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관세의 역설 ‘철강 웃고, 제조업 흔들’
뉴욕타임즈 “철강도시는 일자리 회복 … 제조업 전반엔 비용부담 증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는 미국 산업에 상반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트럼프 관세는 미국의 제철소 일자리를 늘리는 동시에 제조업 공장을 고사시키고 있다’는 내용을 24일(현지시간)보도했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미국 일리노이주 그라나이트시티의 제철소 고로가 재가동되면서 약 400명의 노조 근로자가 복직했다.
그라나이트시티는 미국 산업 공동체 쇠퇴의 상징으로 꼽히는 지역이다. 낡은 벽돌 건물과 공실 상가, 줄어든 노조 조합원 수는 지역 경제의 부침을 보여준다. 3년 전 1400명이던 노조 조합원은 고로 재가동 발표 직전 764명까지 줄었다. 이번 재가동으로 일부 해고 노동자들이 돌아오고 있다.
에릭 애디슨은 시간당 29달러 이상 벌던 직장에서 해고된 후 22달러 미만을 받는 직장으로 옮겼다가 이번 재가동으로 31.20달러의 시급을 받으며 복직했다.
현지에서는 이를 두고 “미국 산업 부활의 신호”라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부과한 철강·알루미늄 관세가 수입을 억제하고 국내생산을 되살렸다는 상징적 사례다.
철강노조 지부장 크레이그 맥키는 “관세가 미국산 철강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메이드 인 아메리카’ 브랜드 매력도 약화 = 그러나 같은 관세 정책이 미국 제조업 전반에 동일한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뉴욕타임즈는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에 본사를 둔 자전거 수리공구 제조업체 ‘파크 툴’의 사례를 전했다. 세계 70개국에 제품을 수출하는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 에릭 호킨스는 철강·알루미늄 관세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제품 가격을 10% 인상해야 했고 그 결과 매출 성장세가 둔화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트럼프는 ‘비용을 높이면 일자리가 돌아온다’고 쉽게 말하지만 우리 회사는 훨씬 더 높은 원자재 비용을 떠안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그리고 이는 최근 무역정책 혼란 이전의 상황이었다. 미국 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에 대한 위법 판결을 한 이후 오히려 불확실성이 확대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철강 산업 보호를 국내 제조업 부활의 중심 정책으로 내세워왔다. 그러나 파크 툴의 사례는 관세가 이미 존재하는 일자리마저 위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호무역 정책 가운데에도 미국 제조기업들은 수십 년간 구축해온 글로벌 공급망에 여전히 의존하고 있으며, 수천개의 부품 가격이 상승했다. 현재 미국 철강 가격은 유럽보다 약 30% 높고, 중국보다는 두 배 수준이다.
경제학자 케이디 러스와 리디아 콕스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내 제철소에서 1명이 일할 때 철강을 구매하는 제조업 공장에서는 80명이 일한다. 두 경제학자는 트럼프 1기 당시 관세 정책이 제철소에서 약 1000개의 일자리를 늘린 반면 제조업 전반에서는 7만5000개의 일자리를 줄였다고 분석했다.
제조업체들은 광범위한 무역전쟁에 대한 해외 반발에도 직면해 있다. 일부 해외 유통업체는 미국산 제품 구매를 줄이고 다른 국가로 발주를 전환하고 있다. ‘메이드 인 아메리카’ 브랜드의 매력도 약화되고 있다
또 빈번하게 바뀌는 관세율과 통관 절차로 인해 행정업무 부담이 커졌다. 파크 툴의 70명 직원들은 신제품 개발 대신 관세 일정과 통관 서류 준비에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
호킨스 CEO는 “공급망 대부분을 국내에서 조달하지만 약 3500개의 부품은 아시아, 특히 대만에서 들여온다”며 “이를 단기간에 대체하는 것은 어렵다. 대만에서 금형 제작 비용은 약 1만5000달러이지만, 미국에서는 8만~9만달러가 든다”고 말했다.
이처럼 미국의 관세 정책은 철강 산업과 제조업 전반 사이에서 상반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산업 부활의 상징과 구조적 비용 부담이라는 두 현실이 동시에 상존하는 상황이다.
◆한국 산업계엔 변동성 확대 = 한편 미국의 철강 관세 강화와 보호무역 기조는 한국 산업에도 복합적인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
우선 미국이 자국 철강산업 보호를 강화할 경우 한국 철강업계의 대미 수출 여건은 한층 까다로워질 수 있다. 아울러 미국내 철강가격 상승은 현지에 생산거점을 둔 한국 자동차·배터리 기업의 원가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물론 미국 기업들도 동일한 비용 상승을 겪기 때문에 경쟁구도 자체가 크게 왜곡되지는 않을 수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될 경우 현지생산 확대전략은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미국의 정책 불확실성이 지속될 경우 세계 교역 위축과 수요 둔화로 이어질 수 있어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전반에는 변동성 확대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