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보험사 미실현손실 13조2000억엔…회계기준 손본다
금리 상승으로 생명보험사 국채 평가손실 부담 커져
재무제표 부담 완화 조치 … 국채 추가 매입 길 열리나
일본 회계당국이 생명보험사의 국채 평가손실 부담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회계기준 개정에 나섰다. 금리 상승으로 불어난 미실현손실이 재무제표에 부담으로 작용하자, 만기보유로 분류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 손상차손(가격이 크게 떨어졌다고 회계상 손실로 반영하는 것) 인식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18일(현지시간) 일본공인회계사협회가 생명보험사의 국채 평가손실 처리 규정을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장기 보험계약과 대응되는 채권은 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만기보유채권으로 분류해 손상차손을 인식하지 않아도 된다.
현행 규정상 자산의 시장가격이 장부가 대비 50% 이상 하락하고 회복 가능성이 없을 경우 손상차손을 반영해야 한다.
최근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과 국채 매입 축소로 초장기 국채 가격이 급락하면서 이 기준에 근접한 사례가 늘어났다.
실제 일본 4대 생명보험사인 일본생명보험, 제1생명보험, 메이지야스다생명보험, 스미토모생명보험의 일본 국채 미실현손실은 2025년 말 기준 13조2000억엔에 달한다. 이는 약 860억달러 규모다. 제1생명의 경우 지난해 12월말 기준 엔화 채권 보유액 18조7000억엔 가운데 15조7000억엔이 이른바 ‘보험준비금 대응 채권’으로 분류돼 있다.
시장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도쿄증시에서 보험주로 구성된 토픽스 보험지수는 2.9% 상승해 토픽스지수 상승률 1.2%를 웃돌았다.
일본 아이자와증권의 이쿠오 미쓰이 펀드매니저는 “단기 실적을 압박하던 요인이 제거돼 주주 배당이 더 안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인텔리전스의 스티븐 램 애널리스트도 이번 조치가 보험사의 실적과 재무상태에 '상당한 안도'를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조치는 과거 미국 실리콘밸리은행 사태와 유사한 위험을 차단하려는 성격도 짙다. 당시 장기채권의 미실현손실이 쌓인 상황에서 예금 인출이 급증하며 유동성 위기로 번졌다. 일본 보험사 역시 만기까지 보유하면 원금 상환에는 문제가 없지만, 해지환급금 지급이 급증하거나 자금 유출이 늘 경우 손상차손을 현실화해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
그동안 금리 상승으로 재무제표상 미실현손실이 불어나면서 보험사들은 추가 국채 매입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손상차손 인식 기준을 넘길 경우 자본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계기준이 완화되면 평가손실 부담이 줄어들어 국채를 더 오래 보유하거나 추가 매입하는 데 제약이 완화된다.
오카산증권의 하세가와 나오야 수석 채권전략가는 이번 조치가 생명보험사의 국채 매입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스테이트스트리트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의 마사히코 루 수석 채권전략가도 “구조적인 수급 과제는 남아 있지만, 이번 지침은 회계상 매도 압력을 줄인다”고 말했다.
결국 핵심은 금리 경로다. 금리가 더 오를 경우 장기채 가격은 추가로 하락해 평가손실이 확대될 수 있다. 회계기준 완화로 당장의 손실 인식은 피하더라도, 지급 부담이 늘거나 대규모 환매가 발생하면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충격이 확산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회계당국이 회계상 숨통을 틔웠지만, 금리 상승기 장기채 보유 구조가 안고 있는 근본 위험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