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재판소원 위헌, 도입 반대”

2026-02-11 13:00:34 게재

행정처, 국회에 재판소원법안 의견 제출

“개헌 없이 불가 … 4심제 희망고문 유발”

더불어민주당이 이달 도입을 추진하는 ‘재판소원’ 제도에 대해 대법원이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혀 관심을 끈다. 헌법 개정 없이 입법만으로 도입할 수 없고, 자칫 국가 경쟁력 약화와 국민에 대한 ‘희망고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11일 국회와 대법원에 따르면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는 전날 김기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헌법재판소법 일부 개정안에 대해 “헌법 개정 없이 입법으로 도입할 수 없고, 결국 국가 경쟁력 약화와 ‘희망고문’을 유발할 것”이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민주당이 재판소원을 포함한 이른바 ‘사법개혁’ 법안을 이달 중 처리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사법부가 반대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의견서의 출발점은 헌법이다. 대법원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101조 1항), ‘법원은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각급법원으로 구성한다’(101조 2항)고 정한 헌법 조항을 들어 “헌법은 재판에 대한 불복을 대법원에서 끝내도록 한계를 설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이는 ‘재판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서 하되,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재판을 최종심으로 해야 함’을 명시한 것”이라며 “법원이 아닌 곳에서 재판한다든지, 불복이 있다 해서 대법원을 넘어서까지 재판을 거듭한다면 헌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제도 도입의 긍정적·부정적 측면을 떠나 현행 헌법 하에서 입법만으로 재판소원을 도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책적 문제도 만만치 않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은 재판소원 도입 시 결국 ‘4심제’가 돼 “재판의 지속과 반복으로 국가경쟁력 약화를 초래한다”는 의견을 냈다. 대법원의 재판은 단순한 ‘법률심’이 아닌 ‘법률심 겸 헌법심’이라고도 강조했다. 민·형사소송에서 판결에 영향을 미친 헌법과 법률, 명령 규칙 위반이 가장 중요한 상고이유라는 점에서다.

대법원은 재판소원에 찬성 입장을 밝혀온 헌법재판소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비판을 내놓았다.

그간 양측은 법률 해석, 판결에 대한 위헌 소지 판단 등의 사안에서 신경전을 벌이는 등 갈등을 빚는 모습을 종종 보여왔는데, 이번 재판소원 문제를 놓고선 대법원은 분명한 목소리를 내면서 헌재 입장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헌재는 재판소원이 ‘헌법심’으로서 “확정 재판에 대한 헌법상 기본권 구제 절차”라고 주장하며 도입에 찬성해왔는데, 대법원은 이를 두고 “본질과 실체를 호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소원 역시 법원의 법률 해석과 적용을 다시 판단하는 절차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대법원은 “대법원의 결론이 헌재에서 뒤바뀔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매우 희박하리라 예상 가능해 거의 모든 사건에서 재판의 실질적 종결만 늦어지고 소용은 없는 고비용·결국 전체적인 사법 체계에 혼란이 이는 등 문제가 발생하고,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가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재판소원은 결국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나 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 등을 중심으로 극히 일부 사건만 선별적으로 이뤄질 것이어서 소송비용만 과다하게 지출하게 하는 희망고문”이라며 우려를 드러냈다.

재판소원의 혜택은 권력자 또는 높은 소송비용을 지출할 경제적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고, 대부분의 사건은 사전심사 단계에서 무의미하고 허탈하게 종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구체적인 법안 내용에 대해서도 “‘법원의 재판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 명백한 경우’라는 제3호 (재판소원 허용) 요건을 통해 재판소원 사유가 사실상 무제한으로 확장된다”고 지적했다.

또 확정재판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을 허용하는 조항에 대해선 “확정판결에 대해 가처분을 통해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라며 “가처분 제도가 가지는 법치주의 원리상의 내재적 한계를 초월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재판소원과 가처분 신청 자체가 ‘사실상태의 고착’으로 이익을 얻을 패소 당사자의 소송 지연 전략으로 악용될 우려가 높다고 부연했다.

선거범죄로 인한 형의 선고로 당선이 무효가 된 피고인이 재판소원을 제기하면서 가처분을 신청하는 경우 당선무효 등의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는지, 형사 확정판결에 의해 구금시설에 수형 중이던 피고인이 가처분 결정에 의해 석방돼야 하는지 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독일 사례 역시 재판소원 도입의 근거가 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독일은 헌법재판소가 최고사법기관인 구조로 우리와 사법체계가 다르고, 실제 인용률도 1% 초반에 그치며 남소 문제가 심각하다는 설명이다.

한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11일 해당 법안을 상정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그 결과가 주목된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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