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부진 속 소비·투자는 반등…엇갈린 경기 신호탄
반도체 일시조정에 산업생산 지난달보다 1.3% 하락
‘트리플 감소’ 우려 씻고 소비·투자는 예상밖 ‘호조세’
소매판매 2.3% 증가에 설비투자는 6.8% 큰 폭 상승
2026년 한국 경제가 새해 첫 달부터 복합적인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반도체 생산이 일시적인 조정 국면에 들어가며 전체 산업생산은 감소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고물가와 고금리에 맥을 못추던 소비와 설비투자가 예상 밖의 큰 폭 반등을 기록, 경기회복에 대한 희망을 동시에 쏘아 올렸다.
◆반도체 산업 숨고르기 =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6년 1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지난달 전산업 생산지수는 전월 대비 1.3% 감소했다. 서비스업(0.0%)이 보합세에 머문 가운데, 광공업(-1.9%) 등에서 생산이 줄어든 결과다.
세부적으로 보면 전자부품이 월간 6.5% 늘었지만, 반도체는 같은 기간 4.4% 감소했다. 반도체의 연간 등락도 –5.2%로,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첨단 제품군이 수요 증가를 견인하면서도 범용 메모리 가격 하락과 재고 조정이 맞물린 결과란 분석이다.
지난 연말까지 인공지능(AI) 특수로 가파른 상승세를 탔던 반도체 생산이 재고 조정과 글로벌 수요 변동 여파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기타운송장비 등도 함께 감소하며 광공업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렸다. 서비스업의 경우 정보통신업 등 일부 업종에서 증가세가 나타났지만 내수경기를 반영하는 도소매업 등이 위축되며 전월 수준을 유지하는 데 그쳤다.
조선·항공 등 ‘기타 운송장비’ 부문은 17.8% 급감했다. 선박건조 일정의 계절적 편차와 특수선 납기 집중이 겹쳐 단기충격이 컸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반면 자동차는 전년 대비 17.4%, 전자부품은 21.5% 늘어나 연간 기준으로는 제조업 저변이 탄탄함을 재확인했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1.2% 로 전월보다 1.4%포인트(p) 하락했다. 가동률 70% 초반은 과잉설비 해소 전 구간으로, 기업들이 투자확대보다 재고 최적화에 집중하는 국면임을 뜻한다. 서비스업 생산은 전월과 비슷한 보합 수준을 유지했다. 정보통신(ICT) 서비스가 월간 8.0% 급등했고, 금융·보험은 1.1% 늘었다. 반면 도·소매업은 1.4%, 전문·과학·기술 서비스는 3.0% 감소했다.
◆‘옷·화장품’이 이끈 소비 반등 = 내수지표인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2.3% 증가했다. 품목별로는 의류 등 준내구재가 6.0%, 가전·컴퓨터 등 내구재가 2.3%, 화장품 등 비내구재가 0.9% 올랐다. 설 연휴 앞 쇼핑 수요와 겨울 의류 세일이 맞물려 준내구재 상승 폭이 가장 컸다.
외부활동이 잦아지는 연초 특성과 함께, 일부 대형 유통업체의 할인 행사와 소비심리 개선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고물가 기조 속에서도 필수 소비재를 넘어 패션과 미용 등 기호품 소비가 늘어났다는 점은 내수시장이 바닥을 치고 올라오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된다.
그러나 전년 동월 비교에서는 명암이 갈렸다. 식품·비내구재는 5.4% 줄고, 승용차는 9.5%, 의류는 7.1% 늘었다. 연간 기준 전체 소매판매는 0.1% 증가에 그쳤다. 이른바 ‘먹거리는 아끼고, 차와 옷은 쓴다’는 소비 양극화의 단면으로 풀이된다.
판매 경로별로 보면 대형마트는 연간 20.1%, 슈퍼마켓은 13.8% 급감했다. 반면 무점포 소매(온라인·홈쇼핑)는 6.1%, 자동차·주유소 소매는 7.6% 증가했다.
소비 분야에서 가계 소비가 비교적 탄탄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는 이재명정부의 민생예산 확대가 소비를 받쳐주는 효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과도 맞닿는다.
◆설비투자 호조, 건설투자는 급감 = 설비투자는 전월 대비 6.8% 증가로 전체 지표 가운데 가장 큰 폭의 상승을 기록했다. 세부적으로는 운송장비(자동차)가 15.1%, 반도체 장비가 4.0% 올랐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반도체 장비가 무려 41.1%, 자동차 장비가 16.0%, 전체 설비투자가 15.3% 증가했다.
반도체 장비 투자의 급증은 HBM·차세대 메모리 생산라인 확장을 위한 선투자 성격이 강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026년 설비투자를 각각 전년보다 10~15% 늘리겠다고 예고한 바 있어, 이 흐름은 상반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국내 기계 수주 동향은 엇갈렸다. 민간 부문 수주는 월간 4.1% 늘었으나, 공공 부문은 53.1% 급감했다. 공공 부문의 급감은 연초 예산 집행 공백과 신정부 예산 집행 가이드라인 조율 지연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전년 동월 대비 국내 기계 수주는 전체 0.1% 감소로 보합 수준이었다.
설비투자 지표의 강세는 기업들이 향후 경기회복을 믿고 ‘선제 투자’에 나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AI 데이터센터 관련 장비 수요가 국내 제조업 설비투자 증가의 새 동인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은 구조적 변화의 신호로 읽힌다. 특히 반도체 제조용 장비를 포함한 정밀기기와 전기차 관련 운송장비 투자가 활발했다.
하지만 건설 부문은 여전히 우리 경제의 가장 약한 고리로 남았다. 건설업체의 시공실적을 뜻하는 건설기성은 건축공사 실적이 급격히 줄며 전월 대비 무려 11.3% 감소했다. 최근 몇 년간 이어진 원자재 가격상승과 부동산 PF 부실 우려로 인한 신규 착공 위축이 실제 현장의 공사 중단이나 지연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건설 수주는 전년 동월 대비 35.8% 급증했다. 주택 부문이 24.1%, 철도·도로 등 토목 부문이 무려 70.5% 늘었다. 이재명정부의 2026년 본예산에서 SOC 및 주거·도시재생 분야 증액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수주와 기성 사이의 6~12개월 시차를 감안하면, 현재의 건설 침체는 올 상반기까지 지속되다가 하반기에 점차 회복하는 ‘U자형’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경기 상황을 나타내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생산감소의 여파로 전월 대비 0.2p 하락한 98.5를 기록했다. 수치상으로는 현재 경기가 다소 하강 국면에 있음을 뜻한다.
반면 향후 경기를 예고하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100.5를 기록하며 전월 대비 0.1p 상승했다. 소비와 설비투자의 활기가 향후 경기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과 건설 지표는 부진한 반면, 소비와 투자는 경기 회복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