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고통 외면한 ‘설탕 담합’…제당 3사에 4천억대 과징금
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 4년간 가격인상 폭·시기 짬짜미
코로나·경기침체기에도 부당이득 … 개별과징금 ‘역대 최대’
전 국민이 코로나19 팬데믹과 유례없는 경기 침체로 고통받던 시기, 서민 경제의 기초가 되는 설탕 가격을 조직적으로 담합해온 제당 업계의 민낯이 드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내 설탕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3개 제당사의 담합 행위를 적발하고, 역대급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CJ제일제당과 삼양사, 대한제당 등 3개 사업자가 2021년 2월부터 2025년 4월까지 4년여에 걸쳐 설탕 판매가격을 담합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4083억원(잠정)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과징금 규모는 △CJ제일제당 1506억8900만원 △삼양사 1302억5100만원 △대한제당 1273억7300만원이다.
공정위 조사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총 8차례(인상 6회·인하 2회)에 걸쳐 가격 변경 폭과 시기를 사전에 모의했다. 설탕의 주원료인 원당 가격이 오를 때는 원가 상승분을 신속하게 반영하기 위해 공급가 인상 시기를 맞췄다. 가격 인상을 거부하는 수요처가 있으면 3사가 공동으로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반면 원당 가격이 하락할 때는 자세를 바꿨다. 인하 폭은 실제 하락분보다 훨씬 적게 잡았고, 인하 시기를 최대한 늦추기로 합의해 부당한 마진을 챙겼다. 제당업계의 이런 행태는 식료품 물가 상승의 기폭제가 됐고 피해는 최종 소비자인 국민에게 전가됐다.
◆직급별 ‘카르텔 모임’ 가동도 = 제당3사의 담합은 단순한 정보공유 수준을 넘어섰다. 대표급부터 본부장, 영업임원, 영업팀장에 이르기까지 직급별로 촘촘한 연락망과 모임을 운영했다. 특히 영업실무자들은 많게는 한 달에 9번 머리를 맞대고 가격 변경의 세부 실행 방안을 논의했다.
거래처 관리에서도 이들은 ‘나눠먹기’식 전략을 취했다. 대형 음료사나 제과사 등 주요 수요처별로 주도적인 협상업체를 정해두고, 결과를 공유하며 시장을 장악했다. 공정위가 확보한 내부 자료에는 각 수요처와 누가 협상을 주도할지 명시된 이메일과 메신저 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주목할 점은 이들이 과거 2007년에도 동일한 혐의로 제재를 받은 전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담합으로 한차례 처벌을 받고도 다시 담합의 길을 택한 것은, 설탕 시장이 가진 폐쇄적인 구조와 과점 체제의 폐해를 입증한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설탕3사는 2024년 공정위 조사가 시작된 이후에도 1년 넘게 담합 관계를 유지하며 조사 정보까지 공유하는 등 대담함을 보였다.
◆3년간 가격변경보고명령도 부과 = 이번에 부과된 4083억 원의 과징금은 담합사건 사상 총액 기준 두 번째로 큰 규모다. 특히 사업자당 평균 부과액은 약 1361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공정위는 이번 조치가 단순한 금전적 제재를 넘어, 독과점 사업자의 횡포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정위는 금전적 제재 외에도 강력한 시정명령을 내렸다. 향후 3년간 설탕 가격 변경 현황을 연 2회 보고하도록 하는 ‘가격 변경 내역 보고명령’이 대표적이다. 장기간 고착화된 카르텔을 원천 봉쇄하기 위한 조치다. 또 기업 내부에 담합 가담자에 대한 징계 규정을 신설하도록 하고 영업팀의 자체 조사를 명령하는 등 재발 방지를 위한 구조적 개선도 요구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번 사건은 국민 생활과 밀접한 식료품 분야에서 장기간 지속된 약탈적 담합을 적발해 제재한 것”이라며, “최근 체감 물가가 높은 상황에서 독과점 사업자의 부당한 가격 인상을 막고 시장 경쟁을 촉진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가보호’ 뒤에 숨은 부당 이득 = 설탕 산업은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한 장치산업이면서 고율의 관세로 인해 외국산 설탕의 진입이 어려운 구조적 특징을 갖고 있다. 정부는 국내 식원자재 생산자 보호를 위해 무역장벽을 세워 안정적인 수요를 보장해 왔다. 하지만 제당 3사는 국가적 보호와 독과점적 지위를 국민편익이 아닌 영업이익 극대화를 위한 도구로 악용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설탕은 빵, 과자, 음료 등 거의 모든 가공식품의 필수 원료다. 설탕값의 부당한 인상은 결국 서민들의 식탁 물가 전반을 끌어올리는 ‘도미노 인상’을 초래한다. 이번 공정위 조치가 단순히 과징금 부과에 그치지 않고, 실제 시장가격의 합리적인 하락과 공정한 경쟁 질서 확립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문재호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이번 사건 처리를 기점으로 밀가루, 전분당, 계란, 돼지고기 등 민생 밀착형 식료품 담합 사건에 대해서도 조사력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먹거리를 볼모로 한 대기업의 ‘그들만의 리그’가 사라지고 소비자 주권이 회복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