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자 선행매수 숨긴 애널리스트 “부정거래”
1·2심 “직접 이익 없어 부정수단 아냐” 무죄
대법 “자본시장 공정성 해칠 위험” 파기환송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기업분석보고서를 내기 전 소속 증권사 대표와 가족 등에게 매수 종목을 미리 알려 부당 이득을 챙기게 한 ‘선행매매’ 행위에 대해 대법원이 자본시장법상 사기적 부정거래, 즉 투자자를 속이거나 시장을 왜곡하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경필 대법관)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애널리스트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함께 재판에 넘겨졌던 이진국 전 하나증권(당시 하나금융투자) 대표는 무죄가 확정됐다.
A씨는 2014년부터 7년 연속 ‘베스트 애널리스트’ 1위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본인이나 팀원이 작성한 보고서가 공표되면 주가가 오르는 점을 악용했다. 보고서 발표 전, 이 전 대표의 비서와 자신의 장모 계좌를 관리하는 타 증권사 직원에게 추천 종목을 미리 귀띔해 주식을 사두게 한 것이다.
이들은 조사분석자료가 나와 주가가 오르면 즉시 팔아치우는 수법을 썼다. 이를 통해 이 전 대표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47개 종목에서 1억3900만원을, A씨의 장모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9개 종목에서 1300만원의 시세 차익을 거뒀다. 이 전 대표는 선행매매를 지시한 혐의로 함께 기소됐다.
재판의 핵심 쟁점은 애널리스트가 매수 추천 보고서를 내기 전 제3자의 계좌를 이용해 해당 주식을 미리 사두게 한 행위가 자본시장법상 ‘사기적 부정거래(부정한 수단·계획·기교 사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1·2심은 A씨가 직접 쓴 보고서와 관련해 직무정보를 이용한 혐의 일부만 유죄로 인정하고, 이들의 행위가 자본시장법이 금지하는 ‘사기적 부정거래’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무죄로 판단했다.
2심은 애널리스트가 분석자료를 발행할 때 제3자에게 증권을 추천한 사실 및 제3자가 보유한 사실을 고지할 의무는 없다고 봤다. 본인, 배우자와 달리 제3자에 관해선 법령상 의무조항이 없다는 것이다. 또 부정거래를 제한 없이 해석할 경우 처벌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위험이 있으며, A씨가 대표나 장모와 수익배분약정 등의 재산적 이해관계도 없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어떠한 행위를 부정하다고 할지는 자본시장의 공정성, 신뢰성, 효율성을 해칠 위험이 있는지를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3자가 보유한 증권이라도 추천할 때 투자자에게 잘못된 판단을 유도하는 등 공정한 경쟁을 해칠 우려가 있는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A씨의 공표 행위로 금융상품 거래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훼손됐다고 판단했다. 투자자들이 자료에 적힌 ‘제3자에게 사전에 제공한 사실이 없다’, ‘작성한 애널리스트는 해당 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등의 문구를 신뢰해 판단을 내렸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러한 기대에 반했다는 것이다.
또 A씨가 매매 주식 수량·금액 등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며 사실상 투자 주체로 나섰으며, 추천 주식을 사전에 알린 행위는 실질적으로 자료를 사전 제공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이해관계를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자료를 공표해 객관적 동기에서 증권을 추천한다는 오해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A씨가 주식 거래로 이익을 얻진 않았어도 개인적 이익을 얻거나 기대할 수 있었다며 “재산상 이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부정거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자본시장의 공정성·신뢰성·효율성을 해칠 위험을 판단하려면 △투자자문업자 등과 제3자와의 관계 △제3자가 해당 증권을 보유하게 된 경위 △제3자가 이익을 취할 수 있도록 투자자문업자가 의도했는지 △실질적 투자 주체가 누구인지 △이익을 얻거나 기대할 수 있었는지 등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구체적 기준도 제시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