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그룹 위장계열사 들통 난 결정적 계기는 ‘내부고발’

2026-02-09 13:00:00 게재

공정위, 15개사 재단으로 위장해 지배력 강화한 김준기회장 검찰 고발

지난해 내부제보 접수 … 1년 가까이 확인·추적 끝에 위장계열사 적발

공정거래위원회가 20여년 가까이 계열사를 숨기고 그룹 내 자신의 지배력 강화에 이용한 김준기 DB그룹 창업회장(사진)을 검찰에 고발했다. DB 측은 총수일가 사익추구를 위해 의도적으로 재단 회사를 이용했다는 혐의도 받는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 취임 후 첫 번째 기업 총수 고발 사건이다.

위장 계열사를 공정위가 뒤늦게 찾아낼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내부 제보’였다. 9일 공정위 관계자는 “DB가 계열사를 재단형태로 숨기고 운영해와 공식문서나 회계자료로는 발견하기 어려웠다”면서 “지난해 제보를 통해 조사 단초를 마련하고 긴 작업 끝에 법 위반 행위를 입증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재단관리자까지 두고 지배력 행사 = 9일 공정위에 따르면 공시대상기업집단 등 지정을 위한 자료를 허위로 제출한 혐의로 김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김 회장은 1999년 11월부터 동곡사회복지재단과 그 산하 회사 15개사(빌텍, 삼동흥산 등)를 소속 현황에서 누락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회사들은 1999년 계열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실제로는 김 회장의 철저한 통제 아래 DB그룹 계열사처럼 운영됐다고 공정위는 판단했다. 늦어도 2010년부터는 김 회장 등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유지하고 사익을 위해 재단 회사들을 활용했다. 2016년에는 이들 회사를 관리하는 직위까지 설치해 본격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했다.

실제 재단 소속 회사들은 DB그룹 핵심 계열사인 DB하이텍의 경영권이 흔들리거나 자금이 필요할 때마다 ‘해결사’로 등장했다. 재단 회사들은 DB하이텍의 재무 개선을 위해 필요하지도 않은 부동산을 매입하거나,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와 디비월드 기업회생 절차 과정에서 자금 조달·유상증자에 동원됐다.

◆김 회장과 돈 거래까지 = 김 회장은 2021년 위장 계열사로부터 220억원을 빌려 1년 뒤 상환하는 등 직접 거래 관계를 맺기도 했다.

재단 회사들은 DB 소속 회사에 매출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었다. DB 측은 해당 계열사를 내부 관리하면서 철저히 은폐했다.그룹 조직도에 동곡재단 쪽 계열사만 점선으로 연결했다. 재단 회사들을 동원하는 거래를 기획할 때마다 공정위가 주목할 것을 우려하면서 위장 계열사 리스크를 스스로 수차례 분석하기도 했다.

DB그룹의 재단회사 인사에 관여한 정황도 포착됐다. 실제 확인해보니 주요 재단 회사인 삼동흥산·빌텍·삼동랜드의 임원 과반수와 역대 대표이사는 DB 출신이었다.

◆실질적 지배력 근거로 위장계열사 인정 = 공정위는 DB그룹이 ‘위장 계열사’를 숨기기 위해 공시집단 등 지정을 위한 자료를 공정위에 허위로 제출했다고 판단했다. 또 총수 일가의 이익을 위해 계열사를 부당하게 이용했다는 점에서 법 위반 정도가 중대하다고 보고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최근 5년간 지정자료 허위 제출 행위를 중심으로 김 회장을 고발했다.

지정자료는 대기업집단 규제 적용의 출발점이 되는 핵심 자료다. 허위 제출 시 부당지원, 내부거래 규제 등 각종 공정거래법상 감시를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이번 조치가 지분율이 아닌 실질적 지배력 행사를 근거로 위장계열사를 인정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음잔디 공정위 기업집단관리과장은 “동일인 측의 지배적인 영향력 행사를 다수의 객관적 증거와 거래 관계, 구체적인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충분히 입증한 최초의 사례”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이번 제재와 별개로 김 회장에게 부당지원 및 사익편취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 검토하고 있다.

한편 재계 40위 DB그룹은 최근 부자 갈등으로 경영권 내홍을 겪고 있다. 지난해 6월말 기준 DB 최대주주는 16.83%를 보유한 아들인 김남호 명예회장이다. 김준기 창업회장은 15.9%를, 딸인 김주원 부회장은 9.87%를 갖고 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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