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식 낮에는 외면, 밤에는 매수

2026-02-10 13:00:02 게재

정규장선 신중·장외선 적극적 움직임

해외자본이 미 경상수지 적자 메운다

미국 주식시장에서 정규 거래 시간과 장외거래의 온도 차가 뚜렷해지고 있다. 정규장에서는 조정과 관망이 이어지지만, 장이 끝난 뒤에는 해외 투자자들의 매수 주문이 몰리는 흐름이 반복되고 있다. 정치·외교적 불확실성으로 미국에 대한 인식은 흔들리고 있지만, 자금은 여전히 미국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이중적 모습이 두드러진다.

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실린 록펠러 인터네셔널 회장 루치르 샤르마의 기고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투자자들은 미국 금융자산에 약 1조6000억달러를 투자했다. 이 가운데 주식 투자만 약 7000억달러로 모두 사상 최대 규모다.

미국 회사채 역시 해외 매입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 4월 일시적으로 ‘셀 아메리카’ 흐름이 나타났지만, 2025년 대부분의 기간 동안 해외 자금은 조정 국면마다 미국 자산을 사들였다.

이 같은 매수는 정규 거래 시간보다 장외거래에서 더 활발하다. 아시아와 유럽 투자자들이 시차를 극복하고 밤새 미국 주식을 거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에 대한 정치적 평가와는 달리, 규모와 유동성 면에서 대안을 찾기 어렵다는 판단이 매수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한국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주식시장으로 유입된 해외 자금 가운데 단일 국가 기준 최대 투자국은 한국이었다. 미국 기업, 특히 인공지능(AI)과 연관된 자산에 대한 선호가 한국 투자자들 사이에서 강하게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해외 자본 유입은 미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보완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미국은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 국가지만, 지난해 해외 포트폴리오 자금 유입 규모는 연간 경상수지 적자를 전액 충당하고도 남았다. 미국이 벌어들이는 것보다 더 많이 쓰는 구조를 유지하는 배경에 해외 자본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샤르마 회장은 이런 흐름의 배경으로 관성과 성과 추종을 지목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시장이 장기간 다른 지역을 압도해 왔고, 투자자들 사이에 ‘미국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인식이 굳어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미국의 기술 우위, 특히 AI 분야에 대한 기대가 자금 유입을 부추기고 있다.

다만 그는 위험 요인도 경고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보유한 미국 주식 비중은 약 15%로 10년 전보다 크게 늘었고, 외국인이 보유한 미국 자산 규모는 약 70조달러로 10년 전의 두 배에 달한다. 문제는 이 자금의 상당 부분이 주식과 채권 같은 단기 회수 가능한 포트폴리오 자금이라는 점이다.

샤르마 회장은 “미국의 성장과 소비는 그 어느 때보다 해외 투자자들의 심리에 의존하고 있다”며 “장외거래에서 이어지는 매수 흐름이 약해질 경우, 그 충격은 미국 시장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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