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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라스와 인류의 운명

2026-02-04 13:00:28 게재

지질시대 구분에 따르면 현재는 신생대 4기 홀로세(충적세)에 해당한다. 약 1만1700년 전 마지막 빙기가 끝나며 시작된 간빙기로, 비교적 따뜻하고 안정된 기후 속에서 인류 문명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왔다.

그러나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특히 1950년대 이후 화석연료 사용의 급증, 핵실험, 대규모 환경 파괴로 인해 인류 활동이 지구 시스템 자체를 바꿔놓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새로운 구분이 학계를 중심으로 힘을 얻고 있다.

이와 맞물려 최근 자주 언급되는 개념이 ‘벼랑세(The Precipice)’다. 이는 지질학적 구분이라기보다는, 인류가 스스로를 멸망시킬 수 있는 위험 앞에 서 있는 시대적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핵무기, 기후변화, 통제되지 않은 인공지능 등 자멸적 위험에 노출된 인류가 마치 벼랑 끝을 걷고 있는 것처럼 위태로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의미다. 영국 옥스퍼드대 인류미래연구소의 토비 오드는 저서 '사피엔스의 멸망(원제,The Precipice)'에서 현재를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시대로 규정했다.

‘피지컬 AI’ 시대 도래 실감케 하는 아틀라스

실제로 인류는 쿠바 미사일 위기처럼 멸망의 문턱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돌아온 경험을 여러 차례 갖고 있다. 그러나 그런 행운이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토비 오드는 미래 인류가 직면할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로 통제를 벗어난 초인공지능(ASI)을 지목했다. 효율과 목표 달성에 최적화된 인공지능이 인간 사회의 가치와 어긋날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최근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아틀라스는 현대자동차그룹의 로봇 자회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CES를 전후해 공개된 시연 영상과 기술 발전상이 큰 화제를 모았다.

사람처럼 생긴 로봇이 실제 물리적 환경에서 인간을 대신해 작업하는 모습은 ‘피지컬 AI’ 시대의 도래를 실감케 한다. 인간의 육체노동을 덜고, 인간과 로봇의 협업 가능성을 넓힌다는 기대와 함께, 일자리를 잠식하고 노동의 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도 동시에 제기된다. 현장 도입을 둘러싸고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노동계의 목소리가 높다.

아틀라스는 아직 스스로 판단하고 목표를 설정하는 존재라기보다는, 고도의 자동화에 가까운 단계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피지컬 AI는 인공지능의 지능적 진화와 맞닿아 있다. 지능과 로봇이 결합하는 순간, AI의 영향력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원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핵무기와 기후변화와 함께, 통제되지 않은 인공지능을 인류 존속에 대한 최대 위협으로 지목한다. AI가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시점, 이른바 ‘특이점’이 예상보다 훨씬 앞당겨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잇따른다. 일론 머스크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범용인공지능(AGI)이 빠르면 올해 내 등장할 수 있으며, 2030년 전후에는 AI의 지능이 전 인류의 지적 역량을 넘어설 가능성을 언급했다. 오픈AI의 최고경영자 샘 올트먼 역시 “부드러운 특이점이 이미 시작됐을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문제는 인류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기술이 이처럼 빠르게 발전하는데도, 이를 통제하고 조율할 제도적·정치적 대비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제프리 힌턴 교수 등 일부 AI 석학들이 안전장치 없는 AI 경쟁의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지금은 속도 경쟁이 모든 우려를 압도하는 양상이다. 머스크 역시 과거에는 속도 조절을 주장했으나, 이제는 경쟁에 참여해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인류의 가치와 행복에 기여하는 방향 잡아야

이미 불 붙은 AI 경쟁은 누가 막고 싶다고 막을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선 듯하다. 이는 홀로세 이후 인류가 자연을 지배하고 효율을 극대화해온 문명 경로의 귀결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AI의 발전을 면밀히 감시하고,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지 않게 제도적·윤리적 기준을 세우며, 인류의 가치와 행복에 기여하도록 방향을 잡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 책임의 최전선에 서야 할 정치가 당장의 이해관계에만 매몰돼 있는 현실은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이계성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