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법왜곡죄, 그리고 사법과 민주주의
헌법상 신체의 자유의 한 중요한 내용인 ‘죄형법정주의’는 ‘죄’와 ‘형’이 미리 성문의 ‘법’으로 ‘정’해져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무엇이 처벌될 행위인가를 국민이 예측가능한 형식으로 미리 법에 정하도록 해서 개인생활의 법적 안전성을 보호하고 국가형벌권의 자의적 행사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죄형법정주의에서 파생되는 ‘명확성원칙’은 따라서 누구나 법률이 처벌하는 행위가 무엇이며 그에 대한 형벌이 어떤 것인지를 예견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결정할 수 있도록 구성요건이 명확할 것을 요구한다.
처벌법규의 구성요건의 내용이 추상적이어서 불명확하면 무엇이 금지된 행위인지를 국민이 알 수 없고, 범죄의 성립 여부가 법관의 자의적인 해석에 맡겨져 죄형법정주의에 의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려는 본래의 목적이 실현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명확과 불명확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이에 관해 헌법재판소는 처벌법규의 구성요건이 다소 불명확하고 광범위하더라도 법관의 통상적인 해석방법을 통해 그 규범의 의미·내용이 보충될 수 있다면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시해오고 있다.
법률의 존재가 고의적 법왜곡 막는 예방효과
명확성 원칙 위반의 논란이 일었던 법왜곡죄 법안이 지난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판사 등이 법령의 적용요건이 충족되지 않거나 적법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법을 왜곡 적용할 경우에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해서 법왜곡죄 법안에 대해서는 더 이상 범죄구성 요건이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위헌이라 주장하기는 어렵게 됐다고 본다. 적어도 명확성 원칙이 법률수준에서 요구하는 명확성은 나름대로 갖춘 법안이라 판단되기 때문이고, 그 이상의 법왜곡죄의 의미·내용은 앞으로 법관의 통상적인 해석을 통한 판례에 의해서 더 구체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법왜곡죄는 독일에서 도입됐다. 독일형법은 판사 등이 소송 또는 법적 사건의 처리에 있어서 ‘법을 왜곡’해 일방 당사자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판단한 경우에 형사처벌 한다.
문제는 이 ‘법왜곡’의 개념이 본질적으로 추상적이라는데 있다. 이러한 추상성을 판례를 통해 교정해 나간 것이 독일 연방대법원이다. ‘법왜곡’의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해 법왜곡이 되기 위해서는 고의와 함께 ‘명백하고 중대한 법위반’이 있어야 하며, 단순한 오판이나 법리 오해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확실히 했다.
따라서 독일에서 사법권 독립과 법관 등의 형사책임의 긴장관계 속에서 법왜곡죄의 적용범위는 극도로 제한적이다. 그러나 법왜곡죄 존재 자체가 판사 등의 고의적인 법왜곡을 막는 예방효과를 톡톡히 거두고 있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우리의 수정된 법왜곡죄 규정은 독일보다 훨씬 명확하고 구체적이다. 첫째, 적용범위를 ‘형사사건’으로 좁혔다.
둘째, 구성요건의 명확성을 강화해 위헌소지를 없애려 했다. 원안의 ‘법령을 의도적으로 잘못 해석해 당사자를 유·불리하게 만든 경우’를 구체화해 ‘법령의 적용 요건이 충족되지 않은 걸 알면서도 적용하거나, 적용되어야 할 법령인 걸 알면서도 적용하지 않아 의도적으로 재판·수사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경우’로 수정하고 ‘법령 해석의 합리적 범위 내에서 이뤄진 재량적 판단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예외조항까지 추가한 점이 그 예다. 법관 업무의 독립성 방해나 업무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대폭 줄인 것이다.
여기에 법왜곡죄 구성요건들은 앞으로 판례에 의해서 더 구체화될 것이기 때문에 명확성원칙 위반의 가능성은 더더욱 줄어들 것이다.
판사도 국민 대표인 국회 법률에 통제받아야
법왜곡죄 도입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법왜곡죄가 입법화되면 법관 등에 대한 고소·고발이 폭증할 것이라 말한다. 법왜곡죄 규정 자체의 구체성과 법원 판례로 보완될 명확성에 비추어 볼 때 남용 우려는 크지 않다고 믿는다.
오히려 법왜곡죄 도입 요구는 애초에 국민적 사법 불신이 원인이었다는 점을 뼈아프게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적지 않은 국민들은 판사들이 국민적 상식이나 법 감정과 동떨어진 재판을 통해 의도적으로 법을 왜곡해도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느낀다. 판사도 국민이 만든 헌법 아래에 있고,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만든 법률에 의한 통제를 받아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