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100년물 채권까지 꺼냈다
AI 투자 자금 마련용···달러·파운드·스위스프랑 대규모 채권 발행
파이낸셜타임스(FT) 9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알파벳은 영국 파운드화 표시 채권으로 이른바 ‘100년물 채권(century bond)’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발행은 알파벳의 첫 파운드화 채권이며, 초장기 채권이 포함되는 것도 처음이다. 동시에 달러화 채권 200억달러 규모 발행을 진행했고, 스위스프랑 채권 발행도 준비 중이다.
달러 채권 발행 규모는 당초 150억달러에서 투자 수요가 몰리며 200억달러로 증액됐다. 시장에서는 알파벳의 신용도와 현금 창출력을 감안할 때 투자자들의 선호가 단기물에 집중됐다는 점에 주목한다.
FT에 따르면 3년물 달러 채권은 미 국채 대비 가산금리가 0.27%p까지 낮아졌고, 40년물 장기채 역시 초기 논의보다 조건이 크게 개선됐다.
100년물 채권은 장기 차입의 극단적인 형태로 꼽힌다. 금융위기 이후 초저금리 국면에서 일부 정부와 기관이 발행한 사례는 있었지만, 기업의 발행은 극히 이례적이다. 파운드화 100년물 채권을 발행한 사례로는 옥스퍼드대, 프랑스 전력기업 EDF, 웰컴트러스트 등이 거론된다. 빅테크 가운데서는 IBM이 1996년 달러화 100년물 채권을 발행한 것이 사실상 유일한 전례다.
알파벳의 이번 조달은 AI 인프라 투자 경쟁이 배경이다. FT에 따르면 빅테크와 관련 기업들은 올해 AI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인프라에 약 7000억달러를 투자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현금 흐름만으로는 투자 자금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채권 시장 의존도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알파벳이 올해 설비투자(CAPEX)로 최대 1850억달러를 집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는 지난 3년간 투자액을 합친 것보다 많은 규모다.
알파벳은 AI 비서 ‘제미니(Gemini)’를 중심으로 검색과 클라우드 수요가 늘고 있다며 대규모 데이터센터 투자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투자 확대는 재무 구조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FT에 따르면 알파벳의 장기 부채는 2025년 465억달러로 전년 대비 4배 이상 늘었다. 다만 연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268억달러에 달해, 여전히 재무 여력은 충분하다는 평가다. 지난해 연간 매출도 처음으로 4000억달러를 넘기며 시장 예상치를 웃돌았다.
알파벳뿐 아니라 빅테크 전반에서 채권 발행이 잇따르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오라클은 최근 250억달러 규모 채권을 발행하며 1290억달러에 달하는 주문을 끌어모았다. 알파벳,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기술기업들의 올해 설비투자 계획을 합치면 약 6500억달러에 이른다.
시장에서는 초장기 채권 발행이 알파벳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동시에, AI 경쟁이 얼마나 자본 집약적인 국면으로 접어들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금이 넘쳐난다고 여겨졌던 빅테크마저 100년물 채권을 검토할 만큼, AI 투자 전쟁이 본격적인 ‘차입 경쟁’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