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미-이란 전쟁 장기화에 대비해야
세계 원유수송의 동맥이자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인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돼 한국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선제 공습으로 수세에 몰리면서도 레바논 친이란 무장정파인 헤즈볼라까지 동원해 가면서 보복에 나서는 한편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맞대응하고 있다.
호르무즈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폭 50km 안팎의 좁은 해로로 세계 원유 수송량의 20%가 넘는 하루 평균 2000만 배럴의 원유가 통과하는 요충지다. 특히 유조선이 페르시아만에 진입할 때 이란 영해를 통과해야 해 이란의 군사적 봉쇄에 취약하다.
호르무즈해협 봉쇄 장기화 등 사태 악화 땐 세계 경제 '시계 제로'
호르무즈해협의 봉쇄로 브렌트유가 배럴당 장중 80달러 선을 돌파하는 등 국제유가가 폭등세를 보였다. JP모건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사태가 악화할 경우 국제 유가가 120~130달러 선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렇게 되면 물가급등을 비롯해 기업 수익성 악화와 성장둔화, 증권시장 변동성 확대를 초래, 세계 경제가 ‘시계제로’ 상태에 빠지게 된다.
국제유가 상승은 2~3주 뒤에 국내 주유소 휘발유 가격에 반영되는 등 한국 경제에 직격탄이 된다. 한국은 원유의 70%, 액화천연가스(LNG)의 20%를 중동에서 들여온다. 이중 95%가 호르무즈해협을 거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 해군이 유조선을 직접 호송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효과는 미지수다.
해운사들은 호르무즈해협을 우회해 원유를 수송하는 방안 등을 찾고 있다. 그러나 우회시 해상운임이 최대 50~80% 오르고 육로 운송과 통관 절차로 인해 운송기간도 3~5일 늘어난다. 운항 거리 연장에 따른 유류비 증가가 예상되고 보험료도 최대 7배까지 할증된 사례가 있다. 물론 원유 수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으나 당분간은 7개월분에 달하는 국내 비축 물량으로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첫 공습을 단행했을 때만 해도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 등 이란 지도층 인사 다수의 사망과 뚜렷한 군사력 격차로 단기에 끝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란의 끈질긴 보복공격과 친이란 세력의 가세로 전선이 확대되면서 장기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게 됐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당초 작전 기간이 “4주 또는 그보다 짧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시간이 얼마 걸려도 상관없다”면서 지상군 투입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미국이 지상군을 투입해 전면전으로 확대되면 호르무즈해협 봉쇄도 장기화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란은 산악지대가 많아 미 지상군의 운신폭이 좁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 입장에선 충돌이 길어져 환율과 유가불안이 장기화하는 게 가장 두려운 시나리오다. 실물경기 회복세가 미약한 상태에서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지면 원화가치 하락과 거래 위축이 심화하고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세문제까지 겹쳐 우리 경제 전반의 복합 리스크가 커지게 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가 증산을 결정했지만 과거 사례를 비춰볼 때 이번에도 유가불안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증산을 해도 호르무즈해협 통항이 원활치 않으면 실제 수출물량이 제한돼 공급이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올해는 지난해 1% 성장에 그친 한국 경제가 2%대 반등을 노리는 해다. 특히 1분기는 ‘저성장 고착’에서 벗어날 체력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첫 시험대로 3월 성적표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한국의 올해 2월까지 누적 수출은 1332억달러로 반도체 초호황에 힙입어 전년동기 대비 무려 31% 이상 폭증했다.
그러나 이란 사태로 난관에 봉착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유가가 10% 상승하면 수출액이 0.39% 줄고, 수입액은 2.68% 증가한다. 기업의 생산원가도 0.38%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한은은 지난달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2%로 제시했다. 이는 국제 유가를 배럴당 64달러로 전제해 내놓은 전망치이나 이미 이것이 깨졌다.
발생 가능한 모든 리스크 테이블에 올려 대응책 강구할 때
이젠 조기 종전 기대를 접고 발생 가능한 모든 리스크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대응책을 강구해나가야 할 때다. 에너지 공급망 위기 장기화에 대비, 비축유 방출과 대체 수입선 확보, 해상운송 지원 등 단기 대응을 서둘러야 한다. 기업들 역시 물류지연을 계약에 반영하고 복수 운송 노선을 검토하는 등 리스크 관리에 나서야 한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