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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체계 개편, ‘통합’보다 ‘연합’으로

2026-02-06 13:00:03 게재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행정체계는 동서고금 지속되어 온 문제다. 행정의 틀이 짜였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 인구 이동은 일상화되었고 출퇴근·의료·소비의 생활권은 행정 경계를 훌쩍 넘어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광역–기초’의 2중 구조를 가진 일본은 ‘도도부현–시정촌’ 체계 속에서 시행착오를 겪어 왔고, 프랑스는 ‘레지옹–데파르트망–코뮌’이라는 3중 구조를 유지한 채 조정과 협력의 해법을 발전시켜 왔다. 구조는 다르지만, 세계 각국은 ‘복잡한 행정체계’라는 공통의 문제를 풀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치며 더 현실적인 해법을 찾아왔다.

그런데 우리는 이 문제를 늘 ‘통합’으로만 풀어왔다. 과거에는 ‘기초 통합’, 최근에는 대전·충청, 광주·전남 같은 ‘광역 통합’이다. 수도권 대응과 협상력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되돌릴 수 없는 위험 또한 크다. 복잡한 행정체계를 푸는 해법으로 여러 나라가 오래전부터 실험해 온 대안이 있는데, 바로 ‘연합’이다. 행정구역을 합치지 않고 기능·정책·재정·권한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비유하자면 통합은 ‘수술’이고, 연합은 ‘침술’이다.

수술은 환부를 도려내고 구조를 바꾸지만, 회복이 더디고 부작용이 크다. 반면 침술은 몸 전체를 건드리지 않고 막힌 곳에 자극을 주어 흐름을 바꾼다. 브라질 쿠리치바를 살린 자이메 레르네르의 ‘도시침술’처럼, 지금 우리에겐 행정의 혈맥을 뚫는 연합의 지혜가 절실하다.

행정의 혈맥을 뚫는 연합의 지혜 절실

통합의 효과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행정 구조를 단순화하고 의사결정을 빠르게 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덩치가 커질수록 행정서비스는 멀어지고 중심은 강해지며 주변은 더 소외되기 쉽다. 무엇보다 통합은 한 번 결정되면 되돌리기 어렵다. 반면 연합은 단계적으로 시작할 수 있고 실패해도 조정이 가능하며 갈등 비용도 적다. 다만 연합이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권한과 재정 지원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프랑스의 시행착오와 정책 전환이 이를 잘 보여준다. 2010년대 22개 레지옹을 13개로 통폐합했으나 주민과의 거리감과 지역 격차라는 부작용만 확인했다. 결국 프랑스는 ‘거대 통합’의 미련을 버리고 협력과 연합을 통한 ‘결속(cohésion)’으로 정책 방향을 틀었다. 덩케르크와 주변 지역의 대중교통 무료화는 그 대표적 사례다. 여러 지방정부가 연합해 교통을 함께 책임지자 이동권은 물론 지역경제와 환경까지 긍정적 변화가 나타났다. 통합 없이도 연합으로 광역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 역시 통합의 한계를 경험한 뒤 정책의 방향을 연합으로 전환했다. 1990년대 말 시작된 ‘헤이세이 대합병’으로 시정촌 수를 대폭 줄였지만, 지역소멸이라는 구조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후 일본이 선택한 해법이 ‘정주자립권’과 ‘광역연합’이다. 중심 도시와 주변 소도시가 협약을 맺고 의료·교통·교육·돌봄을 함께 설계한다. 흡수 통합이 아니라, 공존과 상생을 전제로 한 연합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연합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있다. 충청북도 증평·진천·괴산·음성으로 구성된 ‘중부4군’은 조례로 협력을 제도화했고, 국립소방병원 유치 과정에서 경쟁 대신 후보지 단일화와 상호 양보를 선택했다. 강진·해남·영암의 ‘강해영’과 속초·고성·양양의 ‘속고양’, 그리고 ‘내포문화숲길(당진·서산·홍성·예산)’ 역시 통합없이 연합으로 관광과 생활권을 묶는 상생의 실험을 이어간다.

연합의 첫 단추는 ‘경계를 지우는 대중교통’이다. 광역 이동권이 좋아지면 대도시로 흡수되는 ‘빨대 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동이 쉬워지면 오가며 머무는 ‘관계인구’와 ‘생활인구’가 늘어난다는 것이 국내외의 공통된 경험이다. 이미 하나의 생활권인 목포·무안·신안도 통합이라는 대수술 대신 각 지역의 혜택을 공유하며 편하게 오갈 수 있는 ‘대중교통 연합’부터 시작해 보면 좋겠다.

지리산을 둘러싼 남원·구례·하동·산청·함양을 연결하는 200킬로미터 도로 위에 자가용보다 더 빠르게 달리는 ‘지리산 BRT(간선급행버스체계)’가 운행된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전북특별자치도의 14개 시·군을 동서남북 최단거리로 연결하는 ‘전북 BRT’가 운행된다면, 굳이 통합하지 않고도 광역 이동성은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확장된 생활권과 경제권 속에서 지역 상생의 토대가 마련될 것이다.

통합보다 연합에 먼저 투자해야

정부는 광역통합에 재정지원과 권한 강화를 약속하고 있다. 통합보다 기능과 정책을 연결하는 연합에 먼저 투자해야 한다. 지방을 살리는 길은 행정구역을 지우는 데 있지 않다. 행정구역을 넘어 이동하고 연결되게 만드는 것, 연결에서부터 연합은 시작된다. 수술만이 유일한 해법이 아니라면, 더 안전하고 좋은 대안이 있다면, 굳이 수술만 고집할 이유는 없다. ‘통합’보다 ‘연합’으로. ‘통합’에 앞서 ‘연합’부터.

정 석 서울시립대 교수 도시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