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 2026년 신년 기자간담회
정은보 이사장 “부실기업 조기 퇴출…중복상장 제한”
자본시장 신뢰도 높이고 생산적 금융으로 전환
글로벌 경쟁 치열 … 거래시간 연장 강행 의지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올해는 한국 자본시장 대도약의 전환점이라며 자본시장 신뢰도를 높이고 생산적 금융으로 전환하기 위해 부실기업 조기 퇴출과 중복상장 제한을 강조했다. 최근 논란이 큰 주식 거래시간 연장 관련해서는 강행 의지를 분명히 했다. 글로벌 거래소 간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시장 효율성 제고를 위해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상장폐지 기준 강화 … 심사조직·인력 보강 = 정 이사장은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신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자본시장 대도약을 위한 거래소 핵심 전략’을 발표하며 △자본시장 신뢰도 제고 △생산적 금융 전환 △자본시장 글로벌 경쟁력 강화 △미래 성장동력 확보의 4대 핵심 전략과 이에 따른 12개 추진 과제를 제시했다.
먼저 거래소는 정부의 ‘좀비기업’ 퇴출 기조에 적극 부응해 부실기업의 조기 퇴출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할 계획이다.
시가총액과 매출액 등 상장폐지 기준을 강화하고, 상장폐지 심사조직 및 인력을 보강해 한계기업을 신속 퇴출할 방침이다. 코스닥시장에 대해선 본부조직·인력개선을 검토하고 별도 경영평가를 도입하기로 했다.
특히 기술특례상장기업은 상장 후 사업목적 변경과 부실 개선계획의 타당성·이행가능성 등을 면밀히 검토할 계획이다. 투자자의 이해를 돕는 AI(인공지능) 활용 기업분석 보고서 발간도 확대하고 중소 상장사가 기업가치 제고사업에 참여하도록 교육·컨설팅을 확대하는 한편 특례상장 기업의 가치제고 계획공시를 유도한다.
불공정거래 대응책으로는 정부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과 공조를 강화하고 AI기술을 도입해 불공정거래 혐의 종목을 조기에 선정, 감시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등 시장감시 시스템 고도화를 추진한다.
아울러 생산적 금융을 위한 모험자본 활성화에도 나선다. 이를 위해 AI 등 첨단기술 맞춤형 상장을 촉진한다. 기술특례기업 심사 전문성·신속성을 높이기 위해 전문가집단을 확보한다. 혁신기업이 성장단계에서 필요한 자금을 적시에 조달할 수 있도록 BDC(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 도입과 관련, 법 규정을 마련해 오는 3월에 시행할 예정이다. 상장 준비 단계 기업 대상으로는 컨설팅 지원을 확대하고 성장단계별 IR(기업소개) 지원과 혁신기업 인큐베이팅도 고도화한다.
◆한국 중복상장 20% … 미국 1%보다 많아= 정 이사장은 국내 자본시장의 중복상장 관행에 대해 원칙적 금지론을 분명히 했다. 투자자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중복상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정비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정 이사장은 “통계적으로 국내 시장의 중복상장 비율은 약 20%로, 일본, 미국에 비해 높다”며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제한하면서 중복상장에 따른 소액투자자 보호가 충분히 이뤄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업계에 따르면 국가별 시가총액 대비 중복상장 비중은 지난해 말 한국 18%, 일본 4%, 미국 0.1% 미만으로 집계됐다.
◆6월 프리·애프터 마켓 개설…24시간 거래 체계 도입 = 거래소는 자본시장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6월 29일 주식시장에 프리·애프터 마켓을 개설한다. 오전 7~8시 프리마켓, 오후 4시~8시 애프터마켓을 운영할 계획이다. 2027년 말까지 24시간 거래 체계 도입도 단계적으로 추진한다. 대체거래소인 넥스트레이드(NXT)의 프리마켓 개장 시각(오전 8시)보다 1시간 앞서 장을 열게 된다.
정 이사장은 “글로벌 거래소 간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거래시간 연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뉴욕증권거래소에 이어 나스닥도 올해 10월부터 24시간 거래 도입을 예고한 만큼, 국내 시장도 글로벌 흐름에 맞춰 거래시간 확대는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국내 거래소 간 동등한 경쟁도 강조했다. 정 이사장은 “넥스트레이드는 12시간 거래를 하는데 왜 우리는 6시간 반밖에 거래를 못 하느냐”며 “동등한 경쟁이 돼야 투자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과거 주식 거래시간 연장시 유동성 증가 효과가 미미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단계적 거래시간 연장은 해외 유동성을 국내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도 굉장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거래 시간 연장에 따른 중소형 증권사들의 비용 부담에 대해서는 유화책을 내놨다.
정 이사장은 “거래시간 연장 전까지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한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전산”이라며 “일부 중소형사들은 전산 개발 부담이 있는 것은 사실로, 필요한 지원을 적극적으로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간담회가 열리는 와중에, 거래소 서울사옥 정문 앞에서는 거래시간 연장에 반대하는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증권업종본부의 긴급 결의대회가 진행됐다. 한국거래소의 거래시간 연장은 노동자의 건강권을 담보로 한 노동시간을 늘리는 결정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노조 측은 “한국거래소가 거래시간을 연장해야 코스피가 6000, 7000까지 갈 수 있는 것처럼 설명하고 있지만 이는 과장된 주장”이라며 “과거 거래 시간을 연장했을 당시에도 일시적인 거래 증가에 그쳤을 뿐 시장의 질적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노조 측은 “이번 조치는 한국거래소가 시장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무리하게 꺼내든 카드”라며 “거래시간 연장이 투자자 보호나 시장 효율성보다는 기존 거래소의 경쟁력 방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주장했다.
현장 노동자들의 근무 여건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창욱 증권업종본부장은 “장 시작 전 준비 업무와 장 마감 후 정산 업무로 이미 저녁 8~9시 퇴근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7시 개장은 사실상 노동시간의 구조적 확대를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