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채 원리금 상환비가 사상 첫 사회보장비 웃도나
재무성, 2029년 세출 예산 추계서 400조원 육박 예상
장기채권 금리 상승이 원인…외국인 거래비중 확대
일본 국채금리가 상승하면서 금융시장은 물론 재정운용에도 커다란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막대한 국채 원리금을 상환하기 위한 세출 예산규모가 사회보장비를 웃돌 수 있다는 추계가 나왔다. 국채 수익률이 상승하면서 외국인 투자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확대되고 있다.
◆국채비가 예산의 30% 넘어설 듯 = 일본 재무성은 최근 자민당 관련 부서에 ‘향후 3년간 재정상황 추계’를 보고했다. 일본 정부는 매년 국회에 예산안 심의를 하기 위한 참고 자료를 제출하는 데 사전에 자민당에 보고한 것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29년 일본 정부 예산안에서 국채 원리금 상환에 필요한 예산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40조엔을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재무성 자료에 따르면 일본 정부의 세출 예산에서 국채 원리금 상환에 들어가는 ‘국채비’ 규모는 2029년 41조3000억엔(약 39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특히 원금 상환이 아닌 이자 비용에만 21조6000억엔(약 200조원)이 들어갈 것으로 보여 지난해(10.5조엔) 대비 두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같은 예상은 지난해 추계 때에 비해 대폭 상승한 것이다. 재무성은 지난해 추산에서 2027년 33조1000억엔을 예상했지만 올해는 34조7000억엔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2028년에는 38조엔으로 추산해 지난해 추계(35.3조엔) 대비 크게 상향했다.
이처럼 정부 예산 추계액이 빠르게 늘어나는 데는 국채금리가 급등하고 있어서다. 재무성은 매년 예산편성을 하면서 국채 10년물 예상 수익률을 상정해 이를 기초로 이자비용을 추산한다. 이에 따르면 당초 2026년 국채 이자비용을 2.2%로 상정했지만 현재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에는 3.0%로 잡았다.
지난해 12월에 시장금리가 정부가 상정한 금리를 웃돌아 올해 1월 2.38%까지 상승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장의 움직임을 고려해 2027년(3.2%)과 2028년(3.4%)은 지난해 상정했던 추정치를 1% 가까이 상향했다. 2029년도 추정 금리는 3.6%에 이른다.
다만 장기금리 상승으로 정부의 이자비 부담이 바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국채 상환까지 잔존 기간이 평균 9년 정도로 차환을 위해 사전에 높은 시장금리를 반영했기 때문에 부담이 커진 것이다. 실제 정부가 예산에서 부담하는 이자 비용은 추정한 금액에 비해 적다는 의미다.
한편 일본 정부는 올해 4월부터 시작하는 2026회계연도 세출 총액으로 일반회계 기준 122조3000억엔(약 1150조원)을 국회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정부의 2029년도 일반회계 세출 총액은 139.7조엔으로 추정된다”며 “이 가운데 국채비 비중은 26%에서 30%로 상승할 것으로 보여 다른 예산의 삭감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외국인 13개월 연속 장기채 순매수 = 일본 장기 국채금리가 상승하면서 외국인 투자자의 비중도 확대되고 있다. 일본 증권업협회가 지난 20일 발표한 올해 1월 외국 투자자의 일본 장기국채 매입은 6조4000억엔(약 60조원)을 넘어섰다. 이 같은 규모는 2023년 3월 터진 미국 실리콘밸리뱅크 사태 이후 두번째로 큰 규모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외국인 투자자의 존재감은 다카이치 정권의 재정 확장정책에 따른 리스크가 반영된 장기 국채시장에서 더 확연하다. 외국인들은 지난달 초장기 채권만 약 2조1800억엔(약 17조원) 순매수했다. 이는 13개월 연속 매수 우위이다. 일본은행의 금융완화 정책이 시작된 2013년 수준과 비슷한 역대 최장기 순매수다.
외국인의 순매수가 활발한 가운데 일본 자국 기관투자자의 비중은 줄고 있다. 특히 전통적으로 초장기 채권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던 일본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의 매도 우위가 눈에 띈다. 이들은 지난달 약 7130억엔(약 6조7000억원) 순매도세를 보였다. 보험사들이 국채금리 수익률이 낮을 때 매수한 채권 가격이 떨어지자 이를 매각하고 최근 발행한 고금리의 채권으로 갈아타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어서다.
일본 지방은행도 금리상승에 따른 평가손이 발생하자 초장기채권 매각에 나서 지난달에만 4016억엔(약 3조7500억원) 순매도했다. 다만 개인들의 연금성 자금을 운용하는 신탁은행은 8131억엔(약 7조6000억원) 순매수했다.
한편 이달 들어 일본 장기 및 초장기 채권금리는 다소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사상 처음으로 4%대까지 치솟았던 국채 40년물은 지난 21일 기준 3.561%까지 하락했다. 20년물(2.911%)과 30년물(3.310%)도 각각 전날 대비 0.044%p. 0.020% 하락했다. 장기 금리의 기준인 10년물은 2.105%로 0.035%p 하락했다.
지난 8일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압승한 이후 채권시장에서 장기채 금리가 하락세를 보이는 데는 정국 안정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일본 정부의 기초적 재정수지가 적자지만 채권 잔액이 명목 국내총생산 대비 상승세가 둔화하고 있다”며 “시장이 우려할 정도로 재정은 약하지 않다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카이치 정권의 확장 재정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 언제라도 채권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치무라 나오토 다이이치생명 운용기획부장은 “재정확장을 뒷받침하는 재원을 명확하게 해 재정에 대한 신인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시장의 기대를 저버리면 재정리스크의 재연으로 채권금리가 다시 급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