서비스 등 생활경제 영역에서도 한중일은 깊은 상호의존 관계를 형성해 왔다. 문제는 이 구조가 상호 보완적 분업으로 관리되지 못한 채, 전략적 불신 속에서 경쟁과 충돌의 구도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중 관계는 의존이 아닌 관리 문제

한중 경제관계는 정치·외교적 긴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높은 의존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대중국 무역의존도는 2020년 24.6%에서 2025년 20.3%로 줄었어도 1위의 무역상대국이다. 이는 한중 관계가 단절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임을 의미한다. 탈중국이라는 구호는 전략적으로는 매력적으로 들릴 수 있으나, 현실적 선택지가 되기는 어렵다. 대신 필요한 것은 디리스킹을 중심으로 한 영역별 관리 전략이다.

실제로 1월 초 이재명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공급망 안정, 친환경·디지털 전환, 중소기업·지방 협력 등 비민감 분야를 중심으로 다수의 협력 MOU가 체결되면서 경쟁 속 관리라는 관계 설정이 재확인되었다.

이러한 조건 아래에서 한국의 선택은 중립이나 회피가 아니라 비용을 감수한 조정의 문제로 귀결된다. 핵심 기술과 안보 연관 산업에서는 미국·일본과의 규범 정합성을 우선시해야 하지만, 비민감 생활경제 영역에서는 중국과의 협력을 병행해야 한다. 결국 한국의 전략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비용을 관리하며 역할을 설계하는 문제다.

한일 관계 재정의 : 규범 파트너십으로

한일 간 무역 갈등은 양국 경제가 정치 논리만으로 쉽게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첨단 기술 분야에서 한일은 서로를 대체할 수 없는 파트너다. 한일 협력의 핵심은 교역 확대가 아니라 기술 표준과 품질·안전 규범, 공급망 신뢰성을 함께 구축하는 데 있다. 실제로 1월 중순 이재명 대통령의 일본 방문과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반도체·배터리 공급망 협력, 첨단 기술 공동연구, 청정에너지 전환, 청년·기업 교류 확대 등이 논의되며 갈등 관리 중심의 관계를 넘어 규범과 신뢰를 축적하는 경제 파트너십이 확인되었다. 이는 충돌을 전제로 하지 않는 경쟁 환경 속에서 한국과 일본이 규범 형성의 공동 주체로 설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중일 관계의 대립 : 경쟁 관리할 질서 부재

중일 관계는 산업 중첩과 기술 경쟁으로 갈등이 구조화되고 있으며, 양국의 국내 정치가 상호 대립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측면도 적지 않다. 그러나 최근 미·중 관계에서 관세 전쟁 등 전략적 경쟁 속에서도 정상회담 등을 통해 긴장을 관리하는 흐름도 함께 나타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중일 간 관계 또한 관리 가능한 질서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중일 양국이 대립을 선호한다면 동북아 전체의 불확실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경쟁 또는 협력을 조율할 규범 기반 장치가 중일 간에 충분히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중일 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북아 전체의 불안정성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북한 문제와 한반도 평화의 경제적 전제

북한은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며 이를 체제 유지를 위한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북·중·러 협력 구도를 배후 기반으로 경제 안정과 자립 노선을 지속하고 있다. 핵과 미사일은 북한에게 체제의 보검일 수 있으나 국제관계 전반에는 상시적 긴장을 유발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북한은 한반도 ‘적대적 두 국가론’을 헌법화하면서 관계 전환의 출구를 북미 관계에서만 찾는 한계를 안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한중일 경제 관계의 안정은 북한 문제로 인한 급격한 충돌을 억제하는 구조적 완충 지대로 기능할 수 있으며, 한반도 평화는 선언이나 이벤트가 아니라 경제·기술·규범의 안정이라는 환경 위에서만 지속 가능하다.

경쟁의 핵심, 상품보다 규칙과 표준, 신뢰

21세기 경제 경쟁의 핵심은 상품보다는 규칙과 표준, 신뢰에 있다. 데이터 이동과 공급망, 기술 이전에서 한중일이 최소한의 공통 규범을 형성하지 못한다면 동북아의 경제 안전보장과 전략적 자율성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한중일은 환경과 생활경제 영역에서 협력 경험을 축적해 왔으며, 금융 분야는 그 대표적 사례다. 한일 통화스왑의 복원과 한중 통화스왑의 연장, 치앙마이 이니셔티브와 같은 역내 금융안전망은 위기 시 유동성 지원이라는 실질적 기능을 수행해 왔다. 여기에 한중일의 스타트업과 혁신 기업들은 헬스케어와 친환경 기술, 농식품, 물류, 관광·콘텐츠 등 비민감 분야에서 이미 협력을 넓혀가고 있다. 다만 규범과 신뢰는 외교적 선언만으로 유지될 수 없으며, 산업 경쟁력과 제조·데이터 역량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실효성을 갖는다.

한중일 경제 관계는 양적 교역의 단계를 넘어 질적 파트너십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산업 정책과 외교 전략, 통상 협상이 따로 움직이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하나의 전략 아래 조율되는 체계가 필요하다.

그 일환으로 양자 간에 추진해온 ‘통상·안보 2+2 협의’와 같은 틀을 3국 차원의 대화 채널로 출범시키는 방안도 검토할 만한 과제다. 한중일 사이에 강점을 살린 역할 분담과 자강에 기반한 규범 형성, 그리고 그 위에서 북한과의 평화 공존을 통한 동북아 안정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이고 책임 있는 경로다.

이찬우 일본경제연구센터 특임연구원 전 테이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