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윤희성 한국해양대 해양금융대학원장

“선사가 해양산업 중심역할하는 ‘해양수도’ 그릴 수 있어야”

2026-02-06 13:00:04 게재

HMM 등 국내 선사들 클러스터 형성해야 … 부산에서 선주업 발전할 제도적 환경도

해운 있어야 조선산업·선박금융·법률서비스 등 가능 … 글로벌 선사 활동기반 제공

정부는 북극항로 시대를 준비하면서 부산을 해양수도로, 부산·울산·경남(부울경)을 해양수도권으로, 여수에서 포항·동해안까지를 북극항로경제권으로 건설하는 거대한 도전에 나섰다. 해양수산부도 비효율을 감수하고 북극항로 개척과 해양수도권 건설을 위해 지난해 말 부산으로 이전했다.

하지만 정부가 공약했던 HMM 포함 해운기업의 부산이전은 더디다. 대주주가 같은 에이치라인과 SK해운이 부산으로 등기를 옮겼지만 HMM은 노동조합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상황이고, 다른 해운기업들의 움직임도 드러나지 않고 있다.

국회와 정부는 지난해 12월 해운·항만 관련 기업 중 해양수도를 만들기 위해 부산으로 이전하는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부산해양수도 이전기관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지만 아직 반응은 미약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내일신문은 해양수도 부산을 위한 첫 단추는 해운기업 집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윤희성 한국해양대 해양금융대학원장을 4일 부산에서 만났다.

●해양수도 부산을 위한 첫 단추가 해운기업 집적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부산이 세계 해양비즈니스의 중심축 즉, ‘허브’로서 발전하는 모습을 그려보자. 많은 글로벌 해운기업들이 부산에서 선박에 투자해 선박을 건조하고, 선박에 선원을 태우고, 선박을 유지관리하고, 선박의 운송능력을 다양한 계약의 형태로 사고 판다. 그 과정에서 부산항을 비롯한 동남권 항만이 발전하고 해운업 투자와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세계유수의 선박금융기관이 부산에 모여든다. 해양산업의 전문교육을 받은 많은 젊은 청년들이 글로벌 해양기업과 금융기관에 취업하고 많은 부산시민이 다양한 해양비즈니스에 종사하며 지역사회가 경제적으로 발전한다.

이런 희망찬 모습의 첫 단추는 해운업 활성화다. 선사는 선박투자의 주체니까 해운업은 조선업의 수요산업이다. 해운이 없으면 조선도 없고 조선이 없으면 기자재산업도 없다.

해운은 또 선박투자자금을 확보하는 주체다. 선사가 투자하지 않으면 선박금융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뿐만 아니다. 해운은 선박관리의 주체이고, 해운서비스를 거래하는 주체이며, 항만서비스 수요자로서 해양산업생태계의 중심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윤희성 한국해양대 교수는 SK해운·현대상선(현 HMM)에서 각각 사업본부장과 영업전략본부장을 역임하고 정부출연연구기관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서 해운물류연구본부장으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2020년 한국해양대 해양금융대학원에 전임교수로 합류했다, 현재 해양금융대학원을 이끌고 있다. 현대상선 재직 때 정부 북극항로 운항을 자문한 경험도 있다. 런던대학(해양금융 석사)과 한국해양대(경영학 박사)에서 수학했다. 사진 한국해양대 제공

●정부는 국정과제로 HMM 부산유치를 지원하겠다 했고, 현재 노사 협의가 진행 중이다. 해양수도를 위해 HMM 부산이전이 핵심인가.

HMM 부산이전은 중요하고, 현재 이전 논의의 중심에 올라 있지만 해양수도 완성에 필요한 해운기업은 HMM 만이 아니다. 벌크선사와 전용선사를 포함한 우리나라 선사의 대다수가 모여서 클러스터를 형성해야 하고,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잘 발달하지 못한 선주업이 부산에서 발전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제도적 환경도 마련해야 한다.

현재 부산에는 해운기업의 존재가 미미하다. 일부 중소선사가 활동하고 있어 수도권 다음으로 해운기업의 수가 많은 것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인 규모로 보면 수도권과 비교하는 게 무의미한 수준이다.

부산이 해양수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해운기업의 집적이 선행돼야 한다. 사실 컨테이너선사든 벌크선사이든 대면거래 비중이 높지 않기 때문에 해운회사 본사는 어디에 있어도 상관 없다. 하지만 부산을 해양수도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정부와 부산시 입장에서 보면 해운기업이 부산에 모이는 것이 중요하다.

●해운기업이 선박을 발주하지만 한국 조선산업은 해외 선주들의 주문을 받아 건조하는 비중이 더 크다. 글로벌 선사 없이 경쟁력 있는 해양산업 생태계가 가능한가.

해양수도 부산, 해양수도권으로서 부울경은 세계 속에서 한국 해양산업의 위상이 뒷받침돼야 가능하고, 북극항로 거점항구는 글로벌 공급망 속에서 가능하다. 해양수도 부산을 위해 유수의 글로벌 해운기업들이 부산에 터를 잡고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져야 한다. 기존 남방항로의 허브항만인 싱가포르는 세계 1위 환적항이자 200개 이상의 글로벌 해운사가 밀집한 세계 최대 해양클러스터로, 운임거래·선박매매·금융계약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핵심 지역이다. 만일 북극항로의 상업적 운항이 활성화된다면 부산항은 관문항으로서 그 역할이 확대될 것이다. 싱가포르가 단순한 항만도시가 아니고 해양산업이 밀집된 해양중심지라는 점을 눈여겨 봐야 북극항로시대 부산항의 미래 모습을 제대로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해운기업 부산유치 활동이 있었지만 성과가 미미했다. 왜 그런가.

해운기업을 부산에 유치하는 첫 단계는 해양수도로서 부산이 꿈꾸는 미래상이 눈에 보이게 가시화하고 이를 널리 공유하는 것이다. ‘비전’은 목표로 하는 것을 눈에 보이듯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해양수도 부산이 어떤 모습을 가지는지 그려보는 것은 범국가적인 노력을 결집하거나 다양하게 펼치는 정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피해갈 수 없는 과정이지만 부산에서 해양수도를 주장한지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부족한 게 현실이다.

정부나 부산시가 초기의 경제적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도 강조돼야 한다. 사업의 초기에는 손실을 보면서 규모를 늘리고 그 규모를 바탕으로 천천히 수확하는 방식은 이미 아마존 쿠팡 카카오 같은 빅테크들이 채택해 성공한 전략이고 싱가포르 등의 경쟁도시들도 파격적인 인센티브로 초기의 투자를 기꺼이 감수하고 있지 않은가.

●규제를 없앤다는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데 왜 안될까.

절박함의 문제다. 과감한 규제철폐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해외 경쟁도시들은 파격적인 탈규제를 진행하고 있다. 불모의 사막에서 각광받는 도시로 성장한 두바이는 물론이고 신흥 금융중심지로 출사표를 던진 카자흐스탄의 아스타나의 경우 아예 자국의 법체계와 분리된 영미법 도입을 실현했다. 베트남의 호치민도 혁신산업분야에 대해 글로벌 기준에 법체계를 맞추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남들은 자국의 영토 범위 안에 다른 나라 법체계를 적용하기 위해 별도 법원의 설립과 판사 수입까지 진행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얼마나 발상을 전환하고 있을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또 하나는 글로벌 역량이다. 글로벌 역량이 낮은 도시가 세계 산업의 중심지가 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 사회의 글로벌 역량이 지난 수십년간 꾸준히 향상되기는 했지만 영어를 제2국어화 할 정도의 과감한 정책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부산의 글로벌 수준을 평가하면 어느 정도일까.

글로벌화를 평가하는 요소 중 인재의 글로벌화도 중요한데 이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글로벌 수준이 높아지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글로벌 인재들이 우리나라로 모여드는 양방향 글로벌화가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부산에서 내국인이든 유학생이든 글로벌 인재가 많이 양성되는 체계가 빨리 구축돼야 한다. 하지만 부산지역에 영어로 강의하는 대학과 강좌는 많지 않다.

해양수도 부산의 구체적인 모습 중 하나로 해사전문법원과 이를 중심으로 한 법률서비스 생태계를 강조하지만 영어로 된 한국의 해사법이 없고, 영어로 재판할 수 있는 체계도 아직 갖춰져 있지 않다.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는 한국의 선사들이 부산에서 법률서비스를 받고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한국 법률을 영어로 번역하는 수준을 넘어 세계 해운계가 인정하는 그리고 법률적인 효력을 갖춘 영어법전을 갖춰야 한다.

부산은 이미 조선 항만 해사기술 해양연구기관 해양교육기관 등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이런 기반도 없는 도시들이 글로벌 중심이 되겠다고 갖은 정책들을 다 펴고 있는데 우리가 뒤처질 이유가 없다. 해양수도를 위한 범 국가 차원의 컨트롤타워가 만들어져서 부처 간, 지역 간 입장이 원활하게 조율되면서 부산이 해양비즈니스의 세계적인 허브도시, 우리나라의 해양수도로 발전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세계적인 선주 국가 그리스와 해양금융대학원이 교류하는 강좌를 운영하고 있는데, 어떤 것인가.

해양금융 특화 대학원과정을 운영하는 곳은 전세계적으로 3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런던대학의 베이즈비즈니스스쿨, 그리스의 아테네경제경영대학(AUEB), 그리고 한국해양대학의 해양금융대학원이다.

해양금융대학원은 15년의 역사를 가진 해양금융특화 대학원으로서 이미 약 230명의 해양금융 석사를 배출했다. 학생들의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겨울 계절학기에 그리스 AUEB에서 6학점을 취득하고, 여름 계절학기에는 영국의 교수를 초빙해 해운파생상품에 대한 협동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 100% 영어로 수학하는 해양금융 글로벌과정을 설치하는 것도 추진 중이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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