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전쟁 장기화 조짐에 물가당국 초비상

2026-03-05 13:00:03 게재

호르무즈해협 봉쇄·유가급등·환율폭등 한국경제 ‘3중 충격’

전면전 비화되면 한국 성장률 0.8%p 하락·물가 2.9%p 급등

스태그플레이션 기로에 선 한국경제 … 식탁물가도 상승흐름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시설과 탄도미사일 기지를 겨냥한 대규모 공습을 단행하면서 세계경제의 시계가 멈췄다. 트럼프 행정부가 ’에픽 퓨리(Operation Epic Fury)‘라 명명한 이 작전은 개전 72시간 만에 이란 내 1700개 이상의 군사 목표물을 타격했다.

이란은 즉각 반격에 나섰다. 혁명수비대(IRGC)는 오만만에서 미 해군 함정 11척을 공격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모든 선박을 불태우겠다고 위협했다. 해협 일대는 사실상 봉쇄 상태로 접어들었다. 개전 4일 만에 이란은 미국 대사관이 있는 두바이까지 드론으로 공습하며 전선을 걸프만 전역으로 확대했다. 5일 트럼프는 “공습은 수 주간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쟁은 단기 종결이 아닌 장기전으로 굳어지는 양상이다.

개전 엿새째인 6일 물가당국은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2%대 물가를 지켜온 핵심배경이 ‘안정된 국제유가’였다. 가뜩이나 작년부터 먹거리·장바구니 물가 인상에 압박을 받아온 정부로서는 난감한 과제를 또 하나 받아든 셈이다.

4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휘발유를 비롯한 유류 가격이 표시되어 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기준 서울 지역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전날보다 L당 47.3원 오른 1835.8원으로 집계됐다.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이 180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12월 18일(1802.7원) 이후 약 2개월 반 만이다. 연합뉴스

◆전 세계 석유 20%가 막혔다 =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공급량의 20%가 매일 통과하는 핵심 해상동맥이다.

국제 유가는 개전과 함께 폭발했다. 브렌트유는 3월1일 하루에만 7% 급등했고, 장중 한때 배럴당 82달러를 넘어섰다. 3일 로이터 집계 기준 브렌트유는 전고점 대비 4.7% 더 오른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5일 오전 10시 현재 80.40달러다. WTI는 76.03달러를 기록 중이다. JP모건은 호르무즈 전면 봉쇄 시 배럴당 120~13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천연가스 시장은 패닉 상태다. 호르무즈를 통해 전 세계 LNG의 상당 부분이 운반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TTF 천연가스 선물은 이틀간 76% 폭등했고 가격도 하루 만에 40% 치솟았다. 골드만삭스는 “해협을 통한 가스 운송이 한 달만 중단돼도 유럽 천연가스 가격이 130% 급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해운 시장도 마비 국면이다. 주요 선사들이 호르무즈 통과를 중단했고, 전쟁 위험 보험료가 급등해 일부 선박은 보험 가입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한국에 3중충격 ‘유가·환율·물류’ = 세계 5위 원유 수입국인 한국은 이 전쟁의 가장 취약한 피해국 중 하나다. 수입 원유의 71%, LNG의 20.4%를 중동에서 들여온다. 그 중 95%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산업통상자원부 집계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원유 수입량 가운데 중동 의존 물량이 차단될 경우, 단기 대체 조달선 확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시장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3월 3일 코스피는 하루에 7.2% 폭락, 4개월 만의 최저 낙폭을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은 1467.80원까지 치솟아 3주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블룸버그는 “이란 전쟁 여파가 이재명정부의 짧은 밀월 기간을 끝냈다”고 분석했다.

물가에 대한 파급 경로는 세 갈래다. ①국제유가 상승→수입물가 상승→소비자물가 상방 압력 ②환율상승→원화 기준 에너지·원자재 수입단가 추가 상승 ③해운운임 급등→공산품 수입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은행 추정치에 따르면 연평균 유가가 10% 오를 때 국내 소비자물가는 0.2~0.3%p 상승한다.

모건스탠리는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수준에서 장기 유지되는 중간 시나리오에서도 한국 경제성장률은 0.3%p 하락하고 물가상승률은 1%p 이상 오를 것”으로 분석했다. 더 악화된 시나리오(유가 150달러)에서는 성장률이 0.8%p 떨어지고 물가상승률은 2.9%p 급등할 것으로 추산됐다.

◆중앙은행은 금리 딜레마 = 미국-이란 전쟁은 전 세계 중앙은행에 전례 없는 정책 딜레마를 안겼다. 전쟁 전까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2026년 중 2~3차례 금리 인하를 예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에너지 충격이 인플레이션을 재점화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그 경로 전체가 불투명해졌다.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 닐 카시카리는 4일 “에너지 가격이 물가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며 금리 결정에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로이터는 연준이 이란 사태 이후 시장에서의 ’다음 금리 인하 시기‘ 전망이 수개월 뒤로 밀렸다고 보도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 존 윌리엄스는 인플레이션이 개선되면 금리 인하가 여전히 가능하다는 입장을 유지했지만, 이란 전쟁에 대해서는 직접 언급을 자제했다.

한국은행은 연일 이창용 총재 주재로 ’중동사태 상황점검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금융시장 영향을 긴급 점검했다. 한은은 현재 기준금리를 2.50%로 동결 중이다. 하지만 물가 상방 압력과 경기 둔화 하방 리스크가 동시에 커지면서 운신 폭이 극도로 좁아진 상황이다. 금리경로를 전면 재검토해야 할 기로에 선 셈이다.

IMF도 경고에 가세했다.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란 전쟁의 경제적 충격 규모는 기간과 손실에 따라 결정되며, 에너지 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끌어올릴 경우 각국 중앙은행이 행동에 나서야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IMF는 지난 1월 2026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3.3%로 전망했으나, 이번 사태로 신선한 하방 리스크가 추가됐다고 인정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그림자 = 세계적 경제학자인 모하메드 엘에리언 퀸스칼리지 총장(전 핌코 CEO)은 3일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이란 전쟁이 장기화하고 확산될 경우 전 세계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가 덮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전쟁 이전에도 이미 거시 경제 펀더멘털이 취약했다”며 에너지 충격이 ’고물가+저성장‘의 최악 조합을 현실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도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는 이란 전쟁 이전부터 잠복해 있었는데, 유가 급등이 이를 현실로 당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는 “지속적인 고유가는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동시에 성장을 둔화시켜 중앙은행을 진퇴양난에 몰아넣는다”고 진단했다.

헬레닉 쉬핑 뉴스는 글로벌 경제를 향한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①단기충격 후 협상(수 주 내 정전, 유가 70~80달러 안정): 성장 소폭 둔화, 무역 흐름 회복 ②중장기전(수개월, 유가 100달러 유지): 스태그플레이션 에피소드 발생, 무역위축, 취약국 금융 불안 ③전면 지역전쟁(이란 핵 대응, 이라크·쿠웨이트 확전): 유가 130~150달러, 세계 경기침체 확률 급등 등이다.

5일까지 전황은 2번 시나리오로 진입하는 초입 국면으로 평가된다. 엿새째 공습이 멈추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란 우주군이 ’진정한 약속 4‘ 작전을 선포하며 최첨단 무기 전개를 예고하고 있어 단기 종전 기대는 희박한 상황이다.

작년 하반기 한국 경제는 고환율(1400원대)을 버티면서도 국제유가 하락 덕분에 소비자물가 2%대를 유지하는 ’기적 같은 균형‘을 누렸다. 그 핵심 버팀목이 바로 ’낮은 유가‘였다. 그 버팀목이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밥상물가 고공행진 추가부담 = 밥상물가 고공행진은 물가당국의 발목을 잡는 또 다른 요인이다. 돼지고기와 한우, 닭고기 가격이 모두 1년 전보다 10% 넘게 올랐다.

쌀과 일부 수입과일 가격도 지난해보다 오르면서 밥상 물가 부담이 커지고 있다.

5일 축산물품질평가원의 품목별가격 정보를 보면 돼지 삼겹살은 지난 4일 기준 평균 소비자가격이 100g당 2637원으로 1년 전보다 13.5% 상승했다. 목심은 2442원으로 14.5% 비싸졌다. 비교적 저렴한 앞다리도 1548원으로 11.8% 올랐다.

한우도 오름세가 가파르다. 안심은 1+ 등급 기준 100g당 1만5247원, 등심은 1만2361원으로 각각 1년 전보다 10.8%와 13% 상승했다. 닭고기(육계)는 ㎏당 6263원으로 11.1% 올랐다. 계란 특란 한 판(30개)은 6852원으로 1년 전보다 5.9% 높다.

공급 감소와 고환율 영향으로 수입 소고기도 급등했다. 미국산 척아이롤(냉장)은 100g당 4089원으로 1년 전보다 63.7%나 상승했다.

쌀값도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평균 소매가격은 20㎏당 6만3000원을 웃돌며 작년보다 15% 비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집계에 따르면 시금치는 4일 기준 평균 소매가격이 100g에 1060원으로 작년보다 11% 비싸다. 상추와 파프리카, 마늘 등 품목도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환율상승 여파로 수입과일 가격도 높다. 바나나 가격은 100g에 346원으로 전년보다 16.5% 상승했고, 망고는 개당 5674원으로 43% 급등했다.

◆물가당국 비상대응도 한계 =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와 물가당국도 빠르게 움직였다. 금융위원회는 1일 이억원 위원장 주재 비상 회의를 소집하고, 필요 시 100조원+α 시장안정 프로그램을 즉각 가동하겠다고 선언했다. 정부는 또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중동 사태 피해 기업에 13조3000억원(약 97억달러) 규모의 긴급 금융지원을 발표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중동상황 비상대응 대책회의‘를 열어 40조원 규모의 위기대응 특별 프로그램도 가동했다.

에너지 수급 측면에서는 한국이 보유한 208일분 비축유(약 2억 배럴)가 단기 완충재 역할을 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IEA 기준 208일분의 비축유를 보유해 수급위기 대응력이 충분한 상황”이라며 소재·부품·장비 품목의 대체 조달선 확보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208일이라는 숫자는 완전 봉쇄 상황에서의 이론적 수치이며, 중동 외 대체 공급선 계약 협상에는 통상 수개월이 걸린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비축유 방출, 중동 외 공급선 긴급 발굴, 전력 수급 모니터링 강화, 나프타 등 석유화학 원료 대체 조달이라는 4단계 컨틴전시 플랜을 가동 중이다.

모건스탠리의 분석 시나리오를 보면, 유가 100달러가 장기 유지될 경우 성장률 0.3%p 하락, 물가상승률 1%p 이상 상승“이 기본 경로가 된다. 이는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사이클을 완전히 멈추거나 심지어 역전시킬 수 있는 충격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유가 10% 상승 시 수출은 0.39% 줄고 수입은 2.68% 늘어난다. 무역수지 악화와 경상수지 압박이 동반되면 원화 약세가 추가로 심화되는 악순환 구조다. 고환율·고물가·저성장의 ’삼중고‘가 현실이 되면, 이재명정부가 올해 본예산에 설계한 확장재정의 효과가 에너지 비용 상승에 상쇄될 우려마저 나온다.

물가당국이 지금 작성해야 할 새로운 시나리오에는 단 하나의 핵심 변수만 남은 셈이다. 전쟁이 얼마나 오래 계속되는가. 하지만 그 답을 아는 사람은 지금 워싱턴과 테헤란의 전쟁 지휘실에만 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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