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시행 18일전

명확한 기준 없이 시행 임박…현장 혼선 가능성 커져

2026-02-20 13:00:03 게재

개정 노조법 하위 규정 미완성 속 사용자성 판단 쟁점 … 노동위원회·법원 판단 의존 불가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다음달 10일 시행된다. 개정 노조법은 사용자 범위를 형식이 아닌 실질 기준으로 판단하도록 하고,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조합원별로 구분하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원·하청 구조에서 원청의 교섭 책임을 둘러싼 해석, 경영상 결정과 근로조건 간 인과관계 판단, 교섭창구 단일화 적용 범위 등이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시행령과 표준 교섭 모델이 아직 확정되지 않아 현장에서는 교섭 절차와 대응 방식에 대한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있다. 초기에는 노동위원회 판단과 행정소송을 통해 기준이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노란봉투법 시행 전 준비상황과 하위 규정 공백, 산업별 파급 경로, 판례 형성 과정 등을 점검해 제도 안착 과제를 살펴본다.

지난해 11월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과 노조법 2조 당사자들이 ‘하청노동자 교섭권 무력화 및 원청책임 면죄부 시행령 폐기’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노란봉투법 시행이 18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법 적용 기준과 현장 운용 방식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법은 확정됐지만 실제 교섭 절차와 판단 기준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산업현장에서는 “입법 속도에 비해 준비가 뒤처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1월 25일부터 올해 1월 5일까지 1차 입법예고를 한 뒤 1월 21일부터 2월 6일까지 시행령 개정안을 재입법예고했다. 노사 의견을 반영해 일부 규정을 보완했지만 원·하청 교섭에도 교섭창구 단일화 원칙을 유지하는 기본 틀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재입법예고가 끝난 뒤에도 시행령 최종안은 확정되지 않았다. 하위 규정 정비가 두달 반 넘게 이어지면서 현장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섭단위 기준 추상적 = 핵심 쟁점은 원·하청 교섭에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어떻게 적용할지다. 개정안은 교섭단위를 정할 때 이해관계 공통성, 대표성, 갈등 가능성, 근로조건 차이, 교섭 관행을 종합적으로 보도록 했다.

그러나 기준이 포괄적이어서 실제 판단은 노동위원회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임금 체계와 복리후생, 작업 배치, 노무 관리 방식의 차이를 어디까지 인정할지에 따라 교섭단위 분리 여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에서는 사용자성 판단이 가장 큰 쟁점이다. 조선·자동차·철강 업종은 원청이 생산 일정과 인력 투입을 사실상 통제하는 구조가 지배적이다. 공정 배치와 작업 지시, 안전 기준도 원청이 통합 관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식상 도급 관계라도 실질 지배력이 인정될지 여부가 분쟁의 출발점이 될 전망이다.

물류·택배와 플랫폼 산업도 상황은 비슷하다. 배송 단가와 업무 배정, 평가 체계를 원청이 설계한다면 근로조건에 대한 실질 영향력을 인정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다. 다단계 도급 구조에서는 사용자성 판단이 개별 계약을 넘어 산업 구조 전체로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통계청과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사내하도급·용역·파견 등 간접고용 노동자는 약 350만명 수준으로 추산된다. 일부 제조업은 원청 인력보다 협력업체(하청) 인력이 더 많다. 사용자성 기준이 확대되면 영향이 개별 사업장을 넘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노 “원청 교섭 확대” vs 사 “동시 교섭 부담” = 20일 노동계에 따르면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그대로 적용하면 원청이 교섭 상대를 사실상 선택하게 된다고 본다. 하청 노조가 여러 개인 경우 교섭력이 약한 노조가 배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하청 노조는 시행 직후 원청을 상대로 동시 교섭을 요구할 준비를 하고 있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시행 이후 원청 교섭 요구가 실제로 진행될 것”이라며 “사용자성 기준이 모호하면 분쟁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영계는 교섭단위 분리 기준이 넓어지면 교섭 구조가 과도하게 세분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조선·건설·물류처럼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일반적인 업종에서는 하나의 원청이 여러 하청 노조와 동시에 교섭해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파업이 연쇄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은 “사용자 개념 확대는 원청의 교섭 부담 증가와 산업 현장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판단지원위 설치…초기 기준 형성 관건 = 노동부는 원·하청 교섭과 일반 교섭을 구분해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기존 원청 노동자 간 교섭단위 분리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며 사용자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분리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단체교섭 판단지원위원회’를 통해 사용자성과 노동쟁의 범위에 대한 행정해석을 지원할 계획이다. 다만 자문기구 성격이어서 실제 분쟁은 노동위원회와 법원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노동부 관계자는 “행정해석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현장에서 판단 기준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초기 혼선을 줄이기 위해 사례 축적과 가이드라인 보완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법 시행 이후에는 교섭 개시 단계부터 갈등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하청 노조가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면 사용자성 인정 여부가 1차 쟁점이 된다. 원청의 인력 배치 관여, 납품단가와 임금 구조 연동, 안전관리 통합 운영 여부 등이 판단 요소가 될 수 있다. 실제 일부 사업장에서는 교섭 상대 확정 기준이 없어 교섭 요구 공문 발송 자체를 미루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분쟁 흐름은 ‘교섭 요구 → 사용자성 판단 → 노동위원회 교섭단위 결정’ 순으로 비교적 명확하다. 이후 불복하면 행정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시행 초기 몇 개월은 판정이 쌓이면서 사실상 기준이 만들어지는 시기가 될 전망이다.

노란봉투법의 핵심은 교섭 절차가 아니라 사용자 범위와 손해배상 구조의 변화다. 개정 노조법 제2조는 사용자 범위를 계약 형식이 아니라 실질 지휘·감독 여부로 판단하도록 했다. 도급 구조에서 책임을 회피하기 어렵게 만든 것이다.

◆손배책임 구조 변화 … 소송 전략도 재편 = 제3조는 손해배상 책임을 개인별로 따지도록 했다. 과거에는 파업이 위법이면 조합원 전원에게 연대 책임을 묻는 경우가 많았다. 개정 노조법은 참여 정도와 역할, 인과관계를 기준으로 책임을 나누도록 했다. 거액 손배 소송이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킨다는 비판을 반영한 조치다.

판례 흐름도 달라지고 있다. 대법원은 2023년 판결에서 위법성 판단과 손배 책임 판단을 구분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급심에서는 공동불법행위 요건을 엄격히 보거나 손해액을 줄이는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생산 차질 손해를 계산할 때 경영상 요인을 분리해야 한다는 판단도 나왔다.

손배 책임 개별화는 분쟁구조 자체를 바꿀 가능성이 있다. 과거에는 거액 손배 청구가 분쟁 억제 수단으로 쓰였지만 최근에는 인과관계 입증 중심으로 책임 범위가 재구성되고 있다. 이는 기업의 소송 전략과 재무 관리 방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경영계는 단기적으로 분쟁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고 본다. 사용자성 다툼이 늘면 법률 비용과 관리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기업은 도급 계약 구조와 노무 관리 체계를 점검하고 있다. 노동계는 분쟁 증가는 일시적 조정 과정이며 교섭 구조 정상화 단계라고 본다.

문제는 정부의 구체적 실행 모델이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제도 초기에는 표준 교섭 모델과 사례 축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기준이 추상적이면 같은 사안도 사업장마다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 노동부는 상생 교섭 모델과 모의 시뮬레이션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2월 20일 현재 공식 발표는 없다. 현장에서 참고할 절차가 부족한 상황이다.

노동부는 입법예고 의견을 검토해 절차를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제도 안착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시행 초기에는 법 취지와 기존 관행이 충돌하며 해석 기준을 만들어 가는 조정 국면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시행 유예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예정대로 시행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노란봉투법은 입법 논쟁을 넘어 운용과 해석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

◆시행 초기 ‘소송 선행’ 가능성…업종별 파급 = 현장에서는 교섭 시작 전부터 실무 혼선이 나타난다. 교섭 요구 방식과 대상 확정 절차, 사용자성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대응 매뉴얼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부 사업장은 교섭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초기 분쟁이 사법 판단 중심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크다. 노동위원회 결정 이후 행정소송으로 이어지면 교섭이 장기간 지연될 수 있다. 제도 취지보다 판례 형성이 먼저 진행되는 구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합법 파업 범위 확대도 변수로 꼽힌다. 외주화와 공정 이전, 납품단가 조정 등 경영상 결정이 근로조건에 직접 영향을 미칠 경우 쟁의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경영상 판단과 근로조건 사이의 인과관계를 어떻게 입증할지가 핵심 기준이 될 전망이다.

산업별 적용 속도는 차이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원·하청 구조가 복잡한 조선·자동차·철강 업종은 교섭 요구가 빠르게 현실화될 수 있다. 간접고용 비중이 낮은 업종은 적용 속도가 상대적으로 완만해 업종별로 다른 판례 흐름이 형성될 전망이다.

금속노조는 시행 시점에 맞춰 원청 교섭 요구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조선 업종은 원·하청 협의체 논의가 진행 중이며 철강 업종에서도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 가능성이 거론된다. 대응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교섭 요구가 현실화될 것이라는 점에는 공통된 인식이 있다.

하위 규정이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이 시행되면 초기 기준은 노동위원회와 법원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표준 교섭 모델이 없는 상황에서 개별 사건이 선례가 되면 같은 사안도 사업장마다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 이는 제도 안착 과정에서 추가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교섭 절차와 판단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면 초기 분쟁 비용은 노사 모두에게 돌아갈 수 있다. 제도 정착을 위해서는 시행 이후라도 업종별 사례 축적과 해석 기준 공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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