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식 무역협상, 국가별 희비 갈려
이코노미스트 분석 … 영국 ‘실속’ 말레이시아 ‘최악’ 한국·일본 ‘중간지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한 무역 협상이 국가별로 희비가 엇갈린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시장 진출을 미끼로 관세 완화와 투자·정책 양보를 끌어내는 결과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트럼프 관세 협상, 누가 최상의 거래를 따냈나?’ 기사를 통해 “협상력 있는 국가는 부담을 최소화한 반면 규모가 작은 국가는 고율 관세와 광범위한 조건을 떠안았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아르헨티나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등과 최종 무역협정을 체결했고, 인도 유럽연합(EU) 등과는 다수의 기본합의(프레임워크)를 이뤘다. 당초 제시했던 ‘90일 내 90개 협정’에는 못 미치지만 주요국과는 타결을 본 분위기다.
◆아르헨티나 영국 ‘가성비’ 좋은 실리 챙겨 = 이코노미스트는 “이들 협정의 가장 큰 특징은 분량이 8페이지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짧고, 이행 강제력이나 분쟁 해결 장치가 거의 없다”고 꼬집었다. 특히 의회 승인도 결여된 경우가 많아 미국 정부가 상황에 따라 해석과 적용을 달리할 여지를 남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도 농민 단체는 이를 “전면적 항복”이라고 비판했고, 프랑스 전 총리는 EU 협상을 “복속에 가까운 선택”이라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식 무역협상 결과를 국가별 3개 그룹으로 구분해 분석했다.
가장 큰 부담을 진 국가는 캄보디아와 말레이시아다. 두 나라는 19%의 상호 관세율을 적용받는 대신 미국이 요구한 정책적 양보를 폭넓게 수용했다.
특히 말레이시아는 미국의 대중국 수출 통제 정책을 사실상 그대로 받아들이고, 향후 디지털 무역협정을 체결할 경우 미국과 사전 협의하기로 했다. 미국이 문제 삼는 다른 국가와의 협정을 체결하면,미국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종료할 수 있는 조항도 포함됐다. 말레이시아 내부에서는 ”독립 이후 가장 불리한 협정”이라는 탄식까지 나오는 정도다.
한국과 일본 대만 유럽연합(EU)은 공급망과 첨단 반도체 분야에서 협상력을 갖춘 국가들이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양보를 최소화했다는 평가다.
이들 국가는 15% 수준의 관세율을 수용하는 대신 자동차 의약품 반도체 등 핵심 품목에 대해 관세 면제나 예외를 확보했다.
대신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비관세 장벽을 낮추고, 일부 산업·농산물 관세를 철폐하기로 했다. EU는 7500억달러 규모의 미국 에너지 구매, 일본과 한국은 각각 5500억달러, 3500억달러 상당의 미국 투자계획을 약속했다. 인도는 18% 관세율과 함께 제네릭 의약품, 항공기 부품 등에 대한 조건부 면제를 얻어 ‘중간 수준’의 결과를 받아들였다.
트럼프와의 협상에서 가장 ‘가성비 좋게’ 실리를 챙긴 승자 국가는 아르헨티나와 영국이 꼽힌다. 두 나라는 관세율을 10%로 억제하는 데 성공했고, 아르헨티나는 쇠고기 무관세 수출, 영국은 연간 10만대 자동차 저율관세 수출이라는 파격적인 예외조항을 확보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나라들이 떠안은 정책·규제상의 부담은 상당 부분 피했다.
◆단기적으론 트럼프 승리, 장기적으론 반전 가능성도 = 이코노미스트는 “무역 적자를 실패, 흑자를 성공으로 보는 중상주의적 기준에서 보면 이번 협상의 승자는 미국”이라고 진단했다. 미국은 자국 기업의 시장 접근권을 넓히고, 비관세 장벽 완화와 대규모 투자 약속을 받아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협정에는 중국을 겨냥한 수출 통제 공조와 미국식 규제 기준의 해외 확장 조항도 담겼다.
이어 “하지만 ‘수출은 좋고, 수입은 나쁘다’식의 계산은 본질을 놓칠 수 있다”며 “미국의 관세는 결국 자국 소비자들을 압박하고, 경쟁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미국의 압박으로 시장을 개방한 국가들은 장기적으로 산업구조를 개선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단기적으로 가장 많은 양보를 한 국가가 장기적으로는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역설이 현실이 될지 주목된다.
한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우리 국회에서 대미투자특별법이 통과되지 않은 점을 문제삼아 “한국에 대한 관세를 25%로 인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즉각 방미단을 구성, 현지 정부·의회 관계자들과 잇따라 회동하며 관세인상 유예와 협정 이행의지를 설득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회도 대미 관세협상 후속 조치를 다루는 대미투자특별법 처리를 논의하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올해 1년 내내 이런 불확실한 상황이 있을 거라고 예상한다. 내일 아침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며 “불확실성을 관리해나가는 것 외에 특별한 해결책은 없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