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일용노동자, 공공현장에서 4만~7만명 쫓겨날 판

2026-02-27 13:00:02 게재

체불방지 발주자 월 1회 임금직불, ‘통장도 못 만들고 하루 일당이 절박한 약자’ 배제 … ‘당일 임금 선지급’ 제도화해야

건설노동자는 우리 사회를 건설한 필수 구성원임에도 ‘노가다’라 무시당하거나 제도에서 소외당했다. 필자는 지난 30년여년 간 이들 곁에 있었고 문제와 해법의 퍼즐을 맞췄다고 자부해왔다. 하지만 건설노동자 중 ‘놓치고 있던 사각지대’가 있음을 깨달았다. 매일 고용관계가 종료돼 당일 임금을 받아야 하는 건설일용노동자 문제다. 그들의 존재는 알았으나 극히 소수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6만명에서 33만명에 이르는 상당한 규모다. 이들은 대개 공공 취업알선센터나 노동조합의 조직대상에서도 소외됐다.

대신 일용노동자 곁에는 일자리를 찾아주고 당일 임금을 지급해 온 유료직업소개소(직업안정법 제19조에 의거 등록)가 있다. 건설업체를 대신해 일용노동자에게 노동한 하루 일당을 선지급함으로써 체불을 원천적으로 막고 생계유지를 돕는다. 이 선불노무비는 통상 건설업체로부터 60일 이후에 후불로 받게 되는데 도산·폐업·압류가 발생할 경우에는 유료직업소개소가 망하기도 한다. 사각지대의 건설일용노동자처럼 유료직업소개소의 임금 선지급 문제 역시 회색지대에 놓여 왔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공공공사에서 임금체불을 막고자 ‘발주자의 월 1회 임금 직접 지급’을 규정(3월 30일 시행)함으로써 수면 아래 회색지대에 놓여 있던 이 문제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발주자가 전자대금지급시스템을 활용해 임금을 직접 지급할 경우 건설일용노동자에 대한 당일 임금지급이 불가능해진다. 체불을 막겠다는 정책이 공공공사 현장에서 일용노동자를 쫓아내는 역설적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건설일용노동자와 유료직업소개소는 격분하고 있다. 정부도 이 문제를 놓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통장 없는 건설 일용노동자는 일하지 말라는 겁니까” 지난 1월 21일 전남 전주시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 지역구 의원사무실 부근에서 건설일용노동자와 전국고용서비스협회 유료직업소개소 회원 400여명이 ‘당일 노동 당일 임금 보장하라!’고 요구하며 거리행진하고 있다. 사진 전국고용서비스협회 제공

#. 건설일용노동자에게 발주자 임금 직접지급을 설명하면서 ‘통장으로 월 1회 임금을 확실하게 받으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통장을 만들 수 있고 월 1회 임금을 받아도 살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지요.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우린 그러지 못합니다. 건설현장엔 우리 같은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통장이 없으면 일을 못한다고요. 우리더러 죽으라는 거네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 건설업체 관리자에게 ‘발주자 임금 직접지급 시 일용노동자에 대한 당일 임금 지급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기후 등으로 작업중단이 잦은데 입주일자를 맞추려면 건설현장에서 일용노동자 투입은 불가피합니다. 그들에게 발주자가 당일 임금을 지급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일용노동자 투입을 막으면 어쩌자는 것인지...”라며 답답해 했다.

#. 유료직업소개 사업자는 “지금껏 일용노동자에게 일자리를 찾아주고 당일 임금을 지급해 체불을 막아 왔습니다. 벼랑 끝에 선 일용노동자를 내쫓고 함께 한 우리는 문을 닫으라는 것입니까. 대통령은 공공분야 모범사업자를 강조하던데,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토부는 공공공사 현장에서 임금체불을 막기 위해 전자대금지급시스템을 활용해 발주자가 임금을 직접 지급하는 건설산업기본법(건산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3월 30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건설현장에 만연한 임금체불을 막겠다는 취지는 타당하지만 그로 인해 ‘벼랑 끝 일용노동자가 내쫓길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국토부 대책으로 ‘일용노동자’ 배제, “부당” = 월 1회 기성액을 지급하는 전자대금지급시스템을 활용해 발주자가 노동자의 임금을 직접 지급하려면 두가지 조건이 전제돼야 한다. 먼저 통장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월 1회 임금을 수령해도 무방해야 한다. 하지만 유료직업소개소를 통해 건설현장에 취업하는 일용노동자 중에는 극단적 상황에 놓여 이 조건에 맞지 않는 이들이 많다.

반복된 연체로 신용불량자이거나 잦은 이동으로 주소지 확인이 어려운 경우, 법원의 채권압류·추심명령이 떨어졌거나 신용회복 절차 중 특별제한을 받는 경우, 금융사기나 보이스피싱에 연루돼 금융질서 문란자로 등록된 경우 등 다양한 이유로 통장을 만들 수 없다. 이런 일용노동자는 인간관계가 끊어지고 여윳돈이 없어 대개 당일 임금을 수령하지 못하면 숙소비나 식비 교통비가 없어 생계유지조차 어렵게 된다.

고용노동부 2017년 지침에도 일용노동자의 경우 매일매일 근로관계가 단절되므로 종료된 시점에 임금을 지급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발주자의 입장에서도 월 1회 지급되는 전자대금지급시스템으로는 다수의 현장에서 일하는 일용노동자에게 당일 임금을 직접 지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규모는 얼마나 될까.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현재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건설노동자(기능인력)는 146만명에 달한다. 건설근로자공제회에 의하면 유료직업소개소가 노동자의 구직 경로인 비율 12.1%와 건설업체의 구인 경로인 비율 24.5%를 기준으로 추산하면 유료직업소개소를 통해 하루 단위 일용노동자 규모는 16만~33만명에 이른다.(기계조작노동자 제외) 또한 전국고용서비스협회(전고협)의 2022~2024년 기준 데이타베이스(DB)에 따르면 회원사인 유료직업소개소를 통해 건설현장에 취업한 일용노동자(25만4929명) 중 통장으로 임금을 수령(2만2678명)한 비율은 8.9%에 불과하다. 현금으로 임금을 수령(23만2251명)한 비율이 91.1%에 달할 정도로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를 활용해 유료직업소개소를 통해 하루 단위로 취업하는 건설일용노동자 중 통장이 없어 현금 수령자의 규모를 추정하면 14만~29만명에 이른다.

이들 중 2024년 기준 건설투자 중 공공공사의 비중인 21.0%(한국은행 국민계정, 2025년)를 곱해 공공공사에 취업하는 규모를 계산하면 4만~7만명이 도출된다. 이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당한 규모일뿐더러 ‘약자 보호’를 강조하는 이재명정부의 철학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지금껏 자생적 관행인 ‘당일 임금 선 지급’으로 일해 왔다 = 옥외에서 생산이 이뤄지는 건설현장의 특성상 기후요인에 의한 작업중단은 일상적이고 빠듯해진 완공일자를 맞추려면 일용노동자의 일시적 추가 투입은 불가피하다. 이들에게 건설업체에서 당일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이미 건설노동시장에서는 그 해법으로써 임금 선지급 관행을 활용해왔다. 1988년쯤 200만호 건설 시기에 부족해진 노동자를 확보하기 위한 자구수단으로서 시작됐던 것이 자리를 잡은 것으로 추정된다.

당일 임금 선지급 이른바 ‘임금대위변제’란 직업소개소가 일용노동자에게 당일 임금을 현금으로 선지급하고 나중에 건설업체로부터 해당 임금 및 소개수수료(선불노무비)를 후불로 수령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통상 직업소개소는 노동자의 건강상태와 건설업기초안전교육 이수증 확인, 4대 보험료 공제 설명, 기초생활수급자 및 실업급여 수급자 여부 확인, 임금·근로시간 협상 대행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어 구인자와 구직자 양자로부터 직업안정법이 정한 합법적 범위 이내의 소개료를 징수한다.

당일 임금 선지급을 통해 일용노동자는 통장이 없더라도 일할 수 있고 당일 임금을 수령함으로써 생계유지가 가능하다. 나아가 정부가 막으려는 체불의 불안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다.

건설근로자공제회 2024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 이내 임금체불 경험자의 비율이 30%에 달한다. 이 가운데 취업경로가 인맥인 경우 34%인 반면 유료직업소개소를 통한 경우는 17%로 절반에 그쳤다. 당일 임금 선지급이 체불 방지에 효과적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일용노동자의 체불 위험을 이전받은 유료직업소개소는 선불노무비를 건설업체로부터 회수하지 못하면 도산에까지 이르게 된다.

“건설 일용노동자를 내쫓는 제도를 멈추십시오” 1월 28일 국토교통부 세종청사에서 건설일용노동자와 전국고용서비스협회 회원들이 ‘건설산업기본법 시행규칙 보완’을 요구하는 탄원서 1만부 제출과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전국고용서비스협회 제공

◆이미 국토부 고시로 문제점 표출, 하지만 묵인 = 당일 임금 선지급 관행은 아무런 관련 규정이 없이 합법도 불법도 아닌 회색지대에서 암묵적으로 이뤄져 오다가 2022년 7월에 시행된 국토부 고시로 인해 명시적으로 금지되면서 처음으로 불법적인 행위로 규정됐다.

공공공사에서 전자대금지급시스템을 통해 건설사업자가 노동자에게 임금을 직접 지급하도록 의무화한 국토부 고시의 목적은 ‘체불 방지’였다. 하지만 정작 일용근로자의 임금 체불을 막아왔던 선지급 관행을 금지시켰던 것이다.

이는 오히려 임금 선지급 관행의 역할을 명확하게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다. 2025년에 공공공사에서의 국토부 고시 시행 실태를 조사해 본 결과 편법적인 운영과 불가피한 묵인이 확인됐다.

경제적 행정적 부담이 너무 커 다른 어떠한 방법으로도 일용노동자에게 당일 임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 건설사업자는 편법적으로 ‘현금수령확인증’조차 유료직업소개소에 요구해 일용노동자에게 당일 임금을 선지급하도록 했다. 그에 대한 불가피성을 인식한 발주자 역시 이를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전고협 설문조사를 보면 공공공사 현장에서 ‘실제로는 기존 임금 선지급 관행을 이용한다’는 응답이 직업소개사업자 98.0%, 건설업체관리자 94.3%로 나타나 편법이 만연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세심하게 배려해 일용노동자도 함께 가야 = 2022년 7월 국토부 고시는 임금 선지급 관행의 필요성을 입증했고 올해 3월 시행 예정된 건산법 시행규칙 개정안은 관행의 제도화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음을 깨닫게 한다.

현재까지 유료직업소개소의 임금 선지급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유일한 규정은 이를 금지시켰던 국토부 고시다. 관련 규정 끝에 임금 선지급을 인정하는 근거 규정을 신설함으로써 자생적 관행을 제도화할 수 있다. 진정한 국민주권정부라면 사각지대의 건설일용노동자도 함께 갈 수 있도록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건설고용컨설팅 대표

경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