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트럼프 관세압박, 외교역량이 최후 방어선
트럼프의 관세압박에 전세계가 제대로 된 저항 한번 못해보고 항복했는데 모두가 예측했던 대로, 아니 기대했던 대로 미국 법원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 기반 상호관세에 위법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상황은 우리가 기대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대법원이 대통령의 지렛대를 제거한 것이 아니라 다른 지렛대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트럼프는 곧장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10%의 글로벌 관세명령에 서명했다가 바로 15%까지 올리겠다는 의지를 표명 했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을 둘러싼 미국 법원의 판결과 이에 대한 트럼프의 정치적 반발은 한국에 두 가지 메시지를 던진다. 하나는 미국 통상정책의 불확실성이 제거되기는커녕 구조화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불확실성의 시대에 한국이 과연 충분한 외교적 대응 역량을 유지하고 있는가라는 것이다.
미국 사법부는 트럼프행정부가 남용해온 관세권한에 분명한 경계선을 그었다.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국가안보나 통상 불공정을 명분으로 무제한적 관세를 부과할 수는 없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이 판결이 곧바로 안정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트럼프는 법원의 판단을 ‘정치적 판결’로 규정하며 정치적 압박과 여론 동원을 통해 관세를 다시 핵심무기로 만들겠다는 태도를 숨기지 않았다. 이는 한국 입장에서 미국 통상정책이 더 이상 법과 제도에 의해 자동적으로 예측가능한 영역이 아니라 국내 정치의 파고에 따라 급변할 수 있는 변수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관세 리스크 커질수록 외교 역량 더 절실
더 위협적인 것은 트럼프가 25일(현지시간) 미 의회 시정연설에서 보여준 것처럼 향후 지속적으로 관세를 통한 무역전쟁을 국내정치의 지렛대로 삼으려 할 가능성이다. 최장 150일밖에 지속할 수 없는 무역법 122조의 후속조치로 이른바 ‘슈퍼 301조’를 통한 강력한 관세부과도 가능하다. 미국에 큰 흑자를 내고 있는 한국이 트럼프 국내정치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반도체와 함께 우리의 최대 수출품 중 하나인 자동차나 철강 등이 대상이 될 수 있다.
자신들의 불법에 대한 조사를 극우정치권을 통해 한국의 불공정 무역으로 호도하고 있는 쿠팡 사태가 그 방아쇠가 될 가능성도 있다. 최근 트럼프가 한국에 대한 관세를 25%로 올리겠다고 경고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미 안보 협력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위험성은 결코 작지 않다.
이러한 환경에서 한국에 요구되는 것은 단순한 통상기술이 아니라 외교·안보·산업을 전략적으로 엮는 고도의 종합적 국가외교 역량이다. 트럼프식 관세는 경제문제이면서 동시에 외교문제이고, 나아가 안보논리와 결합되는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지난 경주 한미정상회담 이후 채택된 한미 간 공동 팩트시트는 관세문제와 안보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위성락 안보실장과 조현 외교장관이 밝힌 것처럼 관세문제가 안보분야의 협상마저 발목을 잡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경제외교와 방산외교를 전통적인 외교·안보라인이 아닌 개별 경제부처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움직임이 관측되고 있다.
경제외교와 방산외교는 계약 규모나 경제적 논리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 특히 방산외교는 안보신뢰 동맹정치 지역정세와 밀접하게 얽혀 있으며, 경제외교 역시 통상 규범과 정치적 신호 관리가 핵심이다. 이런 사안이 외교부와 국가안보 컨트롤타워가 아닌 개별 부처 주도로 분절될 경우 한국의 대외 메시지는 일관성을 잃기 쉽고 국가 간 협상에서 수십 년간 축적해온 외교의 전문적 역량을 국익을 위해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없게 된다.
외교는 ‘사업’이 아닌 ‘국가 생존의 전략’
외교부와 국가안보실이 담당해온 역할은 단순한 ‘조정’이나 ‘전달’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전략적 맥락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약화시키는 구조개편은 단기적으로는 속도를 높일 수 있을지 모르나 중장기적으로는 한국의 협상력을 잠식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트럼프 관세와 같은 정치화된 통상 압박 국면에서는 한 부처의 논리만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 트럼프식 관세압박이 다시 현실화될 경우 그 약점은 곧바로 노출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