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AI 경쟁력, ‘영재반’ 10만 대군이 키웠다
연 500만 STEM 인재
승자독식 교육의 명암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중국의 AI 경쟁력 배경으로 전국 최상위 고교에서 운영되는 영재반·경시반 체계를 주목했다. 수학·물리·화학·생물·정보 등 국제 올림피아드를 목표로 극소수 학생을 조기 선발해 집중 훈련시킨 뒤, 검증된 인재를 최상위 대학과 기업 연구개발 현장으로 직접 연결하는 구조가 중국 기술력의 핵심이라는 분석이다.
중국에서는 매년 약 10만명의 청소년이 과학 특화 ‘실험반’과 ‘경시반’에 편입돼 16~18세 무렵 고강도 심화 교육을 받는다. 일반 학생이 대학입시(가오카오)를 준비하는 동안, 이들은 특정 과목에서 대학 수준까지 선행 학습하며, 일부는 가오카오 없이도 대학 입학 기회를 얻는다.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연간 약 500만명의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전공자를 배출하는데, 이는 미국(약 50만명)의 10배 수준이다.
이런 ‘인재 파이프라인’은 중국 첨단기업의 창업자·핵심 개발 인력으로 이어졌다. 틱톡의 바이트댄스 창업자, 타오바오·핀둬둬 등 전자상거래 플랫폼 경영진, 배달앱 메이퇀 창업자, 반도체 설계 기업 캠브리콘 창업 형제가 대표적이다. 딥시크, 알리바바의 ‘큐웬’, 텐센트 연구진 등 대형언어모델(LLM) 개발 진영에서도 경시반 출신이 다수다. 엔비디아 젠슨 황 CEO는 오픈AI, 앤스로픽, 구글 딥마인드 등 글로벌 연구조직에서도 중국 출신 연구자가 두드러진다고 언급했다.
FT는 미국의 수출 통제로 칩 수급이 제한된 상황에서도, 고급 인력이 알고리즘과 학습 효율을 끌어올려 격차를 좁히는 데 기여했다고 분석했다. 2024년 딥시크에서 21세에 인턴을 시작한 왕쯔한은 “팀 내에 경시반·올림피아드 경력자가 다수였고, 조직은 핵심성과지표를 앞세우기보다, 새 아이디어를 시험할 수 있도록 연산 자원과 연구 여건을 넉넉히 뒷받침했다“고 전했다. 창업자 량원펑은 중국이 추격자 신세를 벗으려면 자체 최상위 인재를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왕쯔한은 이후 노스웨스턴대 박사과정으로 옮겼지만, 최근 미국 내 비자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많은 중국인 연구자들이 귀국을 고민하는 분위기다.
이 제도는 마오쩌둥 시기 산업·군사 경쟁력 강화 이후 과학 교육을 국가 발전의 핵심으로 강조한 전통에서 비롯됐다. 1980년대 조기 인재 양성 구호가 교육 현장에 확산됐고, 중국은 1980년대부터 국제 과학 올림피아드에 본격 참가해 성과를 쌓았다. 2025년 국제 올림피아드에 나간 중국 대표 23명 가운데 22명이 금메달을 땄다.
다만 FT는 ‘승자만 남는’ 구조의 그늘도 지적했다. 경시반에서 상위권에 들지 못한 학생은 가오카오 과정으로 복귀해야 하는데, 뒤처진 학습을 따라잡기엔 시간이 촉박해 부담이 커진다. AI 열풍 이후 고교·대학에서 AI 특화 과정이 급증한 점은 중국이 기술 수요에 맞춰 교육 체계를 즉각 재편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FT는 중국의 경쟁력이 칩이나 데이터뿐 아니라 대규모 선발·훈련·배치 시스템에서 나오는 인재의 ‘질과 양’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최상위 인재를 선별해 집중 투자하고 성과를 산업 현장으로 빠르게 연결하는 방식이 AI·로봇·첨단 제조 전반에서 중국의 추격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개인의 부담과 교육 다양성 훼손이라는 비용도 커지고 있어, 이 모델의 장기 지속 가능성에 대한 논쟁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