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트럼피즘의 두 얼굴과 요동치는 국제질서

2026-03-06 13:00:03 게재

“미국 역사상 최장기 전쟁을 끝내고 병사를 귀환시켜야 한다.” 2020년 2월 29일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을 상대로 ‘도하 협정’에 서명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한 말이다.

2001년부터 2019년까지 1000조원이 넘는 비용이 들어간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트럼프 대통령이 비난해 온 단골이슈였고, 대외 관계에 있어서 소위 트럼프식 고립주의를 내세운 ‘트럼피즘’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보수적인 미국 유권자들은 트럼피즘에 환호했고, 트럼피즘은 미국 정치의 새로운 에너지가 되어 결국 트럼프 대통령을 두 번씩이나 백악관의 주인이 되게 만들었다.

집권2기 변질되는 ‘트럼피즘’

트럼피즘은 학술적이거나 객관적인 용어가 아니어서 통용되는 정의(definition)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외 관계에 있어서 미국의 세계경찰 역할을 비판하고 불필요한 군사개입을 비용 낭비라고 폄하하고 있다. 그런데 집권 2기에 들어선 트럼피즘의 실상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린란드의 미국 장악 역시 미국과 세계의 안보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발 더 나아가 트럼프 행정부는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하기 위해 시간적으로는 짧았지만 군사적으로 매우 강력한 작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2월 28일 미국은 폭격기 125대를 포함해 토마호크 미사일, 벙커버스터(MOP) 등 각종 첨단무기를 동원했고, 이스라엘 비행기 200대의 지원을 받으며 이란을 상대로 그야말로 엄청난 군사 공습을 전개했다.

이 작전에 대해 미국은 ‘장대한 분노(Epic Fury)’, 이스라엘은 ‘포효하는 사자(Roaring Lion)’, 그리고 이란은 ‘진정한 약속(True Promise)’으로 명명했다. 특히 미국과 이스라엘의 작전명이 흥미로운데 작년 6월 이란의 핵시설 세 곳을 폭격하는 단기 공습을 감행했을 때 미국의 작전명은 ‘미드나잇 해머(Midnight Hammer)’, 그리고 이스라엘은 ‘일어나는 사자(Rising Lion)’라고 밝힌 바 있다. 두 국가의 군사 작전명을 통해서 이란을 상대로 한 일관된 목표와 문제의식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란이 칭한 ‘진정한 약속’은 더욱 복잡한 배경을 품고 있는데 ‘약속’은 이슬람 경전인 ‘코란’의 내용에서 따온 것이다. 동시에 ‘진정한 약속’은 수년 전부터 이스라엘의 군사 감행에 대응할 때마다 이란이 내세웠던 명칭이다. 코란에서 유래한 ‘약속’은 이란이 미국과 이스라엘을 포함해 외부 세계의 공격에 대응하는 고유한 세계관을 상징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한 마디로 ‘성전(聖戰)’이다.

비(非) 이슬람인의 입장에서 단언키는 어렵지만 신의 이름으로 치르는 전쟁은 인간의 기준으로 재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시간과 피해라는 기준과는 무관하게 신(알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중동정책 걸림돌 제거? 국내문제 해소책?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맹비난하면서 이런 일에 미국의 혈세가 들어가서는 안된다고 그렇게 외쳤던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공습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두 전쟁은 네오콘이라는 변형된 이념적 지표가 있기는 했지만 여전히 전통적 보수주의자 그룹이 내린 결정이었다.

이들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트럼피즘이라는 ‘미국에만 집착하는 보수주의’라는 슬로건을 메시아처럼 내걸었다. 그런데 대규모 이란 침공이라는 일종의 극단적인 개입주의 정책을 선택한 것이다. 더욱이 ‘성전' 을 앞세운 이란의 입장은 너무도 당연히 예견된 수순이었을텐데 트럼프 대통령의 복잡한 속내를 가늠하기기 쉽지 않다. 일단은 두 가지 중의 하나로 판단된다.

첫째, 최근 수 개월 간 심각하게 지속된 이란 내부의 시위사태에 대한 해석의 문제다. 기존의 하메네이정권이 강력하게 정보를 차단한 관계로 이란 시위의 규모와 피해에 대해 정확한 판단은 어렵지만 상당한 인명 피해가 발생한 건 국내외 언론의 일치된 의견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979년 이란혁명 이후 오랫동안 미국 중동정책의 결정적인 걸림돌이었던 이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다수의 이란 국민들로부터 신임을 잃은 하메네이 리더십을 미국이 공습을 통해 핀셋처럼 제거할 수 있다면 이란의 체제 변화가 자연스럽게 뒤따를 수 있다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트럼프행정부 1기 시절이었던 2020년 9월에 전격 진행된 ‘아브라함 협정’이 정말로 중동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을 수 있다. 이 협정은 트럼프 대통령의 중재로 이스라엘이 아랍 국가인 아랍에미리트 및 바레인과 외교 관계를 맺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뒤이어 수단 모로코가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에 약속하면서 중동 질서에 믿기 어려운 변화가 일어날 것 같은 상황이 전개된 바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2023년 10월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전격적인 군사 공습은 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 정상화 논의가 무르익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하마스는 물론 시아파를 중심으로 한 중동 국가의 입지는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이런 커다란 그림이 미국의 이번 결정의 핵심 요인이라는 설명이다.

둘째, 미국의 국내적인 상황이 미국의 군사 행동을 불러왔다는 설명이 있을 수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작년 하반기부터 반인권적인 이민자 정책으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도는 급락했고, 최근 수개월 동안 크고 작은 선거에서 공화당의 텃밭을 잃어 가고 있던 상황이었다. 철지난 냉전기 시나리오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란을 상대로 한 미국과 중동 세력 간의 대결은 미국 유권자를 결집시키는 매우 유효한 카드이기 때문이다.

연방이민세관집행국(ICE)의 이민자 정책를 지지하는 미국인은 대체로 30%, 작금의 이란 공습에 대한 미국의 지지는 40%, 향후 대 이란 작전에서 지상군 투입에 대한 미국인의 지지는 10%,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대통령직 수행에 대한 지지는 35%, 현재 미국 내에서 평균적으로 대략 이와 같은 여론이 형성되어 있다. 트럼피즘의 두 얼굴을 선택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카드가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두 가지 설명 중에서 어떤 쪽이 더 설득력 있는지 판단키는 어렵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트럼프 대통령은 초기 압도적인 군사 공습으로 이란 문제가 시간을 오래 끌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국제안보와 한반도에 제기되는 문제들

동시에 한반도 차원에서 또 국제안보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들이 파생된다. 우선 영국을 포함한 나토 핵심 동맹국들과의 협조 체제에 불협화음이 불거져 나오는데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 아닐 수 없다.

‘나토 국가들은 스스로 안보를 책임지도록 GDP 5% 수준까지 국방비를 인상하라.’ ‘미국은 더 이상 국제사회의 경찰 국가 역할을 할 수 없다.’ 최근까지도 이렇게 얘기한 트럼프행정부가 느닷없이 대규모 이란 침공을 감행하고선 유럽 동맹국에게 협조를 요구한다면 해당 국가의 입장에서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연동되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포함해 한반도 안보에서 재래식 무기 책임과 핵위협 책임을 보다 분명하게 구분하고자 하는 미국의 정책에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얽히고 설킨 국내외 안보로 인해 더욱 난감해 지고 있다. 북한은 지난 2월 25일 막을 내린 제9차 당대회를 통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한다면 우리도 미국과 좋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듣기에 따라 적극적인 대화의 메시지를 발신한 바 있다.

이란 사태로 인해 북한의 속내 역시 더욱 복잡해 짐은 당연한 일이다. 소위 ‘3말 4초’ 북미 협상의 장을 둘러싼 소문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북한과 미국의 공통된 이익이 접점을 찾기를 기대해 본다.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 국제정치학