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노동자 의존 조선업 지속 어려워
‘산업성과 확산형 구조’ 절실 … 노동사회연구소 노동정책 제안
한국 조선산업이 불황을 극복하고 다시 살아나고 있지만 산업성과를 노동자와 지역으로 확산하지 못하면 산업 경쟁력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KLSI)는 3일 발행한 ‘KLSI 이슈페이퍼’에서 조선산업이 밀집된 거제시 사례를 중심으로 현황을 분석하고 ‘지속가능한 조선업을 위한 노동정책 방향’을 제안했다.
연구소 박용철 선임연구위원과 송관철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조선업이 다시 살아나고 있지만 체감하기 어려운 현실을 진단했다.
클락슨 등에 따르면 국내 조선사의 신규 수주량도 증가해 2024년 수주량은 11억1300만톤(CGT. 표준선 환산톤)을 기록, 수주량 최저점인 2016년 2억2400만톤의 약 5배로 늘었다.
수주잔량도 2015년(32억1600만톤) 보다 많다.
경기흐름에 따라 호황기와 불황기가 반복되는 특징을 가진 조선업 특성으로 볼 때 최근 경기회복에 따른 호황도 향후 5~10년 정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보고서는 조선소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조선업에 삶의 기반을 둔 지역주민들에 주목했다. 거제시의 조선업 종사자 수는 10년 전과 비교해 64.2% 수준이다. 연구소는 “호황이라고 부르기엔 여전히 너무 많은 자리가 비어 있다”며 “(노동자들과 지역민들이 다시 온 ‘호황’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등록 외국인은 2021년을 저점으로 빠르게 회복돼 거제시의 경우 2024년 1만4969명으로 2015년 1만5051명 규모에 육박하고 있다.
연구소는 조선업 이해관계자들의 인식을 분석하면 표면적인 회복세 뒤에 구조적인 문제들이 쌓여 있다고 진단했다.
우선 ‘원·하청 구조의 벽’으로 성과는 위에서만 머문다. 조선업은 전통적으로 원청(대형 조선사) → 1차 하청 → 2차 하청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도급 구조를 갖고 있다. 문제는 수주가 늘고 매출이 올라도 그 이익이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까지 흘러내려오지 않는다.
보고서는 “호황의 온기가 현장까지 닿지 못하는 구조, 이것이 지역 경제가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핵심 이유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인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내국인 채용 대신 외국인 노동자 유입을 늘리는 것’도 단기 처방이 만드는 장기 리스크로 거론됐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소득 상당 부분은 본국으로 송금돼 지역경제에 기여하지 못하고, 외국인 노동자가 체득한 기술은 국내에 축적되지 않는다.
보고서는 “외국인 노동자 중심의 채용 구조가 고착화되면 국내에 기술 인재가 남지 않게 되고, 다음 호황이 왔을 때 오히려 대응 능력을 잃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술숙련의 위기도 구조적 문제 중 하나로 지적됐다. 기술집약산업인 조선업에서 용접 도장 배관 전장 등 분야별 숙련 기술은 단기 교육으로 대체하기 어렵다.
보고서는 “현재와 같은 고용 시스템이 유지된다면 기술 전수 체계가 무너지고 미래의 경쟁력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있는 대책이 시급히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연구소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황이 닥쳤을 때 실업급여를 지원하고 고용을 유지하는 ‘불황 대응형 단기 처방’에서 산업의 성과가 노동자와 지역경제 전체로 흘러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소는 우선 불공정한 도급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원청 중심의 이익 독점 구조를 바꾸거나 하청 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끌어올리고 고용을 안정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동일한 현장에서 동일한 일을 하면서도 원·하청 간 처우 격차가 극심한 현실은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기술 인재를 키우는 체계를 만들고 지역에 뿌리내리는 고용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소는 이들 정책을 현실화하기 위한 체계로 ‘정부·지자체·조선사가 함께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연근·한남진 기자 yg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