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만 남은 ‘5400억 환경투자’…이제는 내역을 말할 때다

2026-03-03 19:22:43 게재

영풍이 석포제련소 환경개선과 관련해 2019년 혁신계획 발표 이후 5년간 약 5400억원을 투자했다고 밝혀왔다. 기업이 환경 개선에 거액을 투입했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상장회사가 수천억원 규모 투자를 언급할 때 시장은 당연히 근거를 묻는다. 무엇을 환경투자로 분류했는지, 실제로 얼마를 집행했는지, 시설 개선과 오염저감에 각각 얼마가 쓰였는지 등 구체적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공개된 자료는 총액 중심 설명에 머물러 있다.

회계 수치만 놓고 보면 더욱 그렇다. 2025년 3분기 말 기준 영풍 환경복구 충당부채 잔액은 2128억원이다. 2020년부터 2025년 9월 말까지 충당부채 사용액은 1566억원이다. 반면 같은 기간 충당부채 전입액은 3695억원에 이른다.

충당부채 전입액은 실제 지출이 아니라 향후 지출 가능성을 반영해 회계상 비용으로 인식한 금액이다. 만약 전입액을 투자 총액 산정에 포함했다면 이는 회계적 의미와 일반적 투자 개념 사이에 혼선을 낳을 소지가 있다. 회계업계에서 “전입액은 투자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최근 금융당국 산하 감리기구가 환경오염 비용 과소계상 여부에 대해 제재 심의에 착수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주민대책위원회는 환경복원 책임을 장부에서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고발에 나섰다. 아직 결론이 난 사안은 아니지만, 기업 회계 신뢰성과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가볍게 넘길 문제는 아니다.

환경투자 5400억원이 사실이라면 이는 오히려 투명하게 공개할수록 기업 가치에 도움이 될 사안이다. 항목별 투자 내역과 집행 시점, 시설 개선 효과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 시장의 의문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 반대로 숫자만 강조한 채 세부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다면 의혹은 확대 재생산될 가능성이 높다.

상장기업의 공시는 단순한 홍보 수단이 아니다. 투자자와 시장을 상대로 한 약속이다. 특히 환경 문제는 지역사회와 직결된 사안이다. 신뢰는 주장으로 쌓이지 않는다. 투명한 정보 공개를 통해서만 확보된다.

영풍이 강조해온 환경투자 규모의 실체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숫자의 무게에 걸맞은 책임 역시 뒤따라야 한다.

정석용 기자 sy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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