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주식시장은 전쟁을 어떻게 해석할까
금융시장이 지정학적 이벤트에 대해 깊은 통찰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투자자들은 그저 과거의 학습효과에 따라 반응할 따름이다. 남북관계를 떠올려보자. 과거 여러 차례 긴장국면이 조성된 바 있었지만 남북갈등 때문에 금융시장이 유의미한 타격을 받았던 경우는 없었다. 북한의 여러차례의 핵실험, 강화도 기습 포격, 연평도 인근에서의 남북 해군 충돌 등 결코 가볍지 않은 긴장상황이 조성됐지만 주가는 일회성 약세 이상의 조정을 받지 않았다.
이런 결과를 ‘남북갈등은 한국증시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현상에 대한 오독이다. 남북긴장이 장기적 충돌로 비화되지 않고, 단기적인 이벤트로 마무리됐기 때문에 시장의 반응도 일회적이었다고 봐야 한다. 만일 남북긴장이 장기화되면서 악화됐다면 주식시장도 이를 심각한 악재로 해석했을 것이다.
과거와 다른 리스크 패턴 발생하면 주식시장도 바뀐 상황에 반응
과거의 패턴과 다른 상황이 발생하면 주가도 바뀐 상황에 반응해 움직인다. 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미국 증시의 반응이 그랬다.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내리면서 1차세계대전이 시작됐다. 유럽에서 들어온 뉴스에 미국 증시는 큰 충격을 받았다. 깊은 분석에 앞서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유럽에서 나타난 무력충돌에 대해 ‘큰 일이 났다’는 악재로 해석했던 것이다.
전쟁 발발 직후 다우지수는 단기간에 9.6% 하락했다. 전쟁에 대한 두려움에 뉴욕증권거래소는 1914년 7월 31일에서 12월 11일까지 3개월 넘게 휴장했다. 그렇지만 거래 재개 이후 다우지수는 급등했다. 미국 땅에서 전쟁이 벌어진 것이 아니고, 오히려 미국은 유럽에 대한 수출을 늘리며 전쟁 특수를 만끽했기 때문이다. 1914년 12월부터 1916년 11월까지 다우지수는 114%나 상승했다.
2차세계대전은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던 1939년 9월 1일부터 시작됐다. 미국 증시는 2차대전 발발 초기 큰 폭으로 상승했다. ‘유럽에서의 전쟁은 호재’였던 1차세계대전의 학습효과에 기인한 반응이었다. 다우지수는 전쟁 발발 직후 16.4% 상승했다. 그렇지만 이후 미국 증시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독일뿐만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일본도 공세적인 팽창노선을 견지했고, 미국도 충돌에 휘말릴 리스크에 노출돼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증시는 1939년 9월 고점 기록 이후 약세를 지속, 1942년 4월까지 39.2% 하락했다.
최근에는 전쟁이 주식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1991년 1차 걸프전, 2001년 테러와의 전쟁, 2003년 2차 걸프전, 2025년 이스라일-이란 전쟁 등에서 글로벌 주식시장은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 미국이 무력공격의 당사자로 참여했던 위의 충돌들에서는 개전과 함께 전쟁의 승패가 사실상 결정됐다. 전쟁이 단기간에 끝나면서 불확실성도 크지 않았다.
미국과 이란 충돌 장기화되면 과거와 전혀 다른 하락 경로 택할 것
반면 2022년 2월에 시작됐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4년 넘게 진행되고 있다. 전쟁이 시작됐던 2022년에는 글로벌 증시가 큰 폭으로 조정을 받았다. 전쟁 발발 직후인 2022년에는 코로나 팬데믹 과정에서 나타났던 공급망 교란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있던 차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급등이 물가상승폭을 키웠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를 비롯한 세계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올리는 긴축정책을 폈고, 글로벌 증시는 큰 폭으로 하락했다. 전쟁 발발 이후 한국 코스피는 20.7% 하락했고, S&P500지수도 16.5% 떨어졌다.
이번 미국-이란 전쟁에 있어서도 핵심은 전쟁의 ‘지속성’이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장기화되면서 공급망과 유가를 지속적으로 자극한다면 시장은 과거의 일반적인 반응 패턴과 전혀 다른 하락 경로를 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